허수경 著,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산문집]
- 제목 :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저자 : 허수경
- 출판사 : 난다
인생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찬가는 분명 듣기 좋으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마따나 인간의 삶은 아름답기보다는 추하고 남루하여 보잘것없이 툭툭 낡아간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善)과 삶의 아주 미미한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욕심쟁이인 탓도 있지만 그런 믿음을 버리는 순간 나의 삶이 절벽 아래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혹은 이미 추락한 뒤에 어떻게든 절벽 위로 올라가고 싶어서 열심히 손발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기어오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허수경, 나는 이 이름을 가진 이의 일생을 모른다. 목소리와 식성 또한 모르고, 그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시를 사랑하는 문인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이 책을 통해 그의 필체, 그의 삶 어딘가에 작은 조각으로 새겨진 찰나의 순간, 어렴풋이 기억나는 하루하루와 그가 품고 살아가던 마음만을 어설프게나마 알게 되었다. 산문에는 작가가 인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는지 담길 수밖에 없는데, 이 책에는 허황된 희망이나 극단적인 절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삶의 모퉁이, 구석진 시간 속에서 발견한 것들이 있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다른 나라의 언어로 공부하고,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세상에 녹아드는 것. 완전히 떨쳐낼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이질감, 그리고 그 틈새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이들의 생애와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은 때로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어 파도처럼 날아온다. 인생은 후회 없이 살기보다는 무수한 후회와 미련 너머 사랑과 행복까지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허수경 작가와 나의 인생은 아주 다르다. 어쩌면 시인 허수경과 사람 허수경의 삶도 조금 달랐을지 모르는 일이다. 모르겠다, 이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없어서 부끄러운 까닭이다. 나는 내 삶도 모르고 누구의 삶도 모른다. 사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찾아온 오늘을 충실히 살고, 다가오는 내일과 함께 어제로 보내주는 게 전부다. 자기 삶을 충실히 잘 살아가는 사람이 글까지 잘 쓰면 독자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 익숙하게 봐왔던 불빛, 어쩌다 한번 마주치는 나비의 날갯짓, 전봇대 위로 날아가는 새, 밑창 닳은 운동화, 가드레일 밑에 핀 민들레, 학생들의 가방에 있는 필통 같은 것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자꾸 붙잡아 살피고 말을 걸거나 속으로 이름을 붙여보기도 하는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낯설지만 편안하고 신기하면서도 괴상하지는 않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참 어려운데.
같은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완전히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삶도 가치관도 취향도 다른 이들이 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애초에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난 것이다. 그러다가 이따금 아주 기막힌 우연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거나 마음에 드는 것을 공유할 때 '나'와 '너'는 잠시나마 정말 '우리'가 된다. 그 순간이 어찌나 설레고 즐거운지, 그 벅찬 마음을 유리구슬 안에 넣어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과연 이 책이 그 유리구슬일까? 음, 차라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일기장이라고 보겠다. 불투명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삶의 흔적. 한 인간의 마음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투명한 겹 하나로 이루어진 세계를 들여다볼 때마다, 박제하고 싶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순간들의 귀중함을 느낀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모두 언제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문장 수집
16p
약이 올랐다. 모든 게 다 꿈이었다. 그렇게 그런 것들이 먹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이곳에 사는 게 다 꿈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것도 다 꿈이었다. 붙잡힌 영혼이여, 몸이 무거운가, 왜 이곳에서 그곳으로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가. [ '마당 있는 집' 中 ]
나는 내가 태어난 땅에서 평생을 살았음에도, 드물게 세상 어딘가에 두고 온 고향이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물론 기분밖에 없고 머리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곳에서 사는 것도 외롭고 그렇다고 그곳으로 가자니, 그곳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세상이지만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내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애먼 풍경만 바라보면서 허허실실로 걷고 있다.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 나의 몸은 잠시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 빌린 곳이고, 몸이 죽으면 내 영혼은 다시 어딘가로 떠나갈지 모른다. 어쩌면 정말 생명의 근원이라 불리는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56p
그날 나는 밥도 잘 먹고 하루종일 어슬렁거렸는데, 슬그머니 내가 살아서 이 지상을 아직도 별 탈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고, 아니 불편하고, 아니 사무치게 짜증난다. [ '소녀 전사' 中 ]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혼자 죽거나 사고로 죽는 일들이 매 순간 일어난다는 것. 그걸 알기만 해도 나의 평온하고 게으른 삶에 대한 부채감과 자책감이 생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분노와 슬픔이 공존하는 감정이다. 화가 나는데 동시에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 그대들, 무엇이 그리 억울하고 자랑스럽던가. 신념이 목숨보다 중요하고 사상이 인간 위에 올라설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83p
비행기 추락 사고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컴컴해진다. 첫째, 나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고, 둘째, 내 노모는 아직 살아 계시다. 공중에서 갑자기, 그리고 무참하게 폭발할 수도 있다는 삶의 조건을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사람들은 삶의 조건을 넓히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조건을 넓히는 일은 죽음의 조건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 '날틀' 전문 ]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를 두 눈으로 보았다. 바다에서 죽은 이들, 길거리에서 죽은 이들, 비행기 안에서 죽은 이들…… 그들의 죽음에는 결국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나의 죽음 역시 아무도 모르는 구덩이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늘 죽음과 중첩되어 맞닿아 있는 일이다. 삶의 조건을 넓히면 그와 동시에 인간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생겨난다. 삶은 늘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죽지 않았어도 될 이들의 목숨에는, 도대체 누가 매달려야 한단 말인가?
99p
독재를 감수하던 그 세월을 지나면서 얼마간의 밥을 얻은 대신 우리는 무엇을 잃었던가. [ '가족계획 실천 마을' 中 ]
독재가 두렵다. 내 삶이 자유를 빼앗기고 감시와 억압 속에서 서서히 찌그러질 날이 두렵다. 만약 그런 순간이 현실에서 나를 덮친다면, 나는 압사당할지 스스로 투신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순응하여 살아남기보다는 저항하며 죽는 쪽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정말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내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밥을 얻겠다고 마음과 자유를 버리고 정의를 배신한 삶이 얼마나 부끄러울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109p
나도 내 예쁜 곳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다들, 제 예쁜 곳을 일생에 단 한 번도 못 보았으리. [ '예쁜 뒤꼭지' 中 ]
내게서 가장 예쁜 곳은 어디일까. 나는 그곳을 한 번이라도 예뻐한 적이 있을까. 구태여 예쁜 곳을 찾자면 내 속눈썹이나 하나 뽑아 보겠다. 그래도 나름 "너 속눈썹 길다"라는 말은 몇 번 들은 적 있는 사람이다.
123p
말하자면 이름 없이 사라져간 많은 이의 역사가 소중해진 것입니다. [ '네 번째 편지 - 주인석 벗에게' 中 ]
지금 이 순간이 역사로 남는다면 수많은 깃발과 팻말이 나타날 것이고, 미래 사람들은 우리가 치열한 내부 전쟁과 분열에 시달렸다고 분석하리라.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즐겨 입었던 의상의 공통점을 쉽게 찾지 못할 것이고, 네모나고 작은 구식 기계가 우리의 삶을 지배했다고 확신하며 연구 결과를 작성할 것이다. 머나먼 과거에도 각자 이름을 가졌거나 이름이 없었더라도 각자의 삶이 있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기한 일인지 몸소 느끼게 된다.
268p
이성을 사랑하나 이성만을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마음 냄새' 中 ]
이성(理性)은 '사유하는 능력'이다.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식별하고 판단하여 생각하는 능력.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여겨지나 사실 제대로 이성을 가지고 다스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성이 존재해야만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지만, 이성에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 적이 과연 있었는가? 모든 생각과 판단에는 개인의 주관과 감정이 가미될 수밖에 없으니, 이성을 사랑하되 너무 신뢰할 수는 없다는 말은 이성의 영역에서 바라보았을 때 필히 옳다. 나의 신념과 믿음조차 한 번은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305p
그 옛날,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어머니와 함께 저녁 무렵이면 함께 시장으로 갔다. 그때 그 시장에서 어머니의 작은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나는 몰라도 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그 생선 냄새를 맡았던 것.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았을 무렵의 냄새…… [ '내 마음속의 시장' 中 ]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책임이라는 것을 짊어진 후에야 그 시절이 얼마나 무지하고, 그렇기에 순수하게 행복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무게와 고독에 대해서는 일절 고민하지 않았던 나는 지금은 매일 그것들과 마주한 채 살고, 세상이니 마음이니 인간이니 쓸모도 없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깊은 고민과 해답이 나오지 않는 무수한 문제들을 눈앞에 둔 채로. 내 마음속에는 시장이 있고, 그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나는 마치 나와 전혀 다른 사람 같다. 10년 전의 내가 나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산문 속의 시
책의 206쪽부터 207쪽, '어느 측량사의 여행 가방'이라는 짧은 글을 읽고 나서 그 밑의 여백에 시를 썼다. 책을 읽다가 시를 쓴 것은 처음인지라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마음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기에 그 시를 기록하는 것은 내심 내가 이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 얼굴은 꼭 달큰한 과일주 같습니다
혹여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결코 쓰고 역한 술 냄새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작은 협탁 하나 두고
그 앞에 마주 본 채 앉아
창밖 나무 휘청이는 소리가
당신 목소리인 줄로만 압니다
술기운이 뜨습게 오르기 전에 나는
가만히 두 손 깍지를 끼고
당신과 손을 잡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상상해 봅니다
추운 땅에서 홀로 밤 보내려니
아늑한 어둠이 여간 외로운 게 아니라
지그시 내려앉은 밤의 다정하고 평안한 불빛 하나도
역시 당신만큼 밝지는 않습니다
지구가 줄곧 자전한다는 사실이 기특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당신이 좋아하는 저녁노을도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 내가 본 달이 내일 밤에는 당신을 찾아가리라 믿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