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조각을 꺼내게 될까,
나는 사람을 만나면 만나서는 잘 놀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회복 시간이 길다. 모두 내가 만든 만남이지만 그 안에서 에너지를 받으면서도 방전된다. 나이가 들면 좀 괜찮아질까? 싶었는데 20대 중반에도 그랬던 내가 30대 후반이 되었지만 여전하다. 그래서 올해는 만남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여볼까 한다. 더 줄일 게 뭐가 있을까 싶지만, 들어가 있는 단톡방만 줄어도 조금 낫겠다 싶다.
에너지가 금방 바닥나는 건,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꺼내 놓아야 하는 '마음의 조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관계는 대충 이런 식이다. 가족과 직장, 취미생활. 지난 몇 년간 나름의 취미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늘었다. 이것이 관계가 늘었다기보다는 내가 나를 꺼내는 버전이 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꺼내는 마음의 조각이 달라진다.
수영장에서도 가볍고 얇은 조각을 꺼낸다. 그곳의 구성원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삶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수영하느라 그럴 시간도 없기도 하다. 자유수영하는 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커피 한 잔 하며 나눈 가벼운 이야기 딱 그 정도다. 거기에 수영 영법 고민은 필수. 수영장에서의 조각은 물에 띄울 수 있는, 딱 그 정도면 된다.
작년부터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도 하고, 지역에서 하는 어린이도서 모임에도 나간다. 그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연배가 있다. 아이들도 중학생 이상으로 큰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아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가 제일 힘들지. 근데 그때가 제일 예뻐.”
“잘하고 있어요.”
솔직히 그 말이 매번 크게 와닿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것 같다. 그들도 다 그 시절을 겪어봤으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미리 겪어본 이들에 기대어 뾰족한 내 조각을 조금씩 둥글게 깎아본다.
내 마음에서 제일 무겁고 깊은 조각을 꺼내는 사람도 있다. 우리와 비슷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결혼 선배 부부. 시각장애인 남편, 비장애인 아내. 그들은 우리보다 12년쯤 먼저 이 길을 걸어왔다. 작년에 큰아이는 대학에 갔고 엄마 대신 운전도 하고, 엄마에게 소주를 건네고 함께 마시기도 한다.
그분 앞에서는 조각을 고르는 걸 포기한다. 그냥 쏟아낸다. 힘들고 버거운 마음도, 감히 말하기 어려운 죄책감도, 그 안에서 얻는 위안도,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답을 해주실 때도, 그 어떤 말보다 찐하게 안아주실 때도 있다. 그 마음 한 번에 나는 또 위로를 얻는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흩어졌던 조각들이 비로소 제 위치를 찾는다.
살다 보면 다양한 장면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보이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만남은 가볍게 웃고 지나가도 좋고, 어떤 관계는 얕은 이야기만 나눠도 충분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꺼내는 마음의 조각이 다르다. 그 조각들이 다 모이면 결국 내가 된다.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의 조각을 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인의 조각을 받아들일 때마다 에너지가 쓰이는 건 내 성향상 어쩔 수 없겠지만, 타인의 조각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결국 내 조각도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유독 만남이 많은 1월이다. 어떤 조각을 꺼내 들고, 어떤 조각을 만나게 될까. 회복 시간까지 포함하여... 이번 달도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