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야사 May 07. 2024

일상 속에서 찾은 특별한 순간들

최현진 著, <일상 속의 동화> [일러스트 에세이]


- 제목 : 일상 속의 동화

- 저자 : 최현진

- 출판사 : 도서출판 쉼




이 책은 일러스트 에세이다. 글보다는 그림을 감상하는 책.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와 동시처럼 짤막한 글이 짝꿍이 되어 구성된 책이다. 줄글을 좋아하고 그림에는 큰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를 이끌어낼 수 없겠지만, 나는 글도 좋아하고 일러스트를 보는 것도 좋아하기에 이 책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처음 책을 읽은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다. 적어도 3년은 지났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이 책을 꺼낸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책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장편소설 <연인> ― 이 나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축이기도 하고 ― 하지만 그만큼 뇌와 심장을 강하게 두드리고 자극하는 책이다. 이 책은 추후에 따로 독후감으로 찾아오겠다. 아주 어려운 독후감이 될 것이다. ― 사실 브런치북에 발행할 글을 미처 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볍게 읽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책 중에서는 이게 제일이었다. 오은 시인이 친구인 만화가 재수와 함께 펴낸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을 다시 읽고 독후감을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이 선정되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좋은 책이다. 곳곳에 오타가 보이는 것도 귀엽다. 구태여 완벽한 책을 만들어내지 않겠다는 여유롭고 소박한 마음이 느껴졌달까.


이 책의 좋은 점은 어떠한 혼란도, 갈등도, 고민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담백하고도 진실된 짧은 글이 어우러져서 제목처럼 동화 같은 느낌이 난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당장 하루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매일이 특별하면 그건 특별한 게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있어야만 평범함과는 다른 존재가 생겨나니까.


이번 독후감은 길지 않다. 일단 오늘이 지나기 전에 글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인상 깊게 읽어서 밑줄을 친 몇몇 문장과 내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를 몇 장 가져왔다. 참고로 일러스트는 사진보다 실제로 보는 게 훨씬 예쁘다. 나는 어떻게 해야 책 속 사진이나 그림을 최대한 실물과 비슷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구린 조명 아래에서 구린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 어떻게든 실제로 보이는 것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이런저런 보정을 했지만 화질도 색감도 조잡하기 그지없으니 양해를 구한다.





지루한 일상 속 동화 같은 순간들


3p -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동화 같은 순간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프롤로그 中)

일상은 대부분이 반복이다. 항상 하던 일을 하고, 똑같은 일정 속에서 만나던 사람들만 만난다. 무감각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기력이 빠진다. 자칫하면 무미건조하게 말라버리는 일상에 활력과 색깔을 불어넣기 위해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어제는 없었던 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다. 일상 속에서 동화처럼 아름답고 온화한 순간은 아주 작고 미미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목격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의 삶에는 생각보다 좋은 풍경이 많다.


25p - 봄이 오는지 봄이 왔는지 봄이 지나가는지 바쁜 일상에 쫓겨 봄을 놓쳐버린 그대에게

꽃잎을 모아 봄을 한가득 전해 드리리다. (봄을 놓친 그대에게)

이 글은 아마도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그은 밑줄일 것이다. 봄을 놓쳐버린 그대에서 꽃잎을 모아 봄을 전해 주겠다는 말이 예뻤던 것 같다. 주변에 계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뭇잎을 모아서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여름에는 파릇파릇하고 생기 있는 나뭇잎을, 가을에는 낙엽과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을 주는 것이다. 겨울에는 뭘 줘야 할까? 길바닥에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와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그것을 본 사람은 분명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질 것이다.


52p - 하늘도, 구름도, 공기도, 바람도, 기온도, 모두 좋은 날.

날씨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너무 완벽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문득, 슬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를 언제 다시 또 볼 수 있을까? (맑아서 슬픈 中)

이건 읽으면서 공감했던 글이다. 아주 완벽하게 좋은 날씨가 찾아오면 방 안에서 창문만 열고 있어도 삶의 탄성이 쭉쭉 늘어나 여유로워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토록 좋은 날씨는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시에 슬퍼진다. 인간은 행복감을 느끼면 우울감을 발생시키는 호르몬도 함께 분비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과학적인 근거가 명확하게 있을까.


104p - 살면서 내 행동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시 돌아오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지구는 둥그니까. (인과응보)

좋아하는 사자성어다. 인과응보! 인간은 업보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이번 생에 악한 일을 저지른 인간은 결코 다음 생에서 좋은 인생을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따금 마음이 힘들고 사는 일이 우울할 때 '아무래도 전생의 내가 죄를 많이 저질렀나 보군….' 우스갯소리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나아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조금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 나를 위한 일과 남을 위한 일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186p - 매번 다른 모양의 구름들 중에 가끔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어떤 형태와 비슷한 구름을 볼 수 있다.

그럴 땐 구름이 나를 위해 하늘에 그림을 그려준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름이 하늘에 그려준 그림)

며칠 전에 경전철을 타고 퇴근하다가 엎드린 오리너구리와 똑같이 생긴 구름을 본 적이 있다. 하루 기록에도 일기로 남겼을 것이다. 구름이 나를 위해 하늘에 그려준 그림이라니 창의적인 생각이다. 언젠가는 고양이를 닮은 구름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기를.


204p -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달에서 지구를 본다면 지구를 달이라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의 달 中)

달에 사는 토끼들은 지구를 보며 생각할 것이다. 저 달은 분명 푸른색이었는데 지금은 왜 저렇게 누레졌을까? 언젠가 달토끼들이 귀엽게 뛰어와서 내게 묻는다면 그것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일단 지구온난화와 대기 오염부터 시작해서. 토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달에서는 지구가 달처럼 보이겠지. 누가 누구 곁을 도는지도 모를 것이다.





고개만 돌리면 생경한 빛과 색이 있다


하늘이 예쁘거나 노을빛이 선명해서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 쳐다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쉽다. 다들 이 예쁜 하늘과 풍경을 왜 바라보지 않는 걸까!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삶이 팍팍할 때 한 번씩 꺼내어 보면 메말랐던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지고 세상을 사랑할 기운이 조금은 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최대한 잘 찍으려 노력했다. 실물과 비슷하게 보정 작업을 거쳤지만 사실 사진 보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서 오히려 더 망쳤을지도 모른다. 작가님이 보신다면 당황하실 수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고래를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온 세상을 감싼 노을빛.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짙은 일몰을 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땅에 떨어진 별처럼 빛나는 도시의 불빛 또한 사랑한다.




다음에 쓸 독후감은 어렵고 복잡한 책일 것 같기에, 오늘은 짧은 시간에 가볍게 감상할 수 있는 책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계절의 아름다움과 풍경의 사랑스러움을 품고 남은 생을 이어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잃어버렸던 동심도 한 번씩 생각하고 잊어버린 추억과 감성도 되풀이하면서. 남들보다 잘 사는 것보다는 그냥 나대로 행복하고 다채롭게 살아가고 싶다.


삶이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 류시화 著,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가지에서 미소 짓지 않는 꽃은 시든 꽃' 中 -


이전 09화 문학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