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왜 그래요?
나보다 열 살 어린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녀는 요즘 수영복에 푹 빠져 있었다. 수영 이야기로 한참 웃고 떠들던 중, 그녀가 물었다.
"저는 저녁 7시 반쯤 가요. 선생님은 언제 가세요?"
"저는 오전 6시요."
"우와, 새벽 수영! 혹시 저녁 시간이 다 찼어요?"
"아뇨. 저에겐 새벽밖에 시간이 없어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삶의 리듬이 새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엔, 그녀의 세계엔 아직 해뜨기 전의 고요가 필요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까 수영하신 지 3년 됐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휴직 중일 때도 계속 새벽에 하셨어요?"
"네. 3년 내내 쭉, 새벽 수영만 했어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다시 물었다.
"왜 굳이... 그러셨어요?"
그 말은 결국, 출근도 안 하는데 왜 굳이 그렇게 일찍 일어나 수영을 가셨냐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년생이 모르는 $$년생의 삶이 있답니다. ^^"
수영은 이제 더는 나에게 ‘운동’이 아니다. 그건 자유의지로 가득한 나의 활동이다. 안 가는 것도 내 뜻이고, 가는 것도 내 결정이다. 수영복을 고를 때도, 내 취향이 100% 반영된다.
그에 비해, 육아도 출근도, 아이도 학생도, 엄마도 교사도 분명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책임’과 ‘의무’가 먼저였다. 그래서 늘 즐겁지만은 않다. 오히려 괴로운 순간이 더 많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고, 아이, 학생, 학부모, 동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나와 다를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기에 고민하고,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해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수영은 다르다.
너무 피곤한 날엔 그냥 잠을 선택해도 괜찮고, 눈을 겨우 뜨고 수영가방을 들고나가며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나만의 시간이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시간. 어쩌면 지금은 수영이지만, 훗날엔 또 다른 무언가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수영, 글쓰기, 독서—
이런 것들이 결국, 나를 나로 살게 해주는 것들이다.
나는 바란다.
**년생인 그녀가, 이런 자유의지를 조금 더 늦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무언가에 떠밀리고 떠밀려 겨우 도착한 그 끝에서 ‘이게 나였구나’ 깨닫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리듬으로, 진짜 원하는 걸 찾아냈으면 좋겠다.
긴 연휴가 언제나 쉼은 아닐, 모든 워킹맘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