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문 풍경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혼자 카페를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코끝을 스치는 잠깐의 커피 향은 좋지만, 머리카락과 옷깃에 끈질기게 남는 그 특유의 비릿한 냄새(어쩌면 담배 연기의 잔향과도 닮은)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 사장인 언니가 들으면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커피에 쓰는 돈도 조금은 아깝다. 선물 받은 기프티콘이 쌓여 있을 때나 찾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딱 거기까지가 나의 취향이다. 평소엔 집에서 캡슐을 내리거나 드립백, 혹은 카누 한 봉지로 필요한 카페인을 서둘러 수혈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혼자 카페 문을 여는 시간이 있다.
토요일 오전, 아들이 바둑을 배우러 가는 한 시간. 가끔 보강까지 더해져 두 시간이 주어지는 날이면 더할 나위 없다. 문화센터 대기실 딱딱한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기엔 그 시간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근처 카페로 향한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군중 사이에서 나만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에 몰두해 있는 시간. 대형 카페의 소란함 덕분에 원치 않아도 타인의 삶이 띄엄띄엄 귓가에 들려온다. 내가 앉은 구석자리에서는 다섯 개의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내 옆자리의 주인공은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였다. 유모차 안에는 두 돌 남짓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앉아 있었다. 부부는 진지하게 가정사를 논의하다가도, 아이가 칭얼대면 얼른 말을 걸거나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달래느라 분주했다.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내 첫아이가 저만했을 때, 나는 카페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코로나라는 그럴싸한 핑계도 있었지만, 사실 아이와 함께 카페에 들어왔을 때 쏟아질 시선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시각장애인인 남편과 아이를 동반한 외출은 장소가 어디든 늘 몸과 마음을 녹초로 만들곤 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믿지만, 여전히 아이들과의 카페 나들이는 쉽지 않은 숙제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들을 데리고 집을 나서는 것이 정답일 때도 있지만, 그곳이 카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부는 결국 대화를 다 마치지 못한 듯 보였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앉았으니 커피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을 텐데.
그들이 떠난 빈자리엔 공주 드레스를 입은 여섯 살 소녀와 엄마가 앉았다. 아이는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고, 엄마는 그제야 긴 한숨을 돌리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그 옆엔 아이의 학원 정보에 열을 올리는 두 여자가, 저 멀리엔 타인의 육아 전쟁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한 어린 커플이 깔깔대며 휴대폰 속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노모의 입에 케이크를 넣어주며 표정을 살피는 중년 여성과 소개팅 뒷이야기를 늘어놓는 여자까지.
흥미진진한 소개팅 이야기가 이어지려는데, 아들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다. 나 역시 다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는다. 아껴 읽으려 가져온 책은 겨우 한 장을 넘겼을 뿐이다.
카페를 나서며 문득 궁금해졌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던 저들의 풍경 속에서, 혼자 앉아 있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옷에 밴 커피 냄새에서 내가 관찰한 이들의 표정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