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쌀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쌀국수 집으로 향하던 길에 일요일 휴무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다면 평소 잘 가던 분식집에 가서 우동을 먹자! 하고는 아이를 살살 달래 분식집 앞으로 갔는데 왜인지 임시 휴업이란다. 이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순 없기에(밥 하기 싫어!!!) 집 주변 음식점이 무엇이 있었는지 머리를 굴리다 보니 순댓국집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순대 먹으러 가자고 또 살살 달래서 순댓국집으로 갔다. 다행히 연중무휴였다! 야호!
순댓국이라는 말에 남편의 눈이 반짝한다. 남편은 순댓국을 참 좋아했다. 데이트할 때 순댓국 먹을래?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나에게 순대는 떡볶이랑 같이 먹는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순댓국이란 물에 빠진 고기를 안 먹는 남자(=아버지)와 평생 살며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과 처음 먹어봤다. 물에 빠진 고기를 안 먹는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던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순댓국집에 가봤다. 엄마도 몇십 년 만에 먹어봤다고 했다. 이렇게 그를 만나기 전까지 순댓국은 아주 가끔씩, 못 먹지는 않지만 굳이 찾지 않는 딱 그 정도의 음식이었다. 그와 연애하는 2년 동안 평생 먹을 순댓국을 다 먹은 것 같다.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 순댓국을 자주 먹었다. 참 많이도 먹었다.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 이런 음식보다 순댓국을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뷰가 좋은 카페에 브런치 먹으러 가본 적은 없었지만 해장하러 온 아저씨로 가득한 오전 시간의 허름한 순댓국집에는 자주 드나들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연애를 시작했던 그의 친구가 만나서 한다는 말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주로 파스타를 먹어서 속이 느끼해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는 어떻냐고 묻길래 생각해 보니 우린 주로 순댓국을 먹은 기억만 있었다는 것. ㅋㅋㅋㅋ
브런치는 한 번도 못 먹어보고 순댓국만 먹었다며 볼멘소리를 했더니 언젠가부터 순댓국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안 했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순댓국을 안 먹다가 오랜만에 뚝배기 그릇을 받아 든 것이다.
아이들은 찰순대 한 접시와 공깃밥을, 우리는 순댓국 하나씩을 먹었다. 아빠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아들은 "아빠 그게 그렇게 맛있어?"라고 말한다.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네가 순대 먹고 싶다고 매번 데이트할 때 순대만 먹으러 가면 안 돼. 여자친구한테 꼭 물어봐, 알았지?"
뜬금없는 말에 아이가 갸우뚱한다. "근데 그게 무슨 말이야?
코 박고 순댓국을 먹던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근데 00아, 여자친구는 널 참 좋아할 테니까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어줄 거야~"
비가 온다.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순댓국을 먹으러 왔다. 한 때 지겹도록 먹었지만 또 먹고 또 먹은 건 맞은편에서 코 박고 먹고 있는 당신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