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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Mar 26. 2024

부모와 자식, 가족과 나, 모두의 성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 사노 아키라 著,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소설]


- 제목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

- 저자 :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사노 아키라(佐野晶) / 옮긴이 : 이영미

- 출판사 : 블루엘리펀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을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영화로 먼저 접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 또한 소설을 구매하기 전에 먼저 영화를 감상했다. 중학교 시절 동아리 시간에 봤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영화 감상문은 좀처럼 엄두가 나질 않아서 쓰는 감상문은 대부분 책에 관련된 글이지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상당히 흥행한 작품이고 전체적인 연출, 잔잔하지만 조금씩 술렁이는 분위기, 배우들의 연기 모두 일품이니 한 번 추천을 해드리고 싶다.


이 작품은 진정한 부모란 어떤 사람인지, 진정한 가족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한 사람의 성장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숨겨진 요소나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애초에 이야기와 함께 흘러가는 직관적인 주제 자체가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소설 속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


이 감상문은 2021년 4월 23일 금요일에 쓴 과거의 독서 감상문을 바탕으로 새롭게 쓰인 글이다. 열심히 감상문을 써 준 과거의 나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사실 독서를 좋아한다고 해도 항상 책을 읽기보다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싶어서, 감상문을 쓰기 귀찮아서,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니까 하며 독서와 감상문을 계속 미뤄왔던 것에 조금은 자책감이 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책과 글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이 감상문에는 책의 내용과 줄거리, 결말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온전히 감상문을 쓰는 나의 주관적인 감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지금보다 글을 더욱 갈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이 시켜서도 내가 시켜서도 아닌, 그저 숨을 쉬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 책과 함께 나 또한 한 계단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완벽한 가족의 불완전함, 불완벽한 가족의 완전함


모든 작품에는 주인공이 있다. 나는 등장인물 전부를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딱히 주인공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화자는 '노노미야 료타'라는 인물이다. 료타는 유명한 건설회사의 팀장으로 호텔 같은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재력과 사회적 지위 모두 갖춘 엘리트이다. 철저한 유능함을 옷처럼 입은 료타는 자신의 어린 아들 '노노미야 케이타'를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따로 입시 학원까지 보낼 정도로 완벽주의 성향 또한 강하다.


탄탄한 직장과 유복하고 안정된 집안, 차분하고 다정한 아내 '노노미야 미도리'와 건강한 아들 케이타. 누가 봐도 노노미야 가족은 완벽한 가정이라고 부를 만하다. 가족과의 시간보다는 업무를 중요시하는 료타의 모습도 흠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료타는 자기 나름대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 있으며, 가족 여행 일정을 매번 미룰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무관심으로만 일관하지는 않고, 아내 미도리와 아들 케이타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평화로웠던 지난 6년 간의 세월을 단번에 박살 내는 사건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바로 아들 케이타가 사실은 료타와 미도리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료타와 미도리는 친아들이 어느 외진 지역에서 사는 사이키 가족의 첫째 '사이키 류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류세이의 부모인 '사이키 유다이'와 '사이키 유카리'를 마주한 료타는 첫 만남에서부터 사이키 부부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특히 류세이의 아버지라는 유다이의 후줄근한 차림, 정신없이 찍힌 동영상을 보며 류세이가 어떤 아이인지 설명하는 모습, 케이타와 류세이가 태어난 병원 측에 배상금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내는 태도를 보며 경박하다고 생각한다. 료타는 사이키 가족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고, 첫째 류세이 말고도 아이가 둘이나 더 있고, 부모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해 보인다며 불만을 품는다. 그러던 중 "둘 다 맡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상사의 조언 후에 밝혀지지만, 료타를 진심으로 걱정하여 한 조언은 아니었다. 을 계기로 료타는 지금의 아들 케이타와 친아들 류세이를 모두 자신들이 맡는 게 좋겠다고 결정하는데, 당연하게도 그 계획은 실패하고 사이키 부부와도 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두 아이를 교환하면서 안정적이었던 노노미야 가족에게도 서서히 균열이 찾아온다. 이후 덮쳐오는 갈등과 고뇌를 통해, 다소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했던 료타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과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기본적인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완벽한 가족의 불완전함, 불완벽한 ― 사전에 '불완벽하다'라는 단어는 없지만, 완벽하지 않다(璧)는 의미로서 가족의 완전함을 그려내는 이야기.





한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균형


노노미야 가족과 사이키 가족은 정반대이다. 도쿄의 고급 아파트에서 매일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노노미야 가족과는 달리 사이키 가족은 외진 시골의 낮은 주택에서 살고, 규칙과 예절을 중요시하는 노노미야 가족과는 달리 사이키 가족은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다. 당연히 부모와 자식의 성격, 성향도 상극을 이룬다.


아이를 교환한 후 료타는 류세이에게 지켜야 할 규칙 리스트를 준다. 게임은 하루에 30분만 한다거나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아들이'었'던 케이타가 당연하게 지켜왔던 규칙이기에 류세이에게도 규칙을 지키며 생활할 것을 요구하지만, 류세이는 그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왜?"라고 물으며 도리어 료타를 당황하게 만든다. 당연한 반응이다. 류세이는 지금껏 집안에서 규칙을 지키며 계획적인 생활을 한 적이 없었고, 조용하고 느긋한 케이타와는 다르게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아이였으니까. 처음에는 피가 이어져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안일하게 생각하던 료타도 자신과 닮은 부분이 고집이 센 부분밖에 보이지 않는 류세이에게 점점 지쳐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힘든 사람은 료타의 아내이자 케이타의 엄마였던 미도리이다. 료타는 워낙 회사와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강했기에, 가족을 사랑하기는 해도 가정을 자신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었다. 케이타를 키운 사람도 류세이를 키우는 사람도 사실상 모든 일을 결정하는 료타가 아니라 그 결정을 따르는 미도리이다. 게다가 미도리, 류세이와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점점 가족 문제를 회피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료타를 보면서 미도리는 실망감과 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미도리가 유카리와 연락한다는 사실을 알고 "거리를 좀 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료타에게 정색하며 "엄마끼리 주고받을 정보가 많아. 당신은 말 모르겠지만."이라고 싸늘하게 대답하며 빈정거리고, '케이타를 키운 사람은 나다. 료타가 아니다.'라고 독백하기도 한다.


육 년 동안 정성으로 키운 아들 케이타를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케이타와 달리 거칠고 통제하기 어려운 류세이와의 고단하고 숨 막히는 일상에 미도리는 몸도 마음도 쇠약해진다. 점점 웃음을 잃고, 료타에게 무신경해진다. 무엇보다 케이타가 친자식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을 때 케이타가 자신만큼 우수하지 못하며 욕심도 없고 매사에 느긋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역시 그랬군"이라고 말했던 료타를 향한 원망까지 더해져서, 더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분명하게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가족의 모습에 뒤늦게 위기감을 가지지만 료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노노미야 집안과는 반대로 느긋하고 유쾌한 사이키 집안 역시도 마냥 평온하지는 않다. 유다이와 유카리 또한 사랑하던 아들을 잃었고, 그동안 류세이에게 품었던 부모의 사랑과 수많은 추억을 마음에 묻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다만 사이키 집안의 모습은 노노미야 집안과 조금 다르다. 케이타와의 이별, 케이타와 류세이의 대비되는 성향에 따른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료타와 미도리와는 달리 유다이와 유카리는 케이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어린 케이타의 아픔을 이해하고, 케이타가 갑작스러운 가족의 변화로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것은 사이키 가족이 어느 한 사람의 주도가 아니라 모든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표현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결국 두 집안의 가족들은 조금씩 뒤틀린 채로, 상처를 덮어두지도 극복하지도 못한 채 자리를 맴돌게 된다. 괴로운 것은 비단 어른들만이 아니다. 지나친 자만으로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판단하려 했던 료타는, 끝내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붕괴'에서 시작되는 깨달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했던 료타와 노노미야 집안이 붕괴되면서부터 이 책의 묘미가 시작된다. 유능하고 회사에 헌신적이었던 료타는 꽃으로 비유되는 건축설계본부에서 흙으로 비유되는 기술연구소로 밀려난다. 료타에게 두 아이를 모두 맡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었던, 료타가 존경했던 상사가 사실은 능력이 뛰어나고 진급도 빠른 료타를 은연중에 질투하고 견제했었던 것이다. 건축설계본부에서는 팀장이자 리더로서 많은 일을 주도했지만, 기술연구소에서는 이미 오래 근무했던 연구원들이 모든 연구와 업무를 알아서 진행하기에 료타는 이렇다 할 업무도 맡은 책임도 없다. 그저 연구원이 말하는 연구 결과를 따분하게 들을 뿐이다.


그곳에서 료타는 자신의 욕심과 무책임이 얼마나 어리석고 건방진 마음이었는지, 자신이 그동안 가족들에게 주었던 상처와 깊어진 감정의 골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료타는 기술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인공 잡목림에서 어떤 사람을 본다. 밀짚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고, 곤충채집망을 손에 들고 있는, 마치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닮은 듯한 사람. 료타는 곧장 아래로 내려가 숲을 연구하는 연구소 직원 '야마베'를 만난다.


본래 료타처럼 건축가였다는 야마베는 상수리나무에 붙은 매미 허물을 바라보는 료타에게 말한다. "매미가 여기서 알을 낳고, 그 유충이 자라서 흙 속에서 나와 날개돋이를 하고, 다시 허물을 남기게 되기까지 십오 년은 걸렸어요." 그 말에 료타는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무심코 중얼거린다. "그렇게나……." 그리고 야마베는, 마치 료타의 마음을 훤히 읽은 것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275p - "긴가요? 십오 년이?"


료타는 생각한다. 과연 긴 시간이었을까. 케이타를 키운 시간과 류세이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 애당초 그것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사람으로 인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인지.




집이 그리웠던 류세이가 혼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사이키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료타는 황급히 류세이를 데리러 간다. 그곳에 있던 케이타는 류세이가 돌아왔으니 아빠와 했던 '강해지는 미션'을 모두 수행한 자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료타가 데리러 온 사람이 자신이 아닌 류세이라는 걸 알아챈 케이타는 벽장으로 몸을 숨기고 료타를 보러 나가지 않는다. 료타 또한 케이타를 볼 생각이 없었고 말도 건네지 않았다. '괜히 집 생각만 나게 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엄격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이 밑동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는 료타의 강박적인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케이타를 버리고 핏줄인 류세이를 선택한 자신이 후회하고 있음을, 료타는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려서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읽기만 해도 가슴이 아리다. 항상 당차고 활발했던 류세이는 가족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흐느껴 울고, 아빠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케이타는 내내 기운이 없다. 그리고 류세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료타는 자신이 한 말을 생각한다. 유다이와 유카리가 류세이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다시 돌려보내라고 한 말에 료타는 "괜찮습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라고 대답했지만, 정작 료타는 할 일도 없으면서 주말에도 서재에 틀어박혀 일하는 척했던 적이 있었다. 난폭하게 구는 류세이가 벅차서 미도리에게 미뤄버리고 사이키 가족에게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며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료타는 그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료타는 사과하며 우는 미도리에게서 새어머니 '노부코'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 '료스케'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본다. 좋은 점은 핏줄이라고 여기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은 가정교육 탓하는 아버지의 모습. 불리한 건 남에게 밀어버리는 아버지의 혐오스러운 점을 자신이 그대로 닮았다는 점을 알게 된 료타는 미도리에게 말한다. "당신 탓이 아니야. 내 탓이야."라고 말하면서, 이윽고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후로 노노미야 가족은 관계를 점점 회복된다. 료타와 미도리는 낯설지만 사랑스러운 친아들 류세이를 받아들이고 더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류세이와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류세이 또한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낀 듯이 료타와 미도리를 적극적으로 따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마음에는 상처가 존재한다. 류세이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처음으로 울고, 미도리는 류세이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 마치 케이타를 배신한 것 같다며 슬퍼하고, 료타는 두 사람을 보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삼킨다.


그리고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을 때, 료타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노노미야 가족과 사이키 가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찍었던 사진. 사진 속 케이타는 료타와 똑같은 각도로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있다. 료타는 가르쳐준 적도 없는 자신의 버릇을 어느 순간 닮은 케이타를 보고, 케이타가 함께 살던 시절에 찍었던 자신의 사진을 본다. 잠든 모습. 일하는 모습. 자료를 읽고 있는 모습.


료타는 깨닫는다. 케이타가 보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고, 웃는 얼굴이 아닌 뒷모습뿐이었다는 사실을. 료타는 이야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우는 것은 나약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료타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잘못을, 책임을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처럼 느낀다. 눈물은 결코 약한 자의 투정이 아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그만큼 강인한 마음과 굳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아침도 먹지 않고 료타와 미도리가 류세이를 데리고 사이키 가족을 찾아갔을 때, 유다이는 마치 노노미야 가족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웃고 농담을 건넨다. 그곳에서 케이타를 만나지만 이미 료타에게서 상처받은 케이타는 울상이 된 채로 도망가고, 자신을 천천히 따라오는 료타에게 "아빠는 아빠도 아니야."라며 그동안 쌓였던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토로한다. 료타는 진심으로 사과를 전한다. "그렇지. 하지만 육 년 동안은…… 육 년 동안은 아빠였어. 많이 부족하긴 했어도 아빠였잖니." 그렇게 말한다. 료타는 언제까지고 품속에 안고 있을 작정으로 케이타의 몸을 끌어안고, 이윽고 케이타는 다정하게 료타의 등을 안아준다. 가족의 의미를 깨달은 료타와 케이타가 재회한 장면은 핏줄이나 혈육 따위가 감히 관여할 수 없는, 진정한 '가족'이 되는 순간을 담은 명장면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료타는 사이키 기족의 집으로 들어가며 생각한다.


302p - 다 함께 캠핑을 가면 즐겁겠지. 그러려면 일단 차부터 새로 바꾸자. 가능하면 두 가족이 모두 탈 수 있고, 짐도 가득 실을 수 있는 8인승 자동차가 좋다. 텐트도 5인용짜리를 하나 더 사고······. 아니, 큰 텐트를 사야 한다. 작은 텐트 두 개면 재미가 없다. 열두 명이 잘 수 있는 대형 텐트가 있었다. 거기서 다 함께 대충 누워 자면 된다. 캠핑만이 아니다. 좀 더 자주 오가자. 그렇지만 도쿄에도 놀러 오라고 하려면 어떻게 한담. 그 맨션에서는 다 자기는커녕 앉기도 힘들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는 매우 마음에 들었던 고급 맨션이 상당히 빛바래 보였다. 료타는 미도리의 친정집을 떠올렸다. 장모가 청소하기 벅차다고 투덜거렸던 그 넓은 집을.


료타의 심경변화는 놀랍다. 집안의 원조도 없이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말 그대로 완벽한 인생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큰 자신감과 자부심을 안고 산다. 그만큼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기도, 자신의 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료타는 완벽한 가정이 사실은 불완전했음을 인정했고 자신의 부족한 점과 잘못을 명백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든 점을 불만스럽게 여겼던 사이키 가족과 함께 교류하며 즐겁게 지내는 일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료타는 가족이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료타는 여전히 케이타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키워내려 했을 것이고,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케이타에게 불만을 품었을 것이고, 성장한 케이타와 성장하지 못한 료타는 언젠가 뒤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는 케이타도 아이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가 아닐까.


마흔두 살의 완벽주의자 엘리트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여는 것. 사람이 한층 더 깊은 이해심과 시야를 가지게 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괴로운 과정을 거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기에, 오히려 완벽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던 료타가 사실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미숙하고 완벽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완벽함과 우수함만을 추구하는 고집 자체가 아직 여물지 못하고 철없는 마음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가족 이야기만을 담았다고 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야기, 그리고 노노미야 료타라는 한 남자의 성장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모두가 성장하는 순간


나는 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우리나라는 대체로 성장 키워드를 좋아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떠한 존재태어나고, 자라고, 변하고, 정신과 마음이 제각기 다른 형태와 색깔로 물들어가는 과정이 좋다. 외조부모님 댁에서 키우는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으면 똑같이 생긴 강아지들도 전부 성격이 다른 게 신기했었다. 어떤 강아지는 사람이 쓰다듬어주면 신나서 더욱 달려들었지만 어떤 강아지는 겁을 먹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고, 어떤 강아지는 사람 손이 닿자마자 낑낑거리며 엄살을 부렸다. 그 강아지들도 언젠가 모두 성장하여 늠름한 개가 되었겠지.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성장하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마음이 갓 태어난 동물을 끌어안은 것처럼 뜨뜻해진다. 아이는 아이로서 성장하고, 어른은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는 지금 나는 얼마나 컸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클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은 아직 나에게 남은 길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직 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나의 가족을 알지 못하는 나는 알아야 할 일도 느껴야 할 것도 많이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책이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책의 제목은 곧 결말을 나타내기도 한다. 노노미야 료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됨으로써 한 사람으로서도 성장한다. 미도리와 유다이, 유카리 또한 그럴 것이고,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케이타와 류세이도 그럴 것이다. 누가 누구의 부모이고 자식임을 신경 쓰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리라 생각하면 괜히 뭉클해진다. 경제적인 형편, 분위기,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다른 환경의 두 집안이 뒤바뀐 아이를 계기로 이어지고 맺어지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만큼 두 가족이 가까워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책에는 가족이 함께 보내며 자란 시간, 유대감, 사랑은 어느 한 명의 힘으로 결정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작가의 신념이 담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도 영화 제작에 바빠서 집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다 보니, 어린 딸이 자신을 아버지가 아닌 손님으로 인식하고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을 한 것에 충격을 받아서라고 한다. 그저 혈연으로만 맺어진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마음, 서로를 한 인격체이자 사람으로서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로 머무르는 존재. 우리는 그것을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유독 불필요한 가족주의와 혈연주의가 강한 나라인 만큼 이런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책을 읽은 건 오래전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독후감을 썼다. 글을 유려하게 쓰는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해서 어수선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만 했지만, 적어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미사여구로 꾸미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읽은 책과 이야기를 통해 느낀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줄거리를 너무 많이 썼나 싶지만, 책에는 훨씬 많은 이야기와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있다.


영화는 책에 비해 내용이 축약된 부분도 있고 책에서는 비중 있게 나오는 인물이 영화에서는 얼굴을 거의 비추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든 책이든 모두 가히 명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잔잔하고 섬세한 문체의 글을 읽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린다.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시청하거나 영화를 보지 않고 아예 책만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노노미야 료타처럼, 과거의 후회를 말미암아 한 계단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과거의 철없고 서툴렀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단단하고, 생각이 깊고,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그렇게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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