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글감을 주는 남편
남편과 함께 마을버스를 탔다. 하차 직전,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으려던 남편이 그만 단말기보다 조금 앞에 손을 뻗었다. 마음이 급해서 착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손이 향한 곳은... 뒷문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의 얼굴!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셨고, 남편도, 나도 동시에 놀랐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급하게 인사드리고 내렸다.
이런 일, 한두 번이 아니다. 쇼핑하다가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의 어깨를 덥석 잡은 적도 있고, 놀이터에서는 다른 아이에게 손을 뻗은 일도 있었다. 남편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당황하고, 심하면 화가 날 만한 일이다. 어이없는 순간들이 종종 생긴다.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은 또 하나의 글감이 된다.
브런치북 ‘뺑덕이 사는 세상’은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심봉사 옆에 앉아, 때로는 눈을 대신해 세상을 보는 뺑덕. 그가 겪는 하루하루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하고,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별하다. 뺑덕이 사는 세상은 책임과 의무, 억울함과 죄책감이 뒤섞인 곳이다. 거기엔 사랑처럼 보이는 동정도, 동정인 줄 알았으나 억울함이기도 한 감정도 있다. 신이 조금 많이 넣어주신 듯한 측은지심도 함께.
뺑덕은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그저 고되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웃기고, 대부분은 평범하고, 가끔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이야기라는 것. 이 글을 읽으며 그런 순간들을 함께 느껴주고, 가볍게 웃어주면 좋겠다.
‘뺑덕’은 1년 전 출간된 책 《장애와 돌봄: 몰라서 몰랐던 이야기》 속 내 이야기에서 나온 캐릭터다. 심봉사의 곁에 머물며 마음을 나눈 여인이 꼭 탐욕스러운 인물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상상에서 시작됐다. 그 뺑덕을 빌려 시각장애인 남편과 함께 하는 나의 이야기를 썼고, 책에 다 담지 못한 경험들을 브런치북으로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연재를 기획할 땐, 개인적인 에피소드에 더해 사회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도 함께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에 점점 몰두하다 보니, 그 계획을 다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원고를 마무리할 무렵이면 또다시 쓸 이야기가 생긴다. 남편은 매번 나에게 글감을 물어다 준다. 이제 그만 다치고, 거부당하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하하)
이 연재는 마무리되지만, 남편이 주는 이야기들은 계속될 것 같다. 시각장애인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 그 곁에서 바라보는 내 이야기들은 종종 찾아오겠다. 남편이 자꾸 글감을 주니 안 쓸 수가 없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