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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24. 2024

시각장애인은 노래방에서 어떻게 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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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각장애인과 노래방에 갔던 건 대학교 1학년 3월, 동아리 OT날이었다. 나는 교내 시각장애인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학과 MT때 시각장애인선배들 옆에 앉았던 것을 시작으로 동아리에 들어갔고, 대학생활 내내 그들과 가까이 지냈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영화도 보고 노래방에도 갔다.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시각장애인친구들과 처음 노래방에 갔던 날, 선배가 나에게 번호를 불러줬고 나는 노래방 기계에 그 번호를 누르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가사를 다 외우는 걸까?'하고 궁금해하던 찰나, 선배는 나에게 옆에 서서 가사를 읽어달라고 했다. 그때였다, 그때가 나의 가사도우미 인생의 시작이었다.



https://brunch.co.kr/@brunch-of-lucia/12



시각장애인은 노래방에서 어떻게 놀까 궁금해서 그들을 관찰했다. 나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이 논다. 다만 번호를 눌러주고 가사를 읊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거의 외우고 있지만 옆에서 가사를 읊어줄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맹인들(비하아님ㅎㅎ)은 꼭 보이는 누군가를 데리고 다닌다. 정안인이 아니더라도 그중에 저시력인 하나라도 있다면 온갖 눈으로 할 일은 그가 많이 담당한다.




결혼식 축가를 남편이 불러줬는데, 이 때는 다행히...! 가사를 다 외웠다. 다들 남편의 노래에 감동받았을 때 나는 가사를 틀릴까 조마조마하며 듣다가 마지막에 와서야 '올... 다 외웠네...!' 하며 웃었다는 ㅋㅋㅋㅋㅋ


남편의 가사도우미를 맡은 지 어언 10년째.

어제 가족여행 중 오랜만에 노래방기계로 노래를 불렀다. 성당에서 미사곡을 부를 때도, 어제처럼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한 손에 들고서도 그의 뒤에 딱 붙어 가사를 한 박자 빠르게 읊어준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그가 가사를 다 외워버리면 조금 섭섭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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