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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16. 2024

이토록 처절하고 뜨거운 사랑

최진영 著, <구의 증명> [장편소설]


- 제목 : 구의 증명

- 저자 : 최진영

- 출판사 : 은행나무




유명한 책이다. 다만 이 책이 언제부터 유명했는지는 모르겠다. 2015년 3월 30일에 초판을 인쇄한 이 소설은 당시에는 분명 이 정도로 팔리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났다.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이 책이 있었고 처음 읽었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한 시간 넘게 온갖 책장 사이를 기웃거리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이 책이 떠올라서 결국 책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산 책은 부드러운 표지의 초판본이지만 지금 서점에 가면 전혀 다른 이미지의 리커버판 표지가 하드커버로 되어 있다. 하하, 나는 표지가 바뀌기 전에 무사히 원조 책을 구매한 사람이다.


다분히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데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잠시 뒤로 주춤하면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던 책. 어느 순간부터 SNS에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하며 입소문을 타던 이 책은 15만 부가 넘게 팔렸다. 유튜브에는 구의 증명에 나오는 구절을 제목으로 한 플레이리스트가 있고, 그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135만을 찍었다. 나도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음악을 들었다. 책의 분위기에 걸맞게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음악이 가득했다. 그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음악을 들으면서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썼다. 글이 술술 나왔다. 역시 음악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의 실로 엮인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는 이야기에 멱살 잡혀 끌려가느라 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읽고 나서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게 정녕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맞나 싶다가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냐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덮지 않았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가족이나 친구 말고는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 늘 사랑을 궁금해하는 나에게 이 책은 사랑의 가장 처절하고 창백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랑이라고, 사랑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극락과 나락의 감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기분이랄까.


이 글에는 책의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이야기의 핵심 내용이 퍼졌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읽는 게 가장 좋다. 이 책의 미묘한 재미는 다소 거북할 만큼 비창하고 암울한 분위기, 그리고 식인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요소가 더해진 장면, 당장 시들어 쓰러질 듯하면서도 끝까지 이어지는 위태로운 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처절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


책의 뒤표지에는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의문이었다. 과연 이 이야기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처럼 높고, 위대하고, 훌륭하고, 갸륵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 가만히 곱씹으면서 이내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수긍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순에 시달렸다는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구'와 '담'이다. 구는 주인공을 넘어서 제목까지 차지했다. 이 소설은 구와 담, 두 사람의 회상과 독백이 불규칙적으로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소설의 시작은 담의 독백이고 소설의 끝은 구의 독백이다. 보통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은 한 사람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구와 담의 독백이 모두 나오기에 어느 누구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주인공이 두 명일 때 오직 한 사람만의 내면을 알 수 있다는 점은 신비로운 맛이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잔여물처럼 남는 답답함과 호기심이 있다. 구의 증명은 그런 느낌이 덜하다는 점에서 상쾌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었다.


이야기는 구와 담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는 과정을 보여준다. 배려보다는 치기가 앞선 미성숙한 사랑, 서로의 존재를 갈구하는 사랑,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사랑, 이내 구가 담이 되고 담이 구가 될 정도로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사랑. 같은 사람이지만 성장 과정에 따라 두 사람의 사랑은 전혀 다른 형태가 된다. 종국에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한 사이가 된다. 몇 년 동안 헤어졌다가 갈등을 겪으며 다투기도 하지만,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할 운명이었던 것처럼 구와 담은 사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랑만을 그리지 않았다. 사랑과 동시에 태어나는 이별도 함께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이 독백과 회상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하다가 불현듯 현재로 돌아와서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린 시간을 타고 흐르는 식이다. 구는 죽는다. 그리고 구가 죽는다는 사실은 작품 초반부에 밝혀진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 구와 담이 자라면서 어떻게 사랑하는지와 동시에 구가 왜 죽는지, 구가 죽은 이후 담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함께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의 죽음과 그로 인해 남겨진 자가 느끼는 절망, 슬픔, 외로움 따위의 비참하고 차가운 감정이 도사린 공기. 읽는 내내 그런 서늘한 기운이 살결을 스치는 걸 느꼈다.




구와 담은 어린 시절 같은 반이었다. 당시에는 여느 철없고 솔직하지 못하고 거친 남자애들이 그러하듯 구는 담을 괴롭혔고, 담은 그런 구를 미워했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 혹은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미워했다. ― 때로는 구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고 서투른 아이들이 그러하듯 구와 담은 좀처럼 친해지지 못하다가, 우연히 같은 날에 학교에 가지 않고 단둘이 골목에서 마주친 날 이후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구와 담이 사귄다는 소문도 돈다. 다만 구와 담은 그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을 뿐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어떠한 사정으로 잠시 떨어졌던 구와 담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 다시 만나는데, 구는 만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몸이 성장한 담의 모습에 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본격적인 사춘기에 들어섰으니 이성 친구를 마냥 순수한 친구로서 대하기 어려울 때다. 하물며 구는 담을 좋아했으니까. 담 역시도 몸이 크고 말수가 적어지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행동도 좁아진 구를 낯선 사람처럼 느끼지만, 두 사람은 다시 가까이 지내기 시작하고 이후 육체적 관계를 가질 정도로 서로를 향한 애욕을 적극적으로 대면한다. 더는 사랑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럭저럭 평화롭게 관계를 이어가던 구와 담 사이에 다시 거리가 생겨버리는데, 바로 구와 담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생 '노마'가 구와 담 앞에서 트럭에 치여 죽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다. 소중한 사람을 영영 떠나보낸 구와 담은 허탈하고 무거운 마음을 각자 짊어진 채 서로를 피하고, 구는 담 대신 자신을 챙겨주는 '진주'라는 누나를 만나 그녀와 가까이 지낸다. 이미 한 번 결혼을 했었고 전남편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진주 누나. 구와 진주 누나의 관계는 친밀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내내 불안하다.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가지기도 하지만 구는 끝내 진주를 사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마음 쏟는 관계에 지쳐버린 진주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면서 구에게 각자 길을 가자며 이별을 고한다. 이후 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군대에 입대한다. 아마 이 시기가 구와 담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긴 부재이자 이별이었을 것이다.


현실이었다면 이대로 헤어져서 영영 모르는 사람으로 살 법도 한데, 아직은 끝나면 안 되는 인연이라고 말하듯이 구와 담은 이별하지 않았다. 구는 제대한 뒤에 담을 찾아갔고 담은 그런 구를 받아들인다. 마치 며칠 전에도 만났던 것처럼 무덤덤한 모습으로. 그렇게 구와 담은 구가 죽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사랑한다. 구의 부모가 구에게 남기고 도망친 사채빚으로 허덕이는 동안 구와 담은 사채업자들을 피해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친다. 그러다가 사채업자들에게 붙잡힌 구가 감각이 흐려질 정도로 얻어맞은 후 도망치다가 길바닥에서 서서히 죽는다. 그리고 담은 죽은 구의 몸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 또는 가지고 와서 ― 따뜻한 물에 씻기고, 구의 몸을 먹는다.


그렇다. 담은 구를 먹는다. 정말로 그의 육체를 입에 넣고 씹어서 삼킨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라는 문장이 현실이 된 장면이다. 구와 담은 서로가 서로의 삶의 일부였다. 아니면 일부를 넘어서 전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랑했다. 담이 구를 먹어치웠을 때, 담의 몸으로 들어간 과연 구는 담의 일부가 되었을까. 구와 담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가 되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하나였던 적이 없었을까.





너는 내가 되었고, 나는 네가 되었다


담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없어 외할아버지와 살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비구니로 살던 이모 손에 키워졌다. 구는 부모가 있기는 했으나 사실상 없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나중에는 구에게 거액의 빚을 남긴 채 사라졌으니 구의 부모는 사실상 구의 죽음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견고한 애정과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의 부재 속에서 자란 두 아이의 세상은 외로웠다. 세상에서 밀려나듯 소외된 구와 담은 불안과 고독으로 벌어진 마음의 틈새를 서로의 존재로 채웠다. 구와 담이 사랑하는 존재였던 노마가 죽은 후에는 담의 이모도 죽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상대방을 그토록 갈망했던 이유 또한 공허하고 불안정한 마음을 기댈 사람이 유일무이 서로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런 이유 하나로 구와 담의 사랑을 전부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는 정의하지 못하는 모호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감정이든 운명이든 이끌림이든 반드시 무언가가 존재할 테니까.


구와 담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 아프고 슬펐다. 핏기 없는 얼굴이 떠오른다. 처참하고 비통한 결말.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기에 도리어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이었다. 불완전하고 이리저리 뒤틀려 있기에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걸까. 떠나려 하다가도 빈자리를 지우지 못하고 내내 상대방을 그리워하다가 다시 본능처럼 곁으로 돌아오는 사랑.


구와 담이 살아가던 세상은 어떻게든 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 것처럼 군다. 구의 부모가 구를 보증인으로 세워 많은 빚을 남기고 도망친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처참했다. 노마와 이모와 구의 죽음을 겪으며 홀로 남겨진 담은 죽은 구의 몸을 먹으면서 운다. 죽은 구의 몸을 먹으면서 구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고, 어디로도 보낼 수 없다고 절규하는 담의 마음을 읽으면서 절절하고 쓰라린 통한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의 마음마저 무거워졌다. 숨을 잃고도 여전히 뜨겁게 끓어오르는 사랑은…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구와 담은 두 개의 몸과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철저한 타인으로 태어나 살았지만,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존재의 구별이 희미해질 정도가 아니었을까. 구는 구만이 아니라 담이었고 담 또한 담만이 아니라 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건 비극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행복하기 위해 같이 있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함께 있자는 담의 말처럼, 두 사람은 상대방의 심장이 되어버려서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이 그토록 쓰라리고 힘겨웠으리라 생각했다.






그 '증명'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구의 증명. 구가 남기고 떠난 그 '증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이 죽은 구의 몸을 먹는, 사랑하는 연인의 시선을 먹어치우는 섬뜩한 담의 애도 ― 哀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 와 그녀의 독백을 파헤치며 가만히 추측해 보았다.


163p -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164p -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구를 죽인 것은 구에게 거대한 빚을 남기고 사라진 부모, 그리고 죄 없는 구에게서 돈을 받아내며 구를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괴롭힌 사채업자들이다. 다만 이들은 가장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가해자다. 구를 죽게 만든 대상은 얼마든지 거시적으로 넓힐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희생양으로 내세웠음에도 돈을 빌려준 악덕 대부업체, 그들을 제지하거나 막아서거나 검거하지 않는 허술한 법과 제도,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맞아가는 구를 보호해 주지 않은 세상, 사람과 사람이 끊임없이 교류하고 관계하며 굴러가는 세상,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던 아이가 인간도 물건 취급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만든 세상,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 이 세상…. 참 많기도 하다. 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인 기막힌 삶의 업보로 죽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구의 죽음은 무엇을 증명했을까? 구의 죽음은 때로는 인간이 짐승보다 더 짐승 같아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악의로 괴롭히기도, 버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끔찍한 사실을 증명했다. 정작 그 죽은 인간의 육체를 먹어치우는 존재가 그를 사랑했고 그가 사랑했던, 죽은 구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친절하고 사랑스러웠던 담이라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증명할까. 구는 자신을 먹는 담을 물끄러미 보면서도 그저 담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데. 구는 사랑을 증명했고, 삶을 증명했고, 종국에는 죽음을 증명했다.




165p - 차라리 내가 죽지. 내가 떠나지. 전화부스에서 서른 걸음 떨어진 으슥한 곳에서 구를 찾아냈을 때, 구의 몸은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다. 눈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코는 뭉개졌고 앞니가 빠져 있었다. 아픈지, 많이 아픈지, 나는 묻고 또 물었지만 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를 끌어안고서 새벽이 오도록 구의 서른 걸음을 상상했다. 죽어가며 간신히 움직인 그 의지를, 뼈와 근육을, 구의 마음을. 어떤 상상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나의 뇌를 꺼내 내팽개치고 싶었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담은 절망했다. 연인이라는 이름을 넘어서는, 살아가는 이유이자 제 심장의 일부처럼 여길 정도로 사랑하던 사람이 길바닥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채 홀로 죽은 모습을 발견한 사람의 절망. 그런 장면과 그 순간에 도사리는 강렬하고도 끔찍한 감정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이 책의 작가였어도 차마 그 순간은 온전히 떠올리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담 또한 죽어가던 구의 순간과 마음을 상상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뇌를 꺼내 내팽개치고 싶었다고 말했을까. 한평생 붙잡았던 사랑의 결말이 이렇게나 처절하고 아프다니.



176~177p -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 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채 살고 싶다.


이건 작가의 말이다. 어쩌면 구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고, 살면서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모순적인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였을까.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생을 향한 애착과 형용하기 어려운 갈망 같은 존재들. 구는 죽으면서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담이 너를 보며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처럼,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문구처럼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까.


역시 잘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는 열 번 읽어도 여전히 부족하다. 백 번은 읽어야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보이고,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인지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의 자각이 얼마나 서늘하고 짜릿한지 어렴풋하게 안다. 언젠가 이 책에도 그런 서늘하고 짜릿한 감각이 찾아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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