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공항편

by 루시아


​아주 큰 용기를 냈다. 아이들과의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그래서 지금, 나는 공항이다.


​나와 아이들이 공항 어드메에서 체험을 즐기는 동안, 공간 밖에서 대기하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다. 딸아이와 체험에 참여 중이라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아들을 보냈다. "가서 아빠 화장실에 좀 넣어드리고(?) 와."


​아빠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알 길 없는 아들은 야속할 만큼 느긋하게 걸어 아빠에게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이고, 어서 가야 할 텐데'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직접 갈 걸 그랬나 후회도 했지만, 나만 보고 있는 딸아이를 두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아들이 길은 제대로 찾아올지, 남편이 제때 도착은 할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체험은 곧 끝났고 나도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다 벽면에 붙은 이 버튼을 보았다. 내 볼일을 다 마치기도 전, 다급하게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오타


​원래도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남편이지만, 분명 물내림 버튼을 찾지 못해 당황하며 벽면을 더듬대고 있을 게 뻔했다. 지난 여러 경험이 이미 내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화장실을 나와 기다리던 아들을 다시 남자화장실로 들여보냈다. 잠시 후, 아들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위풍당당하게 나왔다.


​“내가 보낸 카톡 봤어?”
“아니, 왜?”
“왼쪽 벽에 물내림 버튼 있다고. 못 찾고 헤매고 있을 것 같아서 보냈지.”
“응, 안 그래도 여기저기 더듬대다가 00이 목소리 들리기 직전에 겨우 찾았어.”



​하.
인천공항 관리국에 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 점자 스티커라도 좀 붙여달라고.
본의 아니게 물도 못 내리고 도망친 시각장애인 A씨의 '매화(조선시대 왕의 변을 이리 불렀단다)'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흰 지팡이 하나면 무적이 되는 이 공항에서,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에 앞서 짧게 글을 남겨본다. 오늘은 '응가'로 내게 소중한 글감을 제공해 준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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