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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l 24. 2024

사랑하는 삶을 사는 인간의 마음

이병률 著,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산문]


- 제목 :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저자 : 이병률

- 출판사 : 달



이병률 작가는 시인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시집보다 산문집을 먼저 읽었다. 이북으로 먼저 읽으면서 '이건 핸드폰으로는 절대 못 읽는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스스로 사랑세포가 많은 인간이라고 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궁금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사진이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을 투과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종이책을 구매하는 데에 상당히 큰 기여를 했다.


작가는 '사랑'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무수한가. 정작 연애는 물론 한 번의 짝사랑도 하지 않은 나에게, 그렇다고 가족애나 인류애나 대상애가 그다지 풍부하지도 않은 나에게, 솔직히 사랑은 동떨어진 세상처럼 보인다.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산봉우리나 높은 건물의 꼭대기.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다가가기도 쉽지 않은 풍경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지금껏 이 작가가 사랑한 사람이 몇 명인이 궁금해졌다. 책에 나오는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이 설마 모두 다른 사람인지, 누가 누구와 동일 인물인지,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지, 언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실 책의 모든 이야기가 사랑이다. 사랑이 꿰뚫고 있으며 사랑의 본질을 말한다. 이병률 작가의 기혼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상상도 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처럼 사랑만을 되풀이하는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친 순정은 잘 믿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사랑을 제대로 알고 품는다면 분명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나에게 그 '사랑'은 성애나 연애보다는 인류애, 박애, 생명애 따위에 더 가깝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는 분명 사랑하기도 포함되어 있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껴주는 일.


하지만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한다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예수조차도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그마한 충돌 하나로도 금세 증오심과 거부감을 품고 외면하거나 떠밀어버리는 게 얄팍하고 간사한 인간의 마음 아닌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가 갑자기 모든 마음을 잃어버린 것처럼 돌변하는 게 사람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모든 감정이 그렇듯 일률적으로 한결같이 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버리지 않고, 드러내지 않더라도 일단 마음에 지니고 사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때는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언제든, 무엇이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마음은 믿음이라고 본다. 서로를 신뢰하는 것 말이다. 이 사람은 나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란 안전하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어서,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우는 숱하고 그로 인한 실망감과 불안과 상처를 쌓아가다나 끝내 영영 이별하는 연인은 무수하다. 더 나아가면 협박, 폭행, 살인 등의 처참하고 끔찍한 이야기도 존재한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안에는 불안이가 나의 안전을 위해 상시 대기 중이어서 어느 것 하나도 안심한 채로 행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걱정해 봤자 변하는 건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죽으니 마음 놓고 살자며 열심히 나 자신을 세뇌시키려 해도 겁 많은 심장이 자꾸 앞서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껏 사랑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작가의 사랑 이야기는 실로 낭만 그 자체이다.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를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철저히 작가 시점이므로 상대방의 마음은 알 수 없고 오직 한 사람의 입장만을 알 수 있지만, 정말 '마음을 다해 하는 사랑'을 글로 쓰면 이 책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멋대로 사랑하고 멋대로 실망하지만 그마저도 불완전하고 미비한 인간의 사랑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사람이라면 모두 앞서서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하거나 머쓱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기억에는 없더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좀 많이 수치스럽기도 할 테다. 슬프게도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



21p - 한 플로리스트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뭐예요? 난 서슴없이 '사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랑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사랑이요. 도처에 널려 있는 사랑, 다요.

지금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마음'이라고 대답하리라고 밑에 답글을 달았다. 사랑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인정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연민하는 마음, 외로운 마음… 그 모든 마음이 모여서 이 세상을,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인간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선명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일본의 밴드 '아마자라시(amazarashi)'의 노래 <소년소녀(少年少女)>에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는 쓸데없이 강해지기만 했어'라는 가사가 있다. 사람이 마음을 잃어버린 세상은 죽어가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너무 차갑게 얼리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만 마음은 메마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팍팍해지는 걸 느낄 때마다 나에게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나 생각하게 된다.


도처에 널린 사랑. 사랑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만이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57p - 한 번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사이는 사랑을 지속할 수 없는 법이라고 네가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나쁜 균일수록 잘 자라는 법이니까'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이 슬픈 점은 두 사람은 최소한 한 번은 이별을 겪었거나 이별을 할 뻔했던 사이고, 거의 이별 혹은 완전한 균열을 앞둔 상태에서 나쁜 균일수록 잘 자란다는 말은 그저 마음속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다. 떠나가는 이를 붙잡지 않는 것 또한 사랑하는 방법이다. 나쁜 균일수록 잘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존재가 나쁜 균이라면, 나는 얼른 없어지고 싶을 것이다.


나쁜 균을 나쁜 마음으로 치환한다면 참 옳은 말이다. 내 마음에는 좋은 마음보다 나쁜 마음이 훨씬 빠른 속도로 증식해서 순식간에 머릿속을 지배한다. 왜 좋은 말과 좋은 마음은 열심히 가꾸고 들여다보아야만 겨우 죽지 않고 비실비실 살아 있는 것일까. 나쁜 말과 나쁜 마음은 외면하고 무시해도 알아서 척척 잘도 자라는데, 왜 반대는 그렇지 않은 걸까. 억울한 일이다.



76p - 그곳에서 당신과 한 달만 살고 싶다. 그렇게 한 달만 깨어 있고 싶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 잠결에 맞닥뜨린 당신을 와락 안고 싶다. 바람만 불어준다면, 그 바람에 꽃잎이 몇 장 실려와준다면 나 잠시 그곳에서 죽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떨까. 편지에 시를 적는다면 이런 문장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편지 같은 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시 같은 편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영원을 약속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달만이라도 아무런 걱정 없이 오로지 사랑에만 쏟아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눈을 돌리면 좋아하는 사람이 보이고,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다정하게 대답해 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겠지. 나는 그렇게 낭만적인 사랑 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158p - 그러니 사랑은 차라리 꽃입니다. 사랑의 순간과 사랑의 절정과 사랑의 소멸, 이 모두가 한 송이입니다.

그렇군. 사랑은 차라리 꽃이로구나. 순간, 절정, 소멸이 모두 한데 존재하는 것. 사랑을 대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사랑하는 동안 이별을 줄곧 생각하지는 않겠으나, 이따금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떠오르는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는 이 문장을 생각하는 것이다. 꽃처럼 사랑하기에 피어나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시드는 것도 모두 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시작한 순간 시들어 죽어버림을 전제로 하는 시간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렇다면 아픈 사랑이 조금은 덜 쓰라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의 소멸과 이별이란 말 몇 마디로 위로되지 못할 것이겠지.



218p - 일 년 뒤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사랑의 감각을 더 열어놓겠습니다.

일 년 후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남아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일 년은 너무 짧다. 나를 가장 갑갑하게 만드는 회사를 나오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보태어 가고 싶었던 여행지에 다녀오고, 죽는 순간까지 나의 시간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유자적 흐르듯 살아갈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글도 읽지 않고, 노래도 듣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방 안에서 내 숨소리만 듣는 것이다. 그런 나날을 하나둘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죽어 있을까.


사랑의 감각을 열어놓겠다는 대답은 신박하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넓고 깊게 사랑하겠다는 말. 사랑의 감각을 열어둔다면 나는 세상을 더 선명하고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도 사랑하고 본래 사랑했던 것들은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사랑한다는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꽃과 나뭇잎, 나뭇잎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 햇빛을 가리는 구름, 구름을 가르고 날아가는 새, 새의 날갯짓 아래에서 흐르는 하천, 하천이 이어지는 바다, 바닷가에서 산책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그들의 걸음과 목소리, 한때의 즐거움과 행복,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여유와 사랑. 그런 존재를 더욱 실감 나게 느끼고 포용하며 마지막 생을 보내게 되겠지.




나로 살지 않으면, 나는 무엇이 되어 살아야 하나


이 책을 가장 뜨겁게 꿰뚫고 지나가는 것은 '사랑'이지만, 사랑을 논하면서 '삶'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삶이 존재해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 있어야 삶에 색깔과 냄새가 생긴다. 꼭 살아 있는 존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도 말이다. 사람과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지구를 벗어나 머나먼 우주로 나아가더라도 여전하다. 스웨덴의 DJ이자 프로듀서인 '아비치(Avicii)'의 노래 <Wake me up>에 이런 가사가 있는 것처럼.


Life's a game made for everyone (삶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야)

And love is a prize (그리고 사랑은 보상이지)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거창한 의미는 찾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났고, 태어났으므로 언젠가는 죽기에, 죽음 이후 남겨질 내 삶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따뜻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만은 내가 평생 살았던 나의 인생을 기억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빌었던 시인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62p - 내가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건, 또 사랑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건 저마다 부족함을 가지고 산다는 겁니다. 그 부족함을 그저 자신의 내부로 더 깊이 옮겨놓는 일을 하면서 살 뿐인 거죠.

기대를 덜어놓고 살 필요가 있다. 요즘 느끼는 점이다. 누구나 부족한 채로 산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의 이상향과 오차 없이 들어맞는 인간도 없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건 다른 문제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빈틈없이 단단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렇게 딱딱한 마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자존심이든 자굴심이든 부드럽지 못한 마음은 이내 부러지고 말 것이다. 줏대와 고집은 다르다. 줏대는 인정함으로써, 고집은 부정함으로써 나온다. 자신의 부족함을 내부로 깊이 옮겨놓는 일을 할 때, 인정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누군가는 받아들이기 위해 옮길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숨기기 위해 옮길 것이다.



93p  - 나로 살아야겠다. 온전히 나로 행복해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살다가 죽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다. 나 자신에게는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힘들다. 심장이 갑갑하고 온몸이 뻐근해서 도무지 허리를 펴고 살 수가 없다. 비록 이상과 현실은 다를지라도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는지만 알아도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중독이나 강박에만 빠지지 않으면 되는데 그 또한 몹시 어려운 일이다. 자의로 욕구를 절제하는 일은 성숙하고 현명한 어른이라도 손쉽게 행하지 못하는 것.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다. 오로지 나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98p - 살아 있는 것은 저마다 처절한 비릿함을 품는다.

처절한 비릿함은 무엇일까. 어떤 냄새를 품고 있을까. 썩은 생선처럼 지독하고 역겨운 악취를 풍기고 있으려나. 하지만 살아 있는 것들에게서 시체 냄새가 나다니, 그건 살아 있다고 말하지 못할 상태가 아닌가. 가만히 상기한다. 살아 있는 것이 괴로웠던 순간, 인생이 너무 길고 덧없고 막막하다고 생각했던 때, 내가 인간이고 이런 몸뚱어리를 가지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버거웠던 나날을 떠올려 본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존재들을 다시 상상한다. 그러면 살아 있는 것만이 품은 처절한 비릿함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결핍되고 마모될 수밖에 없는 슬픔. 하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일 것이다.



110p - 자신이 본 것과 경험한 것이 아니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이 된다. 자기가 이제껏 맡아보지 못한 향기 앞에서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젓기로 하며, 자신과 그것이 영원히 어울릴 수 없다는데 무슨 소리냐며 부정한다.

보통의, 평균의 삶을 사는 게 누구나 원하는 일이라면, 그 또한 도달하기 쉽지 않은 기준이겠지만 정말로 인류 모두가 그 기준을 붙들고 산다면……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어 세상에 녹고 만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모인 세상은 얼마나 각박하고 끔찍할까. 자신은 존중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다른 이는 전혀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 싫다. 그것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밖으로 꺼내 표현하는 사람은 더욱 싫다. 물론 나도 모두를 존중하지 못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 호기심보다는 거부감을 먼저 느낀다. 마치 본능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를 존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런 마음을 품으려야 품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해나 포용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마치 해량하듯 베풀면서 행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이나 평균 따위의 이름으로 기준을 만들고, 그 틀에 어떻게든 사람을 끼워 맞추려는 행위가 얼마나 기괴한지…. 나도 그런 기준에 자꾸만 나를 맞추려고 하는 인간이기에 더 반성이 된다. 나는 세상에 소속되어 '정상'과 '평균'을 누리기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가? 나를 잃어버리는 대신 타인이 만든 세상에 나를 집어넣고 마음 같은 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은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



141p - 우리는 당황스럽거나 실망하거나 다루기 까다로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잘 모르는 것을 선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황과 실망을 안겨주는 그 모든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경험을 가장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 앤 모로 린드버그, 『바다의 선물』

도전은 두렵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당장 생계가 빠듯한 마당에 꿈을 찾아서 멀리 떠나라는 말은 귓가를 스치지도 못한다. 새로운 일은 언제나 두렵다. 예상과 달라서 당황스럽고, 기대와 달라서 실망스러운 일을 조금씩 겪을 때마다 사람은 점차 움직이지 않는다.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운 일 따위는 없도록 안전하게 제자리에 줄곧 머무르게 된다. 경험은 물론 언제든 중요하지만 너무 많은 경험을 강요하는 것은 사양이며, 경험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말에 대해서도 큰 호감이 없다. 다만 당황과 실망이 안겨주는 모든 것들이 가장 풍요로운 경험이라는 말은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일을 시도함으로써 느끼고 얻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재산이 된다는 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조금씩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56p - 하지만 이 존재 덕분에 힘이 납니다. 이 존재에 맥없이 기대게도 됩니다. 이것도 바로 사람의 일입니다. 인연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진짜는 아니다. 그러나 외로움만큼 마음을 공허하게 만드는 감정은 몇 없다. 괴로움을 넘어서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나를 받쳐주는 존재가 어디에도 없다는 그 침잠한 마음. 인연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나의 인연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200p - "너무 아름다운 것만 보려다가 안 보게 되는…… 아름답지 않은 건 어떡하라고요……."

왠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로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나아가는 사람을 존경스럽게 여기는 편인데, 아름다운 것만 보려다가 안 보게 되는,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좋은 것만 보려다가 외면하고 부정하게 되는 안 좋은 것들은 어떡하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만 느끼려다가 정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슬픔과 우울과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하나.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아웃>이 생각났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기쁨이는 슬픔이를 억누르고 통제하려는 과오를 저질렀다가, 이내 감정은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과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밀어낼 수는 없다. 평생 아름다운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아름답지 않은 것들과도 함께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나의 뒤숭숭한 내면과 선과 악이 뒤섞인 마음은 공존한다. 때로는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것이 나의 일부이며, 세상을 이루는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만 바라보아도 좋지 않겠구나.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다. 한 곳만 바라보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전부 놓쳐버리고 만다. 그렇게 지나치는 동안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가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255p -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나에 대해 무어라 대답을 하면, 그 대답 때문에 내가 나와 많이 다른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많이 봐와서다.

이 문장에 무척 공감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한 번도 솔직한 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아는 나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당장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이 알고 있는 내 모습만 해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그들이 바라보든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다. 사람이 한두 가지 모습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건 아니라지만, 나는 스스로 성격이나 내면이 몇 조각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느끼곤 한다. 어떨 때는 이런 모습이고 다른 곳에서는 정반대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너무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점점 나에 대해 알 수 없어지기만 했다.


남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쉽게 말해 나 자신을 꾸며낸다는 것. 사회생활을 위한 페르소나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내면까지 스며들기 시작하면 무척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그것마저도 내 모습이라지만 중심 없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자아로는 어떠한 확신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자아 정체성. 어려운 단어다. 그리고 나는 내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다. 작가처럼 내가 나와 많이 다른 '어떤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아낄 필요도 있다. 말은 아끼고 생각은 많이 하고, 나의 삶을 성찰하고 이따금 미래를 마음껏 몽상하면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마치며


사랑, 생각, 마음, 인생, 가치, 시간.


그것들 모두 최종장에는 나에게 쏟아질 것이다. 나의 삶은 오직 나만의 것. 다른 누구도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존재.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고 나아갈 자격이 있다. 넓게 보면 사랑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책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분명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경험이란 그런 거니까. 무엇이든 보고 겪고 느끼면서 식견과 사려를 넓히고 마음을 깊게 만드는 것.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먼 미래의 내 소식도 들려왔으면 좋겠다. 어쨌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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