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아들은 먼저 와 있던 단짝친구를 발견하더니 신이 나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며 놀고 있다. 딸과 함께 놀이터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남편이 온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과 아이들의 가방을 건네받아 바로 집으로 갔겠지만, 때는 금요일. 다른 날에 비해 마음이 아주 여유롭다. 게다가 다음 주부턴 장마라니, 놀 수 있을 때 놀아라! 싶어 나도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봤다.
아이가 아빠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남편이 가방에서 젤리 두 봉지를 주섬주섬 꺼내자 아들은 친구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은 남편. 젤리 하나를 먹으려던 아들의 친구가 그런 남편을 쳐다보다 깜짝 놀란다. 손에 젤리를 쥔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그렇게 앉아 있다. 아이의 그런 눈을 발견한 나. 왜 그러는 줄도 알겠다. ㅎㅎㅎ
씩 웃으며 말했다.
"OO아, 왜 그래? 뭐가 이상해?"
"그런데, 아저씨 눈이 왜 그래요?"
"눈이 왜? 뭐가 달라?"
"뭐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아이는 손에 든 젤리를 입에 넣는 것도 잊은 채 남편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나는 그 상황이 웃긴데 남편은 약간 당황했다.
"아저씨! 눈이 왜 그래요?"
남편은 아이에게 뭐라 대답해줘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 남자는 순발력도 없고 이런 상황에 대한 계획도 전혀 없다.
"@@아(아들), 네가 친구한테 아빠의 눈에 대해 설명해 줘~"
"음... 할머니가 그러는데 아빠는 어렸을 때 티비를 많이 봐서 눈이 나빠진 거래~~ 깔깔깔"
(참고로 이 아이도 유튜브를 많이 봐서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안경을 쓰고 있다. 앗.. 이게 아닌데..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갈지도??!!)
놀란 아이를 내 앞으로 오게 하여 말해줬다.
"@@이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아파서 지금은 잘 안 보여~ 오른쪽 눈에는 가짜 눈이 들어있어." *가짜 눈: 의안
"헉 그러면 안 보여요?"
"응,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잘 안 보여. 그래서 길에서 아저씨 만나면 @@이 친구 00이라고 말해줘야 해."
"진짜 티비를 많이 봐서 그래요? 나도 많이 보는데 어쩌지?"
"티비를 많이 보기도 했지만 그래서 안 보이는 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아파서 그런 거야."
여전히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를 한 듯 그제야 아이는 젤리를 먹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이의 엄마가 앉아 계시기에 인사를 나누며 방금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렸다. 혹시나 아이가 집에 가서 이야기하게 되면 내용을 모르면 이해가 안 되실 거라 생각되어서..
아이 엄마는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실수한 것일까 미안해하셨는데,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으니 걱정 마시라고, 혹여나 아이가 집에서 물으면 시각장애인에 대해 말씀해 주시라 부탁드렸다. 아들이 참 좋아하는 친구라 친구 엄마와도 친해지고 싶었는데 우리 집 사정을 슬쩍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놀이터에서 종종 만나는 아들과 딸의 친구 부모님께 남편이 시각장애인임을 먼저 말하곤 한다. TMI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야 혹시 모를 오해도 덜 수 있고, 크고 작은 도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친구가 아빠의 눈에 대해 물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딸은 아빠 이거 봐봐!라고 말하다가도 이거 한 번 만져봐 라며 고쳐 말하고 손을 갖다 댄다. 아들은 아빠 잘 보이잖아! 하고 짓궂은 듯 말하면서도 아빠가 떨어뜨린 물건을 찾아준다. 이 아이들은 아빠의 눈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