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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23. 2024

나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著, <어린 왕자> [소설]


- 제목 : 어린 왕자

-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옮긴이 : 황현산

- 출판사 : 열린책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작 동화. 책 내용은 잘 몰라도 제목만큼은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유명한 책을 제대로 읽은 건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이고, 제대로 감상문을 쓴 날은 반년이 지난 2024년 4월 7일 일요일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명작에 약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나 영화 중에서 마음 다잡고 챙겨 본 작품은 손에 꼽는다. 어린 왕자가 그중 하나이다.


오래전 나온 작품이고 워낙 유명해서 줄거리뿐만 아니라 책 속 등장인물의 상징, 대사의 의미, 문장과 연출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알려졌기에 이번 책은 부담이 덜하다. 주관적인 감상이 보편화된 작품은 친절하게 느껴진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같은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생각과 해석과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독서의 좋은 점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모든 교류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서는 검색 한 번으로도 작품에 대한 수많은 감상평을 볼 수 있으니까. 그 점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지금도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읽으니 이야기가 더욱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더불어 이 책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반대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려서인지 가늠이 어렵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펼침과 동시에 나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별세계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


이 책은 일인칭 시점으로 흐른다. 화자는 작가 생텍쥐페리를 상징하는 어느 경비행기 조종사. 그는 어른이고, 그가 만난 어린 왕자는 말 그대로 어린 아이다. 아이와 어른이 모두 주인공이다.


책을 읽으면 어른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합리와 이윤만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어른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마음은 불가해와 혼란으로 가득하다. 모종의 이유로 자신이 살던 별 ― 엄밀히 따지면 소행성이지만, 이 책에서는 '행성'보다 '별'이라는 단어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 에서 떠난 어린 왕자는 다른 별에서 다양한 어른을 만나는데, 그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 모든 존재를 자신의 신민으로 생각하며 입을 열 때마다 어린 왕자에게 명령을 내리는 왕,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박수를 치며 찬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허영쟁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 사실을 잊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는 술꾼, 자신이 소유한다고 주장하는 별의 숫자를 세느라 바쁜 사업가…. 어린 왕자는 그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역시 이상해. 아주 많이 이상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도 그들보다 덜 이상한 어른들도 만나긴 한다. 아주 작은 별에서 1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 그리고 커다란 책에 지도를 그리는 지리학자다. 그들은 이상하다기보단 안타깝거나 학구적이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그것을 반복해야 하는 어른.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 지식의 실체를 직접 마주한 적은 없는 어른. 어린 왕자는 지구라는 별이 평판이 좋다는 지리학자의 말을 듣고 지구에 도착한다. 그리고 사막에 추락한 경비행기 조종사인 '나'는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두 사람이 친구가 되며 ― 혹은 친구가 되어가며 ― 이야기는 시작된다.




8p -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자꾸자꾸 설명을 해주자니 어린애에겐 힘겨운 일이다.


21p - 어른들은 이렇다.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아주 너그러워야 한다.


이 책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너그럽게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였던 시절과 멀어지고 어른이 되면 마치 어린 시절이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 간극을 가진다. 어른이 된 나의 눈에 아이였던 나는 그저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고, 생각 없이 감정에만 충실했던 부끄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린 왕자를 만든 생텍쥐페리는 정반대로 말한다. 사실 아이들의 눈에도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아이 눈에 어른은 자꾸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을 귀찮게 캐묻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려 드는 이상한 사람이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별을 따는 방법도 모르고, 하늘을 내달리는 요정의 빛나는 마차도 보지 못하고, 상어와 거북이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그래도 이해한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을 이해해 줘야 한다. 무언가를 물어보면 항상 "글쎄? 왜 그럴까?"라고 되묻거나 "쓸데없이 그런 거 물어보지 마!"라며 화를 내는 어른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항상 어른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이끌며 가르쳐 주는 입장인데, 반대로 아이 또한 어른에게 많은 걸 알려주는구나! 어른 또한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밝은 스승을 놓치는 멍청한 짓이다.


경비행기 조종사 또한 어린 왕자를 만나고 닷새째 되는 날, 모터에 너무 꽉 조인 볼트를 푸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옆에서 자꾸 어린 왕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덜컥 화를 내고 만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외쳤을 때, 어린 왕자는 "아저씨도 어른들같이 말하네!"라고 대답하며 화를 낸다. 경비행기 조종사가 그려준 양이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꽃을 먹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양이 가시가 있는 꽃도 먹어버린다면 꽃이 힘겹게 만드는 가시에는 무슨 소용이 있는 거냐고 말하면서, 양과 꽃들의 전쟁은 뚱뚱하고 시뻘건 어른의 덧셈보다 중요하고 진지한 일이라고 말하며 화를 낸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두고 온 조그만 장미꽃을 떠올리며 흐느껴 운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에서 가진 감정은 유난히 복잡하고 또한 입체적이며 아주 깊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 해도 우정, 사랑, 동질감, 미움, 그리움, 동료애, 가족애, 연민, 동경심, 불가해 등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감정이란 감정은 죄다 들어 있다. 그만큼 어린 왕자가 자신이 정성과 시간을 들인 단 한 송이 장미꽃에게 가진 애정은 남다르다. 별들을 바라보며 '저 하늘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도 행복해하는 어린 왕자에게 양이 장미꽃을 먹어 버리는 일은 세상이 무너지는 일과 같지만, 눈앞의 비행기만 바라보는 조종사에게는 그걸 생각하고 이해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름을 지어주고 애정을 듬뿍 주는 인형 하나도 매일 끌어안고 다니는 아이들과 달리, 어떤 물건이든 쉽게 새것으로 교체하는 어른들의 차이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는 모두 커서 어른이 된다. 어린 왕자가 지구로 오는 길에서 만난 어른들도 생각해 보면 참 가여운 사람들이다. 그들도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자신의 신민이나 자신을 찬양하는 구경꾼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으리라. 그 어른들도 처음부터 자멸감과 자괴감을 술로 잊어버리는 삶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가질 수도 없는 별을 세느라 온종일 숫자를 세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 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해야 하는 괴로움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리학자는 커다란 책에 지도를 그려 넣는 대신 자신이 지도에 그리는 산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어른이 되었고, 더는 자신이 붙박이처럼 고정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무료하고 안쓰러운 어른들. 어린 왕자가 만난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존재를 아주 귀중한 보물인 줄 알고 끌어안고 살다가 정작 품에 안아야 했을 것들을 내버려 둔 채 지나온 시간들. 세상에 굴복하고 세속적인 어른이 되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나약하고 우울한 어른들도 수없이 많다. 나는 항상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버릴까 무섭다. 나의 삶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어른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물론 어른은 아이처럼 살 수 없다. 성장한 아이는 어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른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코 쓸모없는 게 아니다. 돈, 지위, 명예, 지식, 재산, 인맥. 그것들은 생계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재미없는 어른의 삶에 의지나 생기를 불어넣거나 때로는 즐거운 노래가 되어 흥겨운 하루하루를 만든다. 하지만 쓸모는 있을지언정 과연 그것이 진정 삶에서 가장 귀중하다고 하냐면 그렇다고는 대답할 수 없다. 그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은 분명 한순간일 테니까.





외로운 세상 속,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


73p - 「사람들은 어디 있니?」 마침내 어린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막은 좀 외롭구나…….」

「사람들이 사는 곳도 역시 외롭지.」 뱀이 말했다.


사막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건물이 빽빽하게 늘어선 채 온종일 화려하게 빛나지만, 정작 그 속은 사막처럼 텅 비어 있는 것들. 항상 시간과 돈을 따지며 사랑조차도 수지타산을 따져야만 하는 각박한 삶이 수놓아 만들어진 공간. 나는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종종 생각한다.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는 걸까.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도 정작 마음을 열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없구나.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외로움과 고립감을 지닌 채 살아가는구나. 착잡한 마음이었다. 뱀의 말처럼 사람들이 사는 곳도 역시 외롭다. 유독 저 대사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내가 평소에도 외로움과 우울감에 대해 자주 떠올리는 탓이었을까. 사는 일은 외롭고 우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 철저히 나의 일상과 삶을 기준으로 한 말이지만 ―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85p -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90p -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여우의 말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로부터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를 길들이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길들이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관계를 맺는 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일이라고.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단 연애나 성애를 제외하더라도, 세상에는 연애나 성애라는 단어로는 성립할 수 없는 사랑이 무수히 많지 않은가. 가족과 친구와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어떤 일이나 행위를 사랑하고, 물건이나 작품을 사랑하고,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고, 예술과 낭만과 몽상을 사랑하고, 돈과 계산을 사랑하고, 연예인과 학자를 사랑하고, 시간을 사랑하고, 신과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분명 삶은 따분해진다. 소중한 존재가 없는 삶은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맛도 색깔도 없는 느낌이다.


우리는 살면서 아주 많은 사람과 마주친다. 대부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사람과는 조금 더 친밀하고 개인적인 인연을 맺기도 한다. 이토록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나만의 사람을 만나고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놀라운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안다. 그러나 그걸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어차피 태어나서 아직 죽지 않았기에 살아가는 생애일 뿐이다. 가타부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는 영 주제가 없다. 다만 어쨌든 나는 나의 삶에서 무엇이 귀하고 중요한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무미건조하고 보잘것없는 내 삶의 그릇에 무엇이 풍미를 더해 넣어주는지는 내가 알아야 한다. 그걸 알게 된다면 언젠가 돈도, 지위도, 명예도 없고 늙고 쇠약해진 나는 괜찮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거나 공부하거나 통찰하고, 동물과 식물을 돌보고 길을 걷고 사진을 찍고 노래와 음악을 들으면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제법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것들이 필요한 어른을 위한 동화이자 그리움의 회상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이다.


삶은 외롭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나 자신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는 모습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나는 스스로 보기에도 참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도 딱히 활발하거나 유머러스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점점 자라면서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세상의 씁쓸하고 참혹한 이면을 알게 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속적인 삶에서 중요한 것들만 챙기느라 인간적인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자꾸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하게 되었음을 반성했다.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시간, 가족, 친구, 사랑, 취미, 즐거움, 배려, 소통, 감상, 이해와 공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나'라는 사람을 풍요롭고 다채로운 본연 그 자체로 채워갈 수 있을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 귀중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책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거의 80년에 다다르는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돌고 돌아, 생텍쥐페리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한참 떨어진 나라에 사는 나에게까지 왔으니까.




90p -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이 아닌 마음을 기울여야 감각할 수 있는 것. 워낙 유명한 구절이라 학교 다닐 때부터 심심치 않게 듣고 읽었던 말이지만, 정작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이는 존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면서 하나씩 소중하다고 깨닫는 것들이 바로 그런 존재겠지.


94p - <나라면,> 어린 왕자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일주일에 한 알만 먹으면 다시 목이 마르지 않는 최신 개량 알약을 파는 장사꾼을 만난다. 그는 전문가들의 계산에 따르면 이 약을 먹음으로써 일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어린 왕자가 한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처음 보는 문장이었는데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나는 뭐가 그리도 급해서 1분 1초가 아쉬워 뭐든 빨리 흐르기를 바랐을까? 훗날 다시 생각해 보면 그다지 중요한 시간도 아니었다. 절약하고 간추리며 사는 시간이라면 오히려 놓치고 사는 게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마시지 않고 절약하는 53분 동안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는 어린 왕자. 걷는 일은 노을을 바라보는 일과 비슷하다. 어린 왕자는 분명 슬플 때 노을이 없다면 천천히 정처 없이 걸어 다녔을 것이다.


100p - 「아저씨네 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정원 하나에 장미를 5천 송이나 가꾸고 있어……. 그래도 거기서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찾지는 못해…….

「찾지 못하지.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별이 이 드넓은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쟁취할 필요는 없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책을 다섯 장 읽을 수도 있고, 시를 한 편 쓸 수도 있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노래 몇 곡을 들을 수도 있고, 삼십 분 동안 조깅을 할 수도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욕심은 있어도 다행히 야망은 없다. 구태여 멀리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소심하리만큼 소박한 마음이 내가 원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 찾아내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그렇게 믿는다. 사실은 믿고 싶은 것에 가깝다.




어쩐지 독후감이라기보다는 문장 수집이 된 느낌이다. 어린 왕자는 그만큼 좋은 대사가 많다. 문장마다 줄을 긋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린 왕자는 경비행기 조종사와 만나고 며칠 후 ― 아마 열흘 정도 ―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어린 왕자는 지구로 온 지 어언 1년이 지나 있었고, 너무 멀어서 육체를 가지고 갈 수가 없기에 보아뱀에게 물리는 것을 택한다.


소리 없이 쓰러진 어린 왕자는 죽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자신이 살던 별로 돌아갔다. 사랑했기에 책임이 있는 장미꽃의 곁으로. 오만한 구석은 있지만 순진하고 약하고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장미꽃과, 매일 뽑아내야 하는 바오바브나무 새싹과 매일 깨끗하게 청소했던 화산이 있었던 자신의 자그마한 별로. 길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그대로 이야기로 풀어낸 듯했다.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들면 '맞다, 이건 어른들을 위한 동화지?'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살아가는 일은 힘겨울뿐더러 매일 정신없이 달리기 바쁘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도 모르고 달리게 된다. 잃어버린 걸 깨닫고 나면 너무 많이 달려와서 돌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놓치지 전에, 잃어버리기 전에, 영영 내 곁에서 사라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무엇인지 한 번 정도는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결코 멀지 않은 세상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장미꽃 한 송이 물 한 모금에서도 문득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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