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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May 21. 2024

나와 세상이 사랑으로 연결되는 순간

황정은 외 5인 著, <팔꿈치를 주세요> [단편소설집]


- 제목 : 팔꿈치를 주세요

- 저자 : 황정은, 안윤, 박서련, 김멜라, 서수진, 김초엽

- 출판사 : 큐큐




이번 책은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퀴어단편집이다. 그동안 단편집의 모든 글을 소개했던 적은 없는데, 이번 글은 책에 수록된 여섯 개의 이야기에 대한 감상문을 간단히 쓰자고 생각했다. 유난히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도 있고 인상 깊은 문장이 많은 이야기도 있지만, 모든 이야기가 큰 호불호 없이 좋았고 매 단편 마지막 장마다 짧게 감상문을 썼기에 이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 싶기도 했다.


왠지 퀴어 소설에 대한 감상문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외에도 국내외 퀴어 문학 작품은 많다. 기회가 된다면 많이 읽어 보고 싶다. 퀴어 소설이라고 해도 사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망각한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읽거나 볼 때 이게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 구태여 구별하지 않는다. 둘 다 똑같은 사랑 이야기라고 본다. 애틋하거나, 절절하거나, 아프거나, 평화롭거나, 비통하거나, 그냥저냥 미지근하게 이어지는 사랑. 하지만 이성 간의 사랑보다는 동성 간의 사랑과 연애 이야기에서 더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설렘을 느끼는 것은 천성처럼 타고난 본능인 걸까. 아무튼 퀴어 문학과 퀴어 영화는 재미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음지에 머무르는 동성애자들의 자기 위로 작품이라며 업신여기는 단편적인 사고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수많은 명작을 놓치고 영영 그것들의 매력을 모른 채 죽어버릴 수도 있다.


퀴어 작품에 대한 고찰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바로 책 속의 별세계로 날아가 보자. 이야기의 줄거리와 결말 등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를 표한다.





여섯 개의 단편 감상문


첫 번째 이야기는 황정은 작가의 <올빼미와 개구리>라는 글이다. 무려 29년을 함께 산 중년 레즈비언 커플 '천지영'과 '김지금'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사실혼 부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두 사람도 자신들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왔던 이야기가 나오고 김지금의 자궁에 생긴 근종을 떼어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자궁 관련 질환은 여성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데다가 통증이 심하고 악성이 되어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보니 읽으면서도 걱정스러웠다. 자궁의 '쓸모'를 논하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나와 괜히 마음이 뒤숭숭하게 불편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잔잔한 이야기를 꼽자면 바로 이 소설이다. 두 사람은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의 혼란기를 이미 지나쳤고,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인 지 수십 년이 지난 부부다. 법적 부부만 아닐 뿐이지 29년이나 함께 살았으니 사실혼과 다를 바 없다. 여전히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될 수 없는 현실을 향한 불만과 늙고 약해지는 몸에 대한 불안을 함께 껴안고 사랑하는 사이. 사랑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 책에 쓴 감상평 : 시간이 흐르면서 빈틈이나 조금씩 엇나가는 결을 알고도, 어쨌든 그 점까지 받아들이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표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안윤 작가의 <모린>이라는 글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고객 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김미란'이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고객 센터에서 일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객 센터나 상담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시큰해진다. 악성 민원과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한 진상 손님이 득시글거린다는 악명은 익히 들었다. 유독 우리나라가 서비스직에 대한 배려심과 양심과 시민의식이 부족한 걸까? 이야기 초반에는 미란이 끈질긴 고객에게 시달리며 이내 고객이 불러주는 대로 사과문까지 쓰는 장면이 나온다. 와아, 가슴이 답답했다. 이보다 더한 일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더욱.


미란의 연인은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처음 만난 시각장애인이자 재활자립팀 팀장 '유영은'이다. 그녀는 예전에 '선주'라는 동성 연인이 있었지만 헤어졌고 미란을 만났다. 소설에는 훨씬 많은 사람과 이야기, 관계성, 대사가 존재하는데 이렇게만 설명하니 책을 단편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튼 영은은 미란과 파트너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 사용 시범을 보이면서 "팔꿈치를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가 책 전체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나는 미란을 향한 영은의 관심이 드러난 부분이 유독 인상 깊었다. 미란은 요제프 코발스키라는 작가의 산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낭독 봉사로 녹음했는데, 이 책의 낭독 도서 제작을 신청하고 첫 번째로 대출한 사람이 바로 영은이었다. ― 인터넷에 검색하니 '요제프 코발스키'라는 작가는 나오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인 걸까? ― 영은은 미란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묻는다. 혹시, 미란 씨가 그 미란 씨예요? 요제프 코발스키.


73p - 영은이 내 쪽으로 고개를 조금 치켜들며 걸음을 멈추었다. 더는 궁금해 못 참겠다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 파르르 떨리던 감긴 두 눈꺼풀.

사실 그날부터가 우리의 1일이었다고 영은은 말했다.

미란과 영은, 두 사람의 애정과 사랑과 연애의 시발점이 인상 깊었다. 나는 사람이 첫눈에 반하거나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문장과 연출을 좋아한다.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다가 스며드는 사랑도 좋지만 왠지 드라마틱한 설렘이 없달까. 애초에 그런 걸 좋아하는 취향 자체가 현실에는 없는 드라마틱한 허구의 사랑만을 원하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오히려 그런 장면을 좋아하는 걸지도.


57p - 미란 씨는 무언가를 나중에 잃는 것보다 처음부터 없는 게 나은 것 같다고 했었죠. 나중에 잃게 되는 건 너무 가슴 아프다고요.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난 나중에 잃는 것을 선택할 거예요. 그건 두 세계를 살아보는 거잖아요. 어쩌면 세 세계인지도 모르죠. 있음과 없음, 그 둘을 연결하는 잃음. 나는 나한테 주어지는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어요.

성소수자와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 어떤 세상에서는 다수의 비성소수자와 비장애인에 의해 배척되고 차별당하는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은 동성애자와 장애인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영은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모든 감각이 온전하게 있는 삶을 당연하게 살다가 갑자기 감각 하나가 사라진 삶을 살아가는 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기분과 같을까. 그럼에도 영은은 '나한테 주어지는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저 문장이 유독 마음에 닿았다. 지금 살아가는 인생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며 외면하던 시간들,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과정'이라고만 치부하는 나날은 과연 미래를 밝게 만들어 줄까. 지금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마음으로 훗날 원하는 인생을 쟁취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진심 어린 행복을 느끼며 나의 삶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세계를, 그 속의 나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순간마다 나의 발자취를 남기며 사랑하는 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의 한 모습이 아닐까.


* 책에 쓴 감상평 : 사람마다 다른 사랑의 형태. 누군가는 떠나는 게 사랑, 혹은 떠나보내는 게 사랑,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고 표현하는 게 사랑이 되기도 한다. 삶의 형태와 같다. 무엇도 같지 않은 게 사랑이고, 그럼에도 끝내 절단되지는 않는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손가락과 팔꿈치만으로도 사랑은 얼마든지 벽을 뚫는다.




세 번째 이야기는 박서련 작가의 <젤로의 변성기>라는 글이다. 30년 가까이 활동한 50대 베테랑 성우인 '오선재'가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녀는 작품 내에서 장기방영 중인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 <젤리-젤라-젤로몬>의 주인공인 소년 악마 젤로의 담당 성우인데, 젤로가 첫사랑이며 선재를 보면서 성우의 꿈을 키웠다는 20대 신인 성우 '이희강'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변화, 성우로서의 정체성을 담은 글이다.


50대와 20대라는 커다란 나이 차이를 마주하는 순간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사랑에 성별은 상관없지만, 그래도 거의 부모와 자식 뻘로 나는데 이건 좀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머릿속에 툭툭 걸리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로맨스를 다루지 않았고 ― 선재는 자신이 희강에게 성적 욕망에 가까운 마음을 품은 것에 수치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희강은 선재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만 말하며 그 이상의 표현은 한 적이 없다. ― 이어지지 않는 사랑을 성우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러낸다. 사랑보다는 일종의 절망, 모멸감, 불안과 무기력감 같은 감정이 더욱 짙게 드러났다.


작품 후반부에서 선재와 희강은 애니메이션 신작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는데, 오선재 선배님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는 MC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희강은 오디션에서도 숨겼던 자신의 진짜 개인기라며 젤로 성대모사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출연진들과 젤로의 성우 선재는 모두 놀라고 만다. 희강이 모사한 젤로의 목소리가 오리지널 젤로 목소리와 완벽하게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재는 생각한다. 희강의 무릎 위에 얹은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깍지를 끼는 희강을 보며, 희강의 손과 무릎 사이의 온기로 녹아 없어지는 자신과 젤로를 상상한다. 희강을 사랑해서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의 젤로를.


이 소설은 작가가 완성하는 데에 10년이 넘게 걸린 작품이라고 한다. 하나의 글을 쓰는 데에 몇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를 수도 있구나. 하긴 영원히 완결이 나지 않는 미완성 작품도 있으니, 몇십 년이 걸리든 작품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 책에 쓴 감상평 : 나는 사랑에 성별은 상관하지 않지만 나이는 엄격하게 따지는 고지식한 사람이어서, 50대 오선재와 이제 21세가 된 이희강이 단순히 업계 선후배를 넘어서는 애욕적인 감정… 혹은 그에 준하는 관계에 놓인 이야기를 잠시 끊어야만 했다. (물론 희강에게 성적인 무언가를 느낀 사람인 선재 또한 그 부적절함을 뼈가 저리도록 자각하고, 희강이 선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끝내 '존경하는 선배님' 이상으로 나오지 않지만) 다만 그녀들의 존경심, 애정, 경계심, 거부감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관계와 어느새 선재의 젤로를 따라잡아 버린 희강의 젤로, 그리고 선재의 젤로가 훗날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졌다.




네 번째 이야기는 김멜라 작가의 <논리>라는 글이다. 이 글은 나름의 반전을 안고 있는 글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에게는 '장엘리'라는 여덟 살 딸이 있다. 주인공은 빗길에서 난 교통사고로 흉부 화상과 복합 골절을 입어 그해 겨울과 이듬해 봄까지 의식 없는 상태를 보냈는데, 그 탓에 기도와 폐가 약해져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의식을 되찾은 후에는 마치 머릿속에 식물도감을 입력한 것처럼 어떤 꽃과 풀이든 보자마자 이름이 나올 정도로 당황스러운 박식함을 얻는다.


주인공은 L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를 좋아하는 어린 딸 엘리가 어느 날 겨울왕국의 주인공 중 하나인 엘사가 사실은 레즈비언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어느 날 엘리가 엘사 선생님과 과카몰레와 고기를 넣은 타코를 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엘리를 미행한 바닷가에서 엘리에게 서핑을 가르쳐 주는 쇼트커트에 어깨가 반듯한 여자를 경계하지만, 이내 엘리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저 여자가 엘리 마음을 펼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픈 사이에 성큼 자란 어린 딸을 바라보다가 홀로 길을 걷는다. 이후 밝혀지는 사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살아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니까 남편 '배준'과 엘리를 바라보는 나는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인 것이다.


149p -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 법으로도 보장해주잖아. 미국은 동성이나 이성이나 두 사람이 원하면 평등하게 결혼할 수 있으니까. 또 어디가 그렇더라. 영국이었나, 캐나다도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배준이랑 이민을 알아봐야 하나. 우린 영어 회화도 잘 못 하는데.

부모라면 자식이 힘든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 자식이 동성애자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종교적 이념이거나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편견과 거부감이 심하고 동성혼은커녕 생활동반자법도 제정되지 않은 보수적인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부모 눈에는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자식이 "난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살 거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주인공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엘사 선생님과 단둘이 만나는 엘리를 걱정하지만, 많은 꽃을 지나 오름을 내려가면서 온몸으로 거부하던 가정(假定)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면을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엘리가 레즈비언이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서 '엘리가 레즈비언이라면,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변하는 것. 포용하는 사랑이란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157p - 네가 뭐라고 불리든 너와 너의 연인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 그러니 당분간 천국에 갈 시간은 없겠어. 천국 대신 교회와 성당에 가서 사람들에게 말해줘야 하니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살아 있을  때 뭐가 중요한지, 삶과 죽음, 우리가 단절되어 있다고 믿는 그 사이에 어떤 힘이 있어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해주는지. 어떤 논리도 너에게서 기적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할 거야.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아무 조건 없이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가장 필요한 이해심과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좇으며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간절하고 애달픈 부모의 마음. 이 문장에서는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나와 세상이 사랑으로 연결되는 순간만큼 기적이라고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 책에 쓴 감상평 : 처음에는 소설의 화자이자 엘리의 엄마인 '나'가 사고로 아이를 잃은 후 환상을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상상을 했는데, 나는 죽었고 미묘하게 배준과 엘리가 머무르는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이와 함께할 수 없는 부모, 아이의 수많은 시간을 남겨두고 떠난 부모의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삶이 끝나고 나서야 이해의 연결고리가 생긴 그 사이를 과연 아이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엘리가 훗날 여자를 사랑하고 연애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불온한 세상이 문제일 뿐 엘리의 사랑, 시간, 연인, 삶, 감정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사랑이 상심이 되고 비참으로 물드는 순간이 파도처럼 부서지기를.




다섯 번째 이야기는 서수진 작가의 <외출금지>라는 글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레즈비언 커플 '은영'과 '희율'이다. 작품 내에서 은영과 희율은 연인 사이긴 하지만 상당히 아슬아슬한 관계다. 중학교 때부터 여자를 좋아했던 은영은 이성애자로 자라온 희율의 감정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는 희율이 착각 혹은 변덕스러운 충동으로 자신과 만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희율에게 드러내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면전에서 듣는 희율도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고, 두 사람은 함께 호주까지 여행을 와서도 심하게 싸운다. 희율이 클럽에서 약을 탄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고 깨어난 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듯 다툰다.


그러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마스크를 비롯한 온갖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되고,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사이 셧다운이 시작된다. 은영과 희율은 다니던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고 온종일 함께 한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그것은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기 알맞은 환경이었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희율은 은영과 지내던 집을 나가 에어비앤비 숙소로 가지 못한다. 외출금지령 때문에 생필품 구매 등 필수적인 이유가 아니면 집을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헤어지고도 강제로 한 집에서 지내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 척하며 지내지만, 이내 희율은 바닥에 앉아 울면서 은영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은영과 희율은 같이 산책을 가거나 생필품을 사러 나가는 등 멀어지고 균열이 생겼던 사이를 조금씩 서로의 감정과 손길로 메운다. 그렇다고 완벽한 해피엔딩에 다다른 느낌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서 썼다'는 작가의 말을 보면 은영과 희율의 미래는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사랑을 이루어내지 않을까 싶다. 작품 맨 마지막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끝이 보이지 않는 원통 안을 걸어가는데, 이것이 두 사람이 앞으로 걸어갈 캄캄하지만 둘이 함께 있는 길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177p -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인정받고 축하받고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일인가? 은영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써 붙이고 대로를 걸으면서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자랑스럽다고 소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 그저 외면당하지 않고 미움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기를 바랐다.

성소수자의 삶은 마치 '인정받기 위한 삶' 같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으니까. 세상이 부정하니까. 동성을 사랑하든 이성을 사랑하든 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고, 사회를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속을 맺었을 때는 그것을 입증하고 지켜줄 제도가 필요하지만, 동성끼리의 혼인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까. 사회가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동성 부부는 서로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회 구성원을 포용해야 마땅할 세상이 그들을 배척하거나 가시 돋친 눈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 동성이라며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사실이.


나에게 동성 연인이 생긴다면, 나는 그와의 결혼이나 평생 이어지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고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최한의 무관심과 최소한의 동등함을 바라고 싶다.


* 책에 쓴 감상평 :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과 갈망은 그만큼 가늠하기도 어렵다. 상처받을 게 두려워 처음부터 기대를 내려놓고 체념하는 마음을 안다. 은영은 언젠가 희율이 제 곁을 떠날 날을 두려워했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해서 더욱 경계를 내세우고 상처 주며 비아냥거린 게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발령된 외출금지령이 두 사람을 더 가까이 만들어 주었는지, 더 확연한 균열을 만들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들의 사랑이 좀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김초엽 작가의 <양면의 조개껍데기>라는 글이다. 이 글은 독특하게도 사이언스 픽션이 가미된 글이다. 이 글에는 주인공이 두 명이다. 바로 '라임'과 '레몬'인데, 라임과 레몬은 '샐리'라는 한 여성의 몸에 공존하는 두 개의 자아이다. 주가 되는 존재가 자아(自我)인 라임이고, 라임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타자아(他自我) 레몬이다. 라임이 여자 인격이고 레몬이 남자 인격이라는 것을 보아 이 이야기는 '바이젠더' ― 독립된 여성 정체성과 남성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것 ― 를 기반으로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야기 흐름상 젠더의 분리보다는 인격 자체의 분리에 가까워서, 두 가지 성 정체성의 공존보다는 성별이 다른 두 인격의 공존으로 보이며 바이젠더를 암시에 둔 설정 같다는 것도 나의 추측일 뿐이다.


샐리는 지구로 입양된 '셀븐인'인데, 작품 내에서 셀븐인은 모두 샐리처럼 여러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나온다. 하지만 지구에서 자란 샐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셀븐인을 만난 적이 없고, 지구에서 자아나 인격 여러 개인 사람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나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으로 통하기에 샐리의 두 자아는 성장할수록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샐리의 두 자아는 라임과 레몬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분리한 채 자랐지만, 한 몸에 공존하는 두 개의 자아는 매번 서로의 감정과 불안과 우울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끊어지지 않는 감각 속에서 괴로워한다. 특히 본래 샐리의 자아였던 라임은 레몬과의 완전한 분리를 위해 셀븐인 정신 시술을 시도했으나 레몬에 의해 막히기도 한다. 서로가 하나인 동시에 완전히 둘인, 답답한 상황에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샐리의 두 자아에 라임과 레몬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다큐멘터리 감독 '류경아'다. 그녀는 라임과 레몬의 연인이 된다. 인격은 두 개지만 어쨌든 두 자아는 모두 샐리라는 이름의 사람에 속해 있으니 바람을 피운다고 할 수도 없는 기묘한 관계다. 라임과 레몬은 모두 경아를 사랑하고, 예전에도 비독점적 연애로 관계를 맺곤 했다는 경아 또한 라임과 레몬을 각자의 인격체로 대하며 동등하게 사랑한다. 그렇지만 한 몸에서 계속 머물러야 하는 라임과 레몬 사이에는 여전히 갈등이 끊이질 않고, 나중에는 모종의 사건으로 레몬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고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는 사태가 벌어진다. 다행히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 소설은 성적 지향이나 젠더퀴어를 넘어서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정체성이란 단어는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뜻하는데, 당장 나 자신을 생각해도 결코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식일 때, 형제일 때, 친구일 때, 직장 동료일 때, 부하직원일 때, 사수일 때, 사람일 때, 이십 대일 때 등등 나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순간은 다양하다. 페르소나를 하나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는 평생에 걸쳐 있다. 정체성이라는 건 어느 순간 갑자기 창조되는 게 아니니까. 내 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정체성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는 각각의 정체성을 모두 존중한다. 어떤 것도 내 모습이 아닌 게 없다. 본질에 가깝고 먼 정도는 있어도, 아예 내가 아니거나 온전히 나인 것은 없다. 참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은 어렵지 않다. 김초엽 작가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세계관 구축이 흥미로웠고 라임, 레몬이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꽤 재미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양면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 책에 쓴 감상평 : 퀴어가 결합된 SF는 상당히 드문 소재이다. 결합이라기보단 가미되었다는 말이 맞을까. 이 이야기는 샐리(라임, 레몬)와 류경아의 연애보다는 같은 몸을 공유하는 자아와 타자아 관계인 라임, 레몬의 갈등과 공생, '남들과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점에서는 소수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라임과 레몬의 정신이 샐리라는 몸 안에서 부딪히고 교류하고, 나아가 교감하는 이야기. 흥미로웠다.





받아들이고 연결되는 사랑


이 책에 수록된 여섯 개의 단편은 이야기 주제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지만, 나는 모든 이야기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은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내가 받아들인 나와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고 냉혹한 세상을 연결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품은 사랑이라는 것. 모든 삶에 사랑이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사랑하는 삶은 분명 어떤 모습으로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영화 속 장면처럼 이상과 낭만에 젖은 찬란한 모습이 아니다. 수렁에 빠지고 흙바닥을 굴러 먼지투성이가 되고도 사랑하는 삶은 괴롭고 외롭고 서글플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산다는 게 진짜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아닐까. 물론 그 사랑이 집착이나 폭력이나 증오심이나 범죄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사실 나는 사랑 이야기에 다소 회의적이다. 무조건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만이 구원이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되레 거부감과 반발심이 드는 인간이다. 완벽한 로맨스나 사랑 찬가보다는 인간으로서 품고 살아가는 사랑이 좋다. 성애(性愛)를 넘어선 애정과 애틋함 그 자체 말이다. 가족애와 우정이 그럴 것이고, 인류애나 인간애 또한 마찬가지며, 자신의 직업과 취미와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그럴 것이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할 수도 있고 신을 사랑할 수도 있고 이 세상 자체를 사랑할 수도 있다. 대상도 형태도 정해지지 않기에 사랑이 가장 자유롭고 다변적인 감정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이 책은 사랑, 그중에서도 동성애와 젠더퀴어를 다룬 사랑 이야기를 엮어낸 작품집이고. 다 읽고 나서는 결국 '사랑이 뭐지?'라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건 배척하지 않는 마음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세상을 차갑고 볼품없게 만들고 싶은 자는 그런 세상으로 떠나라! 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으니까.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갖 위험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어서, 사실 온전히 나 자신과 다른 존재를 사랑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상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이 현실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자. 상대방이 내게 상처를 주어도, 자존심 내세워서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남기는 대신 그에게 내가 상처받았음을 말하자. 그럼에도 계속 상처를 입는다면 떠나자. 나의 마음을 지키며 살자. 타인이 나의 가치와 정체성을 마음대로 정하고 통제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잃지 말자. 이따금 동정하고 궁금해하고 알아가면서 사랑하는 삶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지는 않는다. 이루어지지 않을 생각이라는 걸 아니까. 그저 이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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