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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14. 2023

드디어 생긴 취미

새벽수영 1년 후기


둘째를 낳은 후 산후다이어트를 위해 유모차를 밀며 걷거나 새벽이나 저녁에 15층 계단 오르기를 했다. 그러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홈트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운동이었다. 나는 움직임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랬기에 일부러 움직이는 운동을 굳이 하지 않았다. 그 홈트로 살도 꽤 많이 뺐다. (빅씨스 만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낮에 하던 것을 복직을 하고서부터는 출근 전에 했다. 그렇게 한 달_ 더 이상 홈트가 재미가 없다. 출근 전에 하고 있다 보니 늦게 일어나면 할 시간도 없다. 하기 싫어서 늦게 일어나기도 한다.


운동이 필수가 된 30대!

이젠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을 해볼까 하고 눈을 돌리던 중..! 직장동료가 두 달 전부터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집에서 5분 거리에 수영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수영장이 있다는 건 늘 알고 있지만 그곳에 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출처: pixabay


나는 어릴 적에 수영을 잠시 배운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영이라 하면 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함께 피어오른다.
어려웠던 우리 집 형편에 어쩌다가 언니와 내가 수영장에 다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와 함께 어린이 수영 강습을 받았다. 수영 강습을 받았던 당시 상황 같은 건 오래되어서인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시선이 아닌 엄마의 시선에서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랬기에 왜곡일지 모르겠다. 엄마는 수영장 2층에서 언니와 나를 지켜보며 우리를 기다렸다. 강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부모님들께 선보이는(?) 시간이었는데 부드럽게 헤엄을 잘 쳤던 언니와 반대로 나는 그동안 수영 강습을 받은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모양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물 위에 떠 있던 그 순간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지금 나의 성향으로 봤을 때 당시의 나도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을 것 같은데, 나의 모습을 엄마뿐만 아니라 자녀의 수영을 지켜보던 다른 부모님 또한 봤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다. 나의 수영을 보고 엄마가 뭐라 했었던 것 같은데 혼났던 건 아니지만 그것이 당시 나에게 수치심이 되었고, 그 후 10여 년간 그 수치심은 수영이라는 단어 옆에 꼭 붙여 다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청소년기를 지나며 수영을 접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20대 중반, 다시 나는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 왜 가게 되었는지 당시의 기록이 없어서 아쉽다. 아마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자유형과 배영을 배웠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템포도 그때 처음 써봤다. (지금은 그 기간엔 그냥 쉰다.) 그러다 평영을 배울 시기였는데 자유형과 배영에 비해 발차기 연습이 생각만큼 되지 않아서 점점 가기가 싫어졌다. 대학교 4학년 때였는데, 아르바이트로 수영 강습비를 내고 있다 보니 가기 싫은 마음이 돈이 없다는 핑계로 바뀌어 그렇게 또 그만두었다. 그렇게 수영은 나에게 또다시 수치심이 되었다. 어릴 적 수영을 생각하며 떠오르는 수치심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면, 두 번째 수치심은 끝까지 도전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나는 아이 둘을 가진 워킹맘. 과연 수영이 수치심이 아닌 수영 그 자체로 남겨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수영장에 등록했다. 더 이상 2층에서 나를 내려다볼 사람도 없다. 사설 수영장이기에 가격 부담이 조금은 있었지만, 이제는 수영 강습비 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운동을 그만 둘만큼 경제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코딱지만 한 개인 용돈의 절반 이상이 수영장에 들어간다는 건 비밀)  다만 시간은 없었기에.. 새벽 6시 수영을 택했다. 저녁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했고 남편의 스케줄에 따라 나의 스케줄도 달라지기에 출근 전 시간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새벽에 수영을 한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 도 있었다. 별을 보며 수영장에 가던 첫날_ 몇 명이나 있으려나 싶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나와 운동을 했다. 처음 온 티를 팍팍 내며 샤워를 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여섯 개의 레인 중 가장 첫 레인에 섰다. 수영을 언제 배웠냐 하셔서 10년 전에 배영까지는 배웠지만 어떻게 하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니 그에 맞추어 가르쳐 주셨다. 어느 정도 몸이 기억은 하는지 강사님이 자세 교정을 해주시니 자유형과 배영은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25m를 가다가 몇 번을 멈추던 나날을 지나 한 번에 25m를 가고, 약간 쉬었다 다시 25m를 헤엄쳐서 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평영을 마주했다. 10년 전 그때처럼 발차기가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만둔다면 정말 수치스러울 것 같았다. 10년 전 나와 내가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끈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땐 시작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지만 포기가 엄청나게 빨랐다면, 지금은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과 고민이 생기고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면 시작하지 않지만 시작한 이상 꾸준히 해낸다. 남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도 계속 연습하다 보면 되겠지 싶어 수영장에 올 수 있는 체력이나 상황이 허락된다면 빠지지 않고 연습을 했다. 그렇게 평영은 4개 영법 중에 가장 재미있는 영법이 되었다. 접영을 배울 때도 난관이 많았다. 일단 나는 엄청 뻣뻣한 몸이라 웨이브가 잘 안 된다. 전혀 웃는 일이 없었던 강사님도 내 웨이브를 보고 웃었다... 강사님께 아침부터 즐거움을 드렸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20대의 내가 평영이 안되어 수영을 그만두고 싶었다면 30대의 나는 접영이 안되니 오기가 생겼다. 틈만 나면 수영 유튜브를 찾아보며 자세를 눈으로 익히고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했다. 그러고 얼마 안 되어 2번 레인으로 옮겼다. 2번 레인은 4개 영법을 어느 정도 다 배운 이들이 자세 교정을 받으며 연습하는 곳이다. 자습이듯 강습인 듯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꽤 오래 있었다. 이젠 쉬지 않고 50m를 몇 번이고 갈 수 있었다. 여전히 자세에서 오류가 많았지만 그런대로 즐겁게 운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님이 이제 상급반으로 올라가란다. 우리 수영장의 반은 크게 두 개, 초/중급과 상급반으로 나뉘고 강사님도 두 분이시다. 초/중급반은 두 개 레인을 쓰는데 항상 초급반은 바글바글하다 보니 복잡하기도 하고 접영 같은 경우는 양팔 접영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강습생이 늘어나자 어느 정도 영법을 익혔다 생각되는 사람은 강사님이 반으로 올려 보내는데 이번에 내가 당첨된 것이다. 상급반은 네 개 레인을 쓰고 실력(이라 쓰고 체력이라 하는 듯)에 따라 레인을 나누는데 개인 자세 교정이 크게 없고 거의 뺑뺑이만 돌리는 터라 반을 바꾸고 첫 한 달은 너무 힘들었다. 4번 레인에 들어갔는데 4번에 인원이 많다며 나를 2번 레인으로 가라 했다. 체력이 안되니 거의 따라가지 못했고 1년 중 가장 바쁘고 힘든 3월이었던 지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수영장에 갔다. 그래도 빠지지 않았음을 스스로에 칭찬을.. 체력도 체력이지만 같은 레인 사람들이 처음에 텃세를 부리고 강사님이 매번 화 아닌 화를 내셔서 마음이 힘들었다. 이러다 정말 수영을 놓아버릴까 싶어 강사님께 애원을 해서 다시 4번 레인으로 갔다. 4번 레인은 초/중급반에서 막 올라온 나 같은 사람이 모여있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짠함이 있기에 힘을 냈다. 그러다 함께 올라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안 보이기 시작하고 4번 레인에는 나만 남았다. 그러면서 강사님이 바뀌면서 3번 레인으로 올라왔고 어쩌다 보니 선두에 서서 이끌고 있다.



아직도 엉망인 자세가 많지만 이제는 수영 수치심이나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 되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취미란에 항상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하다 가장 만만한 것으로 독서를 썼었는데, 이제는 고민할 것 없이 수영이라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즐기고 있다 생각이 된다.

엄마는 50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배드민턴을 배우고 지금까지 운동 겸 취미로 쭉 해오고 있다. 수영을 등록하며 엄마를 생각했다. 나도 엄마처럼 운동으로 삶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 수영을 등록하며 할머니도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내가 중고등학교 때 할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꽤 멀리까지 가서 수영을 다녔다. 수영장에서 할머니들과 생긴 소소한 에피소드를  말해주시며 웃기도 했다. 나도 수영하는 할머니로 늙을 수 있을 것 같다.



2월부터 워치를 차고 운동을 했는데 7월에 가장 열심히 했다. 상급반으로 올라오고 나서는 게으름도 많이 부렸다. 주 5회 강습, 토요일은 자유수영인데 토요일만큼은 더 자자 싶어서 한 번도 안 나가다가 7월 들어서부터 자유수영도 빠지지 않고 나가본다. 이 재미난걸! 지금껏 왜 안 했을까. 수영! 참 매력적이다. 도전해 보고 싶은 스포츠가 몇 개 더 있지만, 일단 이것을 즐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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