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May 26. 2024

아빠, 앞에 턱이 있어!

재벌 2세 교육 아니고 안내인 2세 교육


오늘 모처럼 동네를 떠나 외출을 했습니다.


차가 많을 것 같아 오랜만에 가족 모두 지하철을 탔습니다.
남편과 지하철을 타면 동반 1인은 무료랍니다! 예! (아직 아이들은 요금을 내지 않아요. 아들은 교통카드를 가질 날이 머지않았네요.)
이렇게 네 가족이 집을 나설 땐 주로 남편과 아들이, 저와 딸이 짝을 해요. (남편과 손잡고 걷고 싶지만 아이들은 절대 그렇게 하게 두지 않지요 ^_ㅠ)

아들은 이제 꽤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 아빠의 안내인이 되어줍니다.
물론 아직 어려 자신의 높이에서만 생각해서 아빠가 부딪힐 때도 있고, 마음이 급해져 아빠의 손을 놓고 먼저 뛰어가 버릴 때도 있지만


아빠 이제 턱이 있어. 아빠 조심해.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아빤 이미 들려오는 소리에서 잘 알고 있지만^^) 저기에 우리 동네에 있는 씨유가 있네. 저긴 3번 출구래. 서울숲이라고 적혀있어... 등등 제가 남편에게 했던 것을 아이가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하고,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안내하는 듯 아빠가 아이를 데려가는 듯.. 둘이 함께 다니는 일이 이제는 꽤 익숙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길을 걸어가요. 아빠와 함께 하는 딸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아빠를 데리고 갈 때는 이렇게 해줘~라고 말해준 것도 있고,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도 있어요. 아빠에게 물건을 건네줄 땐 손에 쥐여주기, 아빠에게 책 읽어달라고 할 땐 휴대폰도 가져다주기 등.. 직접적인 코치를 한 것이 더 많긴 하네요.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든 남편의 손을 음식 쪽으로 끌어주며 설명해 주는데, 아이가 언젠가부터 이것도 하더라고요. 행동도 말도 참 조심해야겠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둘째 딸에겐 그런 것을 직접적으로 알려준 적이 전혀 없었거든요. (아빠는 잘 보이지 않아-라는 것.)
그런데 딸은 아빠에게 무언가를 보여줄 때 꼭 손을 가져가서 대어 보게 하고,
주차장에 이삿짐 차량이 들어온다며 주차금지 줄을 설치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며 뒤따라 아빠에게 줄을 조심하라고 말해주기도 해요.
참 신기하죠? 역시나 행동도 말도 조심해야겠어요. (이미 늦었.... 이제부터라도!)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아이가 아빠의 손잡고 걸어가며
아빠에게 주변 풍경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걸어가는 순간의 남편을 위함이 아니라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인생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요.



아이가 두 돌 때쯤 썼던 글인데 여섯 돌을 향해 가는 지금, 아이는 그렇게 커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저만 잘하면 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각장애인은 노래방에서 어떻게 노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