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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11. 2024

내가 뺑덕이 된 사연

누가 죄인인가!


(읽기 전에)
이런 글은 남편과 사이가 아주 좋을 때만 씁니다. 안 좋을 때 쓰면 살벌한 표현이 나오기에 올릴 수 없음 ...  웃으며 써야 재미난 글을 쓸 수 있다 하하하하




양치를 하러 들어갔다가 욕조를 보고 화가 났다가 스르륵 화를 삭여본다.
                       
욕조에 아이가 썼던 샤워타월이 욕조에 그대로 있었다.
내가 아이를 씻기고 정리를 못하고 나왔는데 다음으로 남편이 씻어야 해서 비누 바로 옆에 샤워타월을 두었다.  출산 후 행주든 걸레든 손에 힘을 꽉 줘야 할 때면 손이 아파서 남편이 하게 두었다. 어차피 남편도 샤워타월을 써야 하고, 비누 근처에 있으니 분명 비누를 더듬대다 찾아서 제자리에 정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것을 기대라고 쓰는 게 맞을까 싶지만, 어쨌든 그러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 샤워타월이 그가 샤워를 마친 후에도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고리에 걸린 샤워타월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을 썼나 보다.

이 샤워타월을 본 나의 생각의 흐름은 이렇다.


-하... 저걸 그대로 뒀네.
-일부러 비누 근처에 뒀는데 기가 막히게 거길 피했군.
-두 개가 걸려 있어야 하는데 하나가 없으면 하나를 찾을 생각은 왜 안 하는 거지?
-꼭 말을 해줘야 아나??? 알아서 좀 할 수 없나???
-아오 결국 내가 해야 하네. 내가!!!!!!!!!!!!!!
-... 안 보여서 못했나 보지. 내가 말도 안 하고 그리 두면 안 되지.
-(그런데 심술남)

이것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적용된다. 정말 '설거지'만 하고 쏙 빠져나가버린 싱크대에 남아있는 음식 쓰레기, 물기, 인덕션 위의 요리 자국, 식탁 주변 아이들이 흘린 음식들을 보고 있을 때도, 세면대와 변기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을 때도, 빨래 망에 넣어두라고 10번은 더 말해뒀는데 세탁기에 그냥 걸쳐놓은 옷을 또 보았을 때, 방심하고 있으면 이것저것 쌓여가는 그의 책상을 보고 있을 때도.

무심해서 안 하는 것도 결국엔 안 보여서 못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결국 이것에 불만을 가지는 나에게 다시 화살이 돌아온다. 화살을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아버린다. 그리고 내 안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종이 한 장은 쉽게 찢을 수 있지만 100장은 한 번에 쉽게 찢어지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에 쌓인 무언가도 이렇게 자꾸 쌓여가다 보니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말을 하면 된다지만 그럴 때마다 말을 하는 게 과연 쉬울까. 나는 어렵고 힘들고 지쳐갔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나는 뺑덕이 되었다.



#시각장애인남편


* 뺑덕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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