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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10. 2024

모두가 각자의 방법을 찾는다

장은진 著,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단편소설]


겉표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 제목 :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소제 :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 저자 : 장은진

- 출판사 : 열림원




이 책은 일곱 명의 작가가 '비'를 주제로 하여 집필한 일곱 개의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책의 제목은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인데, 2011년에 발행된 이 책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 집에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도 분명 초등학생 시절일 것이다. 어른들이 쓴 이야기를 읽고 감상하고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몇 번이나 읽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종종 이 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끔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꺼내 읽는다. 감상문은 일곱 개의 단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이 읽은 첫 번째 단편으로 선정하였다.


고등학생 때 잠깐 썼던 독서 노트에 이 글에 대한 감상문이 있다. 2021년 3월 21일 수요일에 읽고 쓴 글인데, 제법 자세하게 감상이 나와 있어서 재미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쓴 글은 시간이 지나면 이걸 내가 썼나 싶을 만큼 낯설어진다. 도대체 내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런 문장이 나왔을까, 내가 이런 단어도 알고 있었나, 어째서 지금보다 이 시절에 쓴 글이 더 읽기 좋은 것 같지, 그런 생각이 솟구쳐서 지나간 글을 읽는 건 부끄럽기도 신선하기도 하다. 내가 쓴 글이라고 해도 타인이 창작한 글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곧 타인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통찰하는 능력 따위는 내게 없다. 나는 그저 주관적으로 느끼고 맘껏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감상은 외부의 존재가 침범할 수 없는 나 자신만의 세계 같지만 의외로 바깥에 있는 것들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날 펼쳐지는 날씨, 나의 기분과 감정, 주변 사람들의 반응, 어디선가 읽었던 댓글, 전문가의 의견, 작가의 배경과 성향… 생각을 촉진시킴과 동시에 감각을 막아버리는 요소는 주변에 무척 많다. 그렇기에 늘 긴장하며 글을 읽어야 한다.


이 글은 어땠을까. 십수 번 글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고, 무수히 많은 날을 보냈고, 문장 하나에 담긴 의미를 깨닫거나 반대로 잊어버렸다. 하지만 어쨌든 이 글은 나에게 '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라는 걸 말하고 싶다. 줄거리는 물론 기승전결과 결말까지 듬뿍 들어가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구매해서 먼저 글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다. 이 글 말고도 다른 여섯 개의 단편도 좋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도 많지만.


거두절미하고, 하얗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다락방과 지붕에 고립되기를 택한 '나'


이 글의 화자인 '나'는 30대 남성이다. 인근에서 최고 부자라는 최 사장네 막내아들로, 다섯 명의 누나를 두고 마지막으로 태어났으며, 몇 달 전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살던 아파트를 떠나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본가에 돌아온 이후부터 부모님과 마주치지 않으려 어린 시절 자신의 방이었던 다락방과 지붕만을 오가며 지낸다. 어째서 나는 멀쩡한 현관문을 놔두고 굳이 불편하게 사다리로 지붕을 오르내리며 부모님과의 대화와 대면을 철저히 피하고 있는가.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나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 아내와도 헤어졌고, 최 사장네 막내아들 아니냐며 자신을 알아보는 늙은 여자를 서둘러 피하기도 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사람도 아닌데 세상 모든 사람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모양새다. 예전부터 똑똑하고 야무진 다섯 딸들에 비해 의지가 박약하고 뭐든 제멋대로인 데다 재산만 축내는 나를 골칫덩이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를 패러 지붕으로 쫓아오다가 떨어진 뒤 아내의 도움이 없으면 거동조차 힘든 몸이 되었다. 그 때문에 나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이라고 말하며 가시 돋친 눈으로 쳐다보는 데다가, 당신이 죽으면 재산은 막내인 나를 제외하고 다섯 등분으로 나누라고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할 정도로 나를 미워한다.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고 찾지 않는 존재. 어떻게 보면 불쌍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심하게 보이기도 주인공은 외톨이에 영락없는 백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외톨이에 백수였던 것은 아니다. 아내와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스포츠카를 모는 등, 제법 부유하고 건재한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어째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그건 몇 달 전 아내와 이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먹고 남은 반찬을 몇 번 던져주었더니 그대로 지붕 한쪽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기 시작한 턱시도 길고양이 ― 몸체는 까맣지만 네 개의 발은 하얘서 이름도 '하얀 구두'가 되었다. ― 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아내였던 그녀를 떠올린다. 나보다 네 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고양이를 닮은 여자였다. 고양이처럼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던 그녀는 평소에도 누군가와 잘 어울리지 못했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 특유의 무관심은 나와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이어졌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시니컬한 그녀의 태도는 좀처럼 변하지를 않았다.


나는 그녀가 결혼하고 나서도 '집사람'이나 '아내'라는 호칭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던 이유를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했지만, 눈이 되려다 만 겨울비가 내리던 날 밤에 그녀에게서 진짜 이유를 듣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종속되어 버린 것 같아서, 왠지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싫어!"라고 대답한다. 원래 그녀는 자유를 중요시하는 성향이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지만, 결혼한 반려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차갑고 냉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주인공인 나는 그녀와 삼 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다가 이혼을 택하는데, 원하는 건 모두 줄 수 있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정말 모든 것을 가져간다. 주인공이 운영하던 스포츠센터를 위자료로 요구했고, 아파트를 처분한 돈의 절반과 자동차, 심지어 주인공이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까지 자식처럼 키우고 싶다며 데리고 가 버린다. 상황만 보면 나의 아내였던 그녀는 거의 사기꾼이나 다름없는데 그건 일정 부분 사실로 밝혀진다. 그녀는 정말 나의 돈, 정확히는 나의 아버지인 최 사장의 재산을 노리고 나와 결혼한 것이었으니까.


여기까지 읽으면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하면서 직장과 보금자리와 자식을 모두 빼앗겼다는 사실에, 어쨌든 몇 년을 사랑하고 함께 살았던 아내가 그저 나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해 결혼까지 했었다는 막장 드라마 같은 현실에 큰 배신감과 증오를 느끼고 충격으로 고립을 택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상황이 끝난다면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좁고 낮은 다락방과 높은 지붕에서 일상을 꾸려나가는 주인공 나에게는, 사실 지나간 과거보다 더 신경 쓰이는 현재가 있다.





티슈를 떨어뜨리는 여자


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티슈를 발견한다. 그것은 부드럽고 향기가 나는 질 좋은 곽티슈인데, 누가 어떤 이유로 길거리에 깨끗한 티슈를 아무렇게나 뿌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가지 단서로 조금씩 그 범인을 유추하기 시작한다. 나는 티슈가 막연히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친근한 물건처럼 여겨진다는 이유를 들어 티슈를 날리는 범인을 '티슈여자'라고 칭하기 시작한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심지어 여자라는 성별조차 정확하지 않은 티슈여자에게 점점 스며들기 시작한다. 마치 부드러운 티슈에 스며드는 물처럼. 그 매개체는 모두 여자가 떨어뜨리는 티슈다. 나는 티슈여자가 집 주변에 있는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뜨리는 티슈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걸 알고 나서는 버려지는 게 아까워 조금씩 집으로 가지고 오기 시작한다. 티슈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티슈를 정리하던 나는 지금까지 주워왔던 티슈와는 조금 다른 티슈 세 장을 발견한다. 한 장은 물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티슈, 나머지 두 장은 모서리에 아주 연한 연분홍빛 키스마크가 찍혀 있는 티슈. 화장을 하던 도중에 묻은 걸까? 나는 여자라고 추측했던 티슈여자가 정말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들뜬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을 향한 남성의 본능적인 애욕이었을 수도 있고, 마주치는 사람 한 명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흥미진진한 사건을 일으켜 준 티슈여자를 향한 반가움과 동질감일 수도 있다. 어쨌든 티슈여자가 날린 티슈를 주워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일상이 되었을 즈음, 나는 티슈여자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티슈여자가 티슈에 문장을 적어 날린 것이다. 장난 삼아 적은 것인지 나를 의식해 적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문장을 유심히 읽어본다. 티슈에 적힌 글은 이러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Pleaes Please.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이 문장에 절박함이 묻어 있다고 생각하고는 티슈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째서 티슈여자는 허공에 티슈를 떨어뜨리는 기행을 일삼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추측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하나도 없다. 티슈여자가 티슈를 떨어뜨리는 아파트 14층에 가 보았지만 그녀를 만나지는 못하고, 대신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넙데데한 얼굴과 숱진 머리와 눈썹이 인상적인 남자를 마주친다. 물론 나를 수상쩍게 쳐다보는 그와도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나는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다.


아마 처음 글을 읽었을 때는 정체불명의 티슈여자가 누구인지, 왜 티슈를 뿌리고 다니는 건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 글은 티슈여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추리 소설이 아니니까. 이야기의 내용 전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절대 직접적으로 출연하지 않고 오직 주인공의 언급으로만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티슈여자는 떠도는 소문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 같았다. 물론 티슈여자의 정체는 밝혀진다. 후반부에 조금 놀라운 반전을, 어쩌면 이미 예상했을지도 모르는 전개를 타고서.





모두가 각자의 방법을 찾는다


나는 아침부터 비가 잔뜩 쏟아지는 날에 티슈 여자의 정체를 알게 된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초록색 경광등을 번뜩거리며 아파트 입구로 달려오는 하얀색 앰뷸런스와 함께.


티슈여자는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렸다. 티슈를 양손에 한 움큼 쥐고, 아이섀도와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바르는 정성스러운 화장을 한 채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바로 주인공이 아파트로 올라갔을 때 마주쳤던 남자였다. 티슈여자의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던, 넙데데한 얼굴과 숱진 머리와 눈썹이 인상적이었던 남자. 남자가 병원에 실려 간 뒤로 티슈는 한 장도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가 티슈여자임을 알고 나서도 14층을 올려다보며 티슈가 떨어지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티슈여자의 해명 대신 고소공포증을 얻는다. 2층 높이의 지붕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도 마치 14층에서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된 것이다.


티슈를 떨어뜨리는 것은 티슈여자였던 그가 찾아낸 하나의 '방법'이었다. 넙데데한 얼굴에 숱진 머리와 눈썹을 가졌음에도 여느 여자처럼 향기로운 화장품으로 화장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남들과는 달라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 물론 그가 화장하기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 이조차도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 그의 성 정체성을 단언할 수는 없다. 요즘 시대에는 화장과 꾸미기를 하지 않는 여자도, 화장과 꾸미기를 즐기는 남자도 가득하다. 티슈여자인 남자가 성 정체성이 여자였던 건지, 그저 화장하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남자였던 건지, 또 다른 이유나 사정이 있었던 건지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작가였어도 그걸 굳이 밝힐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으리라.


어쨌든 적어도 이 시대에는, 그리고 나와 티슈여자였던 남자가 살아가던 세상에서는 나와 티슈여자의 모습이 '정상적인 것'으로 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작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이혼하고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와 이렇다 할 직장도 없이 방황하는 철없는 사람. 그리고 마스카라와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바른 채 거리를 활보하는 둥그스름하고 너부죽한 남자. 아마 티슈여자였던 남자가 화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고 다녔다면 그를 대놓고 경악하거나 기피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에게 다가가 남자가 왜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냐며 쓸데없는 참견 본능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나타났을 것이다. 보편적이고 일반성이 존재하는 것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인륜을 저버리지도 않고 도덕을 반하지도 않은 티슈남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악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티슈여자였던 그는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모든 세상이 부정한다고 해도 자신의 본연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기 자신의 모습은 결코 지울 수 없다는 말을 세상에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42p -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삶의 방법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사람이므로, 그래서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알려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쉽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감싸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 주는 것뿐이다. 그녀도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지 않았다면 높은 곳에서 추락했을까.


어떠한 '방법'이 필요했던 사람은 티슈여자였던 남자만이 아니다. 나의 직장과 보금자리와 자식을 모두 가지고 사라진 그녀도 있다. 그녀는 사실 동성애자였다. 그녀는 애초에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여자였고, 나와 결혼할 당시에도 이미 동성 애인을 두고 있었다. 그녀의 성적 지향과는 상관없이 멀쩡한 배우자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데다가 명백하게 재산 분할을 노리고 다가와 결혼 생활을 이어간 그녀의 죄는 변호할 수 없다. 이유야 어쨌든, 그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상처와 배신감으로 물들게 하지 않았나.


그러나 나는 상처와 배신감을 안기고 매정하게 떠난 그녀를 이해한다. 티슈여자의 티슈처럼, 자신은 그녀에게 하나의 방법이었음을 이해한다. 이혼 경력과 돈이 필요했던 그녀는 첫 번째 결혼의 실패가 두 번째 결혼을 절반이라도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마침 자신을 따라다니던 부잣집 아들인 나를 결혼 상대로 선택했다.


그녀는 이해타산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감정과 시간을 이용하고 떠난 사람. 하지만 결국 그녀 또한 자신의 인생이,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이 조금이나마 순탄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력과 갈등과 죄책감에 시달렸을 거라고 소설에서는 암시한다. 그녀가 일상생활 곳곳에서 자주 눈물을 흘렸다는 점이 그렇다. 나는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애인인 그녀에 대한 그리움, 남편인 자신을 향한 미안함, 삶에 대한 버거움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녀의 눈물이 환희의 눈물이라고만 생각했었고, 그래서 그녀에게 눈물을 닦으라며 티슈 한 장을 건넨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후회한다. 가벼운 티슈 한 장의 위력을 그때는 알지 못했으니까.


나는 떠나버린 그녀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기로 한다.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직장에서의 불이익, 세상으로부터 날아오는 핍박이 없는 생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찾기 위해서 그녀가 찾은 유일한 삶의 방법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무척 대인배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누군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위해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된 사람이 되었다면, 과연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나를 배신한 그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그를 응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직접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어떤 감정이 들지 잘 모르겠다. 다만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고 주인공의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난 그녀도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행복하게, 떠난 만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녀가 떠나고 티슈여자가 더는 티슈를 날리지 않게 된 후에는 길고양이였던 하얀 구두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진짜 고양이었던 하얀 구두는 길거리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얀 구두의 독립을 응원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




20p -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참 현명하다. 아주 많은 것이 변해 돌아온 내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이 방은 어색하고 낯선 시가의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내게 벌어진 일들을 의외로 빨리 잊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낯선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와의 이별을 통해 받은 상처와 충격과 배신감으로 방황했다. 마치 자신이 돌아올 것을 예상한 듯 다락방을 매일 관리했던 다정한 어머니와도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도피하듯 다락방으로 숨어들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다락방과 지붕은 나에게 일종의 안식처였다. 변한 게 없는 공간은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한 사람에게 변하기 전의 시절을 회상하게 했다. 현재와 과거가 만나 무사히 시간이 녹아들게 해 주었다. 그것은 분명 나에게 큰 힘이었고, 어쩌면 방법을 찾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외면하고 다락방과 지붕에서만 지내는 것도 나에게는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원망으로 가득 찬 상대방을 향한 기억과 감정을 서서히 잊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방법.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온 제가 다시 무엇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법. 어떤 마음으로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방법 말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일어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시간이 없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줄 시간, 나에게 생긴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볼 시간,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고민할 시간이 없다. 내 마음에 둑처럼 쌓여가는 감정이 무엇인지 추측할 시간도, 그 감정을 어떤 방법으로 해소해야 하는지 찾을 시간도 없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을 충실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데도, 정작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다. 그 방법도 결국 나중에 생각하자고 넘겼다가 영원히 망각한 채 살아갈 뿐이다.


47p - "대체 왜 지붕에서 지내세요?" 나는 경비에게 티슈가 얼마나 쓸모가 많은 물건인지 아느냐고 물으려다 관뒀다. 대신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방법이 없어서요."


이윽고 나는 지붕에서 내려온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도무지 사다리를 타고 높은 지붕으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께는 손을 자주 닦을 수 있는 물티슈를, 어머니께는 땀을 닦을 수 있는 꽃무늬 곽티슈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복도를 걷는다. 그것이 다락방과 지붕을 벗어난 주인공이 찾아낸 방법인 걸까. 매정하고 냉혹한 세상을 등지고 있던 시간을 지나서, 다시 새로운 삶을 찾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나의 방법도 세상에 존재할까


현실의 나,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과정을 거친다. 무수한 갈등과 타협과 외면과 와해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살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나의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딱히 없다.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좋아하는 노래와 음악을 들으며 복잡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내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다. 내가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받는 상처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것들로 치료하고 싶으니까.


앞으로 내가 맞닥뜨릴 많은 상처와 갈등과 타협과 외면과 와해. 나는 세상에 억눌려 한없이 무력하고 우울해지기도 할 것이고, 반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순간도 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는다. 의외로 오랜 시간 인생을 살아온 사람조차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는 많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그건 잘못이 아니다. 열심히 달리다가 더는 달릴 수 없어서 뒤를 돌아보면, 그제야 '내가 언제 여기까지 왔지?', '그동안 뭘 두고 온 거지?' 같은 생각에 뒤늦게 멈추게 되는 것이다. 뒤늦게 내가 나를 돌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다. 후회를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빠른 시기에 후회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되짚어보고 싶다. 찾을 수 있는 것들은 늦기 전에 찾아내고 싶다.


삶은 매 순간 바뀐다. 10년 전의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과 지금의 내가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다른 만큼 10년 후에도, 12년 후에도, 15년 후에도 나는 변할 거고 한 챕터를 넘어가면 나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 그때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내며 살고 있겠지. 삶의 모습이 변하는 것처럼, 나도 항상 방황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의 방법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테니 내가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잘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다르게 태어났고 다르게 살아가고 다르게 사랑하니까, 그 많은 타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에서 잘 버티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방법을 찾아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그들이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니면 그냥 잊고 사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으니, 나는 내 방법에 가장 몰두해야 한다.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 화요일마다 발행하는 글인데, 퇴근 후 곧장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수요일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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