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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30. 2024

문학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길

박연준 著, <듣는 사람> [도서 에세이]


- 제목 : 듣는 사람

- 저자 : 박연준

- 출판사 : 난다




문인(文人)이 소개하는 책은 어떤 작품일지, 작가들은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을지 불현듯 궁금해질 때가 있다. 문학평론가나 작가가 쓴 비평문과 감상문을 흥미롭게 읽는 중이다. 이 책은 박연준 시인이 소개하는 서른아홉 권의 고전 문학 작품이 실려 있는데, 시인이 소개하는 문학이라니 호기심이 일었고 어느 정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으며 느린 호흡으로 독서를 했다.


책, 그것도 고전 문학을 소개하는 글이라니 왠지 교과서처럼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지 않다. 책을 소개하는 글은 대략 4~6페이지 정도로 분량도 길지 않다. 고전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머나먼 조선 시대까지 시간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호밀밭의 파수꾼, 변신,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어린 왕자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작도 있다. 간단한 책의 줄거리와 저자가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좋은 대사와 작가의 감상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글이기에 읽기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부분도 없었다. 오히려 정독하면서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한 책이 꽤 많다. 물론 전부 읽으려면 몇 년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책을 소개하는 에세이는 처음이라서 어떤 식으로 감상문을 써야 좋을지 고민했다. 책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수도 없고 마땅히 줄거리가 존재하는 책도 아니라서. 고민 끝에 가장 읽어 보고 싶은 책과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위주로 소개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독서는 나 자신과 가장 가까워지는 방법 중 하나이다. 글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읽어 보고 싶은 책 - 다섯 권 선정


1.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 뒤라스의 작품 중에서 '그나마 가장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내가 유일하게 읽은 프랑스 작가의 책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은 도전하기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고 또한 가장 많이 읽었기에 외국 작품 자체를 난이도 있는 책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박연준 시인은 열다섯 살 때 친구의 방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읽을 때마다 발랑 까지고, 책이라면 모조리 읽어 치우고, 똑똑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잘난 척하고, 외로운 아이였다던 친구가 떠오른다고. 뒤라스가 노년에 쓴 자전소설이라는 이 책은 제목처럼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 식민지령 사이공에서 강을 건너던 백인 소녀가 자신보다 열두 살 많은 중국 남자와 마주치고 사랑을 하는 이야기. 흥미롭게도 박연준 시인은 이들이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을 불러오는 일에 매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랑을 '한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책에 관한 호기심을 끌어낸 문장은 이것이다.


90p - 그들은 자기들이 입은 옷이 사랑인 줄도 모른다.


사랑을 다룬 소설을 여러 편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소설 속 인물들이 사랑하는 방법이나 그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사랑에 대한 글을 써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왜 사랑하는지, 글을 쓰는 나조차 정의하지 못할 때가 수두룩하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박연준 시인은 이야기가 시작부터 끝까지 슬프고 독특하다고 평했다. 예민하면서도 심오하고 재치가 넘치면서도 말라비틀어졌고 난해하면서도 시선을 이끄는,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필체를 가진 이야기일까. 아직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절반도 채 읽지 못하고 혀를 내두르며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사랑을 알게 된다면 읽어봐야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날이 과연 올까? 사랑은 감정의 일종이지만 결코 감정만은 아니다. 어떠한 존재이자 영혼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모든 감정이 그렇다. 정해진 형태도 색깔도 냄새도 없이 공기처럼 부유하다가 어느 날에는 수증기나 연기처럼 눈에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손에는 잡히지 않고 영영 두 눈으로 붙잡지 못한 채 그저 존재만 인식하고 마는 것들. 아무튼 프랑스 문학 중에서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2.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세. 이름을 익히 안다. <데미안>이라는 세기의 명작을 써낸 작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또한 데미안과 비슷한 성장 소설이다. 두 주인공이 사랑, 우정, 열망, 기대, 실망, 존경, 공경, 두려움 등 수많은 감정과 관능적인 갈등에 부딪히면서 서로를 밀어냈다가 갈구하기를 반복하며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성장하는 이야기.


젊은 수련 수사 나르치스와 수도원에 입학한 소년 골드문트. 여러모로 정반대인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리지만 수도원 밖에서 만난 소녀와 사랑에 빠진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떠나면서 그대로 이별하고, 훗날 나이가 들고 나서야 재회한다. 박연준 시인은 이 소설에 고통, 방랑, 성장, 사랑, 철학, 예술, 우정, 죽음 등의 무거운 관념어들이 고루 담겨 있다고 말한다. 지성과 관능을 고루 욕망하는 인간의 성장통을 담고 있다면서. 어쩜 이렇게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 과연 시인은 다르다.


데미안도 중학교 시절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싶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 사이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같은 반 친구가 데미안을 보며 "이거 비엘(BL) 소설 아니야?"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을 때 당황했던 나는 "아니야! 우정 이야기야!"라고 답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소년 사이에는 분명 사랑이 있었다. 어쩌면 싱클레어의 짝사랑이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보다는 이야기가 조금 눈에 들어왔고, 성인이 되고 나서 읽으니 몇 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표현과 대사를 조금 더 파고들어 읽을 수 있었다.


데미안은 여전히 어려운 작품이지만 그만큼 해설과 해석이 방대해서, 어쩐지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공부한다는 느낌이 강한 책이다. 이 작품 또한 데미안과 같은 부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부터가 진짜 시작인 작품. 책 귀퉁이에 나만의 해석과 생각을 적고,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 사이의 감정 변화를 느끼며 읽어야 하는 소설. 어떤 예측을 하든 결국 모든 건 직접 읽어 봐야만 알 수 있다.




3.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름은 <불안의 서>라는 책에서 먼저 보았다. 이북으로 읽다가 이건 디지털 기기로는 도무지 다 읽을 수 없겠다 싶어 포기한 책이다. 이북 기준으로 무려 725페이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56페이지까지 읽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언젠가 이 책을 종이책으로 구입한다면 불안의 서도 함께 사서 읽을 생각이다.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 속에서 사는 인간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묘한 동질감이 생겨난 책이기도 했다.


박연준 시인은 이 책에 '생각 없이 도착하는 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소아의 시에서는 시의 원형, 언어가 움트기 전의 에너지, 생각이 탄생하기 전 감각의 형상을 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잠깐이나마 읽었던 불안의 서를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소아의 글은 '써지기 위해 태어난 글' 같았다. 다만 그 '써짐'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페소아 본인을 위한 글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한 글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정말 어떻게든 세상에 써지기 위해 태어난 글 같다는 애매모호한 감상이었다.


불안의 서가 살아가는 길마다 돌멩이처럼 차이는 불안과 우울을 일기와 함께 쓴 글이라면 이 책은 그것이 시로 탄생한 형태가 아닐까 싶다. 비참하고 어두운 글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은 글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어쩐지 제목의 뜻을 알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그 누구와도 함께 있지 않는다. 어쩌면 나 자신도 저 멀리 보낸 채 쓰는 게 글이고, 고독과 생각의 정점이 바로 시로 탄생하는 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그가 얼마나 혼자 있는 시간을 갈구하고 또한 외로워했는지 느껴보고 싶다.




4. 토마스 베른하르트, <모자>

- 박연준 시인은 이 책을 '헤매고 싶어서 읽는 책'이라고 말한다. 명료한 답을 구하는 대신 혼란 속에서 거닐고 싶어서 읽는 책. 작고 가벼운 10개의 짧은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오로지 인물이 고통과 파국으로 치닫는 현재, 죽음의 징후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나 교훈 따위는 없는 이야기. 왠지 읽기 전부터 겁부터 난다.


그럼에도 이 책에 마음이 끌린 것은 베른하르트의 소설을 읽는 내내 웃을 일은 없을 거라는 박연준 시인의 글 때문이다. 유익하지도 않고, 심각하거나 쓸쓸한 표정을 짓게 될 것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슬픈데 충분한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지금도 내내 생각한다. 과연 내가 이 글을 읽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울한 책을 읽으면 덩달아 기분이 가라앉는 나는 이 책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10편을 읽는 데 몇 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읽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알 수 없고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낄 감정과 내가 사유하는 것들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다. 슬프지만 어딘지 모르게 충분한 기분. 그것을 정말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하다.




5. 장 그르니에, <섬>

- 박연준 시인은 이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안도한다고 말한다. 장 그르니에의 제자인 카뮈는 책을 펼쳐본 후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서 책을 정신없이 읽기 위해 자신의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감상평이다.


이 책은 혼자 숨어 읽고 싶게 만드는 데가 있다고 한다. 시와 철학, 삶과 죽음, 작은 이야기 속에 끼어 있는 묵직한 화두가 책을 이루는 주재료라는데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책. 사실 문학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인간으로서 사유하고 감각하는 삶을 위해서라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이미 실질적인 쓸모와 이익과 합리에 지배당한 세상에서 문학은 쓸데없고 돈도 못 버는 학문이 되고 말았다. 문과와 예체능은 굶어 죽으려고 가는 곳이라는 슬픈 우스갯소리도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나온 인용문을 보면서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유심히 바라보고 어떠한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번지르르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조금은 티가 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쓴 글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다. 물론 절반은 착각이고 나머지 절반은 질투나 열등감에서 나온 생각이겠지만.


세상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풍부하게 느끼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 행운이다.





밑줄 모음


24p - 고전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다. (…) 좋은 책은 알아먹기보단 우선 '느껴보기'가 먼저다. < 이태준, 무서록 >


34p - 한밤중 15층 오피스텔의 창가를 서성이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가 "사랑의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자살의 충동이 자주 일어난다"(326쪽)는 구절을 읽으며 출렁이는 마음을 눌렀다. 나뿐이 아님을, 내 잘못이 아님을, 사랑에 빠진 모든 광인들이 그러함을 책은 일깨워주었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


42p - 울적한데 눈물도 잘 안 나오는 밤 이 시집을 읽노라면…… 호롱불 안에 심장을 걸어둔 듯 마음이 환해진다. < 박용래, 박용래 시전집 >


53p - 스스로 갖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는 항상 그녀를 뒤따라 다닌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


55p - 다르게 보면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것을 만들고 다른 삶을 살게 된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


74p - 희망이 아니라 희망의 '지반'이 없다는 말이 서늘하다. < 다자이 오사무, 사양 >


84p - 쓸모없기론 예술만한 게 없고 모든 예술(혹은 고매한 사상)은 크고 보기 좋은 나무 같아서 두고 봐야지 베어 쓰려고 하면 딱히 쓸데가 없는 것이다. < 장자, 장자 >


109p - 침묵은 '무음'이 아니다. 다른 종류의 언어다. <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


117~118p - 그는 인간됨의 본질이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455쪽)이라고 생각했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


142p - 가족은 사랑해서 필요한 것인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


177~178p - 진짜 가난한 게 뭘까? 그는 부를 축적하는 게 아니라 뒤뜰에 햇빛과 먼지를 모으는 사람처럼 돈을 모았을 것이다. < 권정생, 빌뱅이 언덕 >


199p - 불행은 혼자라서 겪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부대껴 '나'라는 존재가 깎여나갈 때 불행은 온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


211p - 과격한 말일 수 있지만 아이는 (보호라는 명분 아래 존재하지만) 세상에서 피지배자다. 아이를 지배하(려)는 것이 너무 많다. < 토마스 베른하르트, 모자 >


230p - 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한 거지? 대체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지? 내게 "사회"라고 답하지 말아 달라. 우리 뇌의 본성 자체가 원인이다. 사회는 진단의 한 요소일 뿐이다.(163쪽) < 로맹 가리, 흰 개 >


237p - 애초에 인간에게 '평범'이나 '특별' 따위가 있을 리 없다. 평범도 특별도 바라보는 외부자의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


238p - 어릴 땐 요절이 근사해 보였으나 이젠 안다.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 존 윌리엄스, 스토너 >


243p - 우리 사회가 '악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며 그 피해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질병'을 필요로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일갈한 손택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


252p - 처음 『어린 왕자』를 읽은 자라면 잊고 몇 년 후 다시 읽어야 한다. 뛰어들고 탐험하고 느끼고 질문하고 몇 년 후, 다시 뛰어들고 스며들고 다시 몇 년 후…… 반복해서 읽어야 진가를 알게 되는 책도 있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





문학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길


주로 현대 문학을 읽었던 나에게 고전은 다소 먼 곳에 있는 작품이었다. 어쩐지 고전이라고 하면 고루할 것만 같고, 뻔한 말을 교훈이랍시고 늘어놓을 것 같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정작 고전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알랑한 아둔함으로 깨끗한 물처럼 가치가 넘쳐나는 문학 작품을 영영 모르고 떠날 뻔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나는 고전의 참맛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이런 작품의 진가를 무시했던 어린 시절의 어리석은 나를 원망했으리라. 빛나는 고전 작품과 그들의 매력을 지금이나마 깨달아서 다행이다.


문학을 느끼고, 해석하고, 파고들어 사유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또한 아름답다. 추하더라도 빛이 난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아름다운 책이다. 글을 감상하는 것, 문학을 통해 내면과 현세를 관찰하고 통찰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고요하면서도 격렬하다. 고전 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분명 서른아홉 권의 책을 지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저자인 박연준 시인은 고전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편견이라고 말했는데, 많은 고전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과 깊고 넓게 생각하는 방식을 단련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과 친해지는 길은 결국 많이 읽고, 생각하고, 감상하는 길밖에 없다. 독후감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문장을 유심히 바라보며 내가 사는 세상과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이래서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독서는 운동, 공부와 함께 매년 수많은 사람들의 신년 계획에 들어가는 이름이지만 역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쉬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자 이드가 아닌가.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고 잠깐 쉬면 순식간에 잘 시간이 되고, 책은 한 장 펼치지도 못한 채 보내는 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독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쓸데없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문학과 멀어지기엔 아름다운 이야기와 좋은 책이 너무나 많다. 음악, 영화, 미술을 비롯한 예술이 그런 것처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면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권 정도는 관심 가는 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사서 몇 달 동안 틈틈이 오랫동안 읽어도 된다. 그렇게 문학과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과정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서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성찰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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