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에 지친 나를 돌보는 곳
어릴 적, 2주에 한 번씩은 엄마와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집에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목욕탕 하나가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촌언니는 한 번도 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크면서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 것이 기본값으로 자라온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아파트 욕실에는 욕조도 있고 춥지도 않단다. 굳이 목욕탕에 가지 않아도 물을 받아서 몸을 불리고 때를 밀 수 있다니. 그런 곳과 그런 생활도 있다니. 신기하고도 부러웠던 그곳에서 내 아이가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때는 허옇게 올라온 각질을 보며 ‘아, 목욕 갈 때가 되었군’ 하며 먼저 목욕바구니를 찾았다. 목욕탕에 가서 열심히 밀고 또 밀고 나왔음에도 미처 밀지 못한 몸 어딘가를 발견했을 땐 ‘또 2주 뒤에 와서 밀지 뭐’ 하며 흐린 눈을 하던 시절이었다. 1년간 외국 생활을 할 때 가장 아쉬웠던 것도 바로 목욕탕이었다. 대신 그곳의 화장실엔 욕조가 있어 몸을 불리고 때를 미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 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을 떠나면서 목욕탕은 나에게 단순한 청결의 공간이 아니라, 엄마와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집에 내려가면 엄마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때를 미는 것이 아니라 수다 떨러 목욕탕에 간다. 탕 안으로 쑤욱 들어가 시작한 이야기는 서로의 등을 밀면서도 계속되고, 그 등에 바디로션을 발라주는데도 끝나지 않는다. 엄마와 목욕탕에 가지 않으면 참 아쉽다. 집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목욕탕에서의 수다는 이상하게도 더 깊고 길어진다. 나의 본가는 편도 4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 자주 찾기엔 어렵다. 그래도 혼자 내려갈 땐 꼭 목욕탕에 갔다. 이제는 늘 아이들과 함께이니 엄마와의 긴 목욕탕 대화는 아무래도 어려워져서 아쉽다.
내가 다녔던 경상도 지역의 목욕탕에는 등 미는 기계가 항상 있었다. 때밀이 수건이 장착된 둥근 원판이 돌아가면, 등을 내어주고 기계의 장단에 맞춰 몸을 돌려준다. 혼자 왔을 때 이만한 것도 없다. 지금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등 좀 밀어주세요”라고 말하기 어려운데(이젠 아줌마력이 어느 정도 쌓여 말할 수는 있다만, 굳이 그러진 않는다) 지금보다 더 내향적인 어린 시절엔 아주 불가한 일이었다. 그런 나를 위해 찰떡인 기계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보니 이것이 없다. 서울 사람들은 옆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등을 잘 내어주는 건지, 아니면 아예 목욕관리사님께 맡겨버리는 건지. 등 하나 밀자고 세신 비용을 내고 싶진 않은데, 등을 안 밀면 목욕한 것 같지 않으니 낯선 이에게 등을 보이며 오늘도 항복한다. 내 묵은 근심을 벗겨가주오.
이번 연휴 동안 참 많이도 먹었다.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와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만 보를 걷고 오니 다리가 욱신거린다. 집안일 몇 가지를 하고 시가 가족들과 식사를 다녀왔다. 식사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몇 장 안 남았던 『아무튼, 목욕탕』을 마저 읽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책을 덮는 순간, 이 피곤함과 답답함을 풀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 하나 없이 6일을 보낸 나의 몸과 마음이 향한 곳은 책 때문이었을까, 결국 목욕탕이었다. 아, 오늘은 목욕탕에 가면 딱 좋겠다. 어릴 적에 살던 집과 달리 지금 나의 집에는 욕조가 있긴 하지만, 꼬맹이 두 녀석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날 가만둘 리가 없다. 목욕탕에라도 숨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진 않지. 결국 온 가족이 동네 목욕탕에 다녀왔다.
남편은 아들과 가는 목욕탕에 로망이 있었단다. 아빠와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 것, 그리고 아빠가 사주는 바나나우유를 마신 어릴 적 기억을 아들과 함께하고 싶단다. 모든 곳을 함께 가도 목욕탕 남탕은 금녀의 구역.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어린아이와 그를 보내기엔 나도 그도 불안하여 애써 모른 척하던 목욕탕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일곱 살쯤 되면서 남편은 아이와 목욕탕으로 향할 수 있었다. 남편의 친구와 그의 아들들이 함께했다. 그는 찜질방에서 오랜 로망을 실현했지만, 아들이 손목에 달린 키로 여기저기 눌러보는 바람에 바나나우유를 훌쩍 넘는 지출이 따라왔다.
나도 딸과 둘이 가는 목욕탕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장수탕 선녀님』 그림책과 뮤지컬 이후에 머릿속으로 목욕탕은 천 번은 함께 다녀왔을 것이다. 딸은 덕지가 되어 선녀님을 찾고 싶었지만, 냉탕은 손가락만 겨우 넣을 정도로 너무 차가웠다. 내 등은 고사리 같은 딸의 손으로 때를 밀기엔 태평양 같아서 그냥 대충대충 쓱 쓱 닦고 말았다. 그렇게 아이와 뮤지컬의 OST를 흥얼거리며 목욕을 마쳤다.
시간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남편과 아들이 남탕에서 나왔다. 바나나우유 하나씩을 먹으며 보름달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난 늘 그랬듯, 다음 달에도 달을 보며 소원을 빌 수 있을 평범한 일상을 소망했다. 아들은 아빠의 등을 밀었더니 지우개밥이 많이 나왔다며 깔깔 웃었다. 등에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며 큰 소리로 “아빠 저 아저씨 등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라고 해서 남편은 식은땀이 났단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살짝 났던 땀이 식었다.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휴일 막바지 선택으로 꽤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남편과 나눠 마시고 잠에 들었다. 목욕탕 덕분에 몸도 마음도 조금 풀렸다. 명절을 지나고 목욕탕에 갔더니 사람도 적어서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육아와 장거리운전으로 지친 긴 연휴. 여느 며느리의 명절 풍경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만, 나름의 고충은 있었기에 그것을 40.8도의 열탕에 녹여서 흘려보내고 왔다.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다. 안 괜찮으면 또 가지 뭐. 그때는 꼭 혼자 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