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의 피크타임에 혼자 자리를 차지하기는 미안하다. 가끔 가는 점심 한식 뷔페집. 저녁엔 호프집, 낮에는 간이 한식 뷔페. 늦은 점심 시간인데도 손님이 많다.
김치(생기라고는 없는), 콩나물무침, 어 카인드 오브 나물, 어 카인드 오브 밑반찬에 더하여 매일 바뀌는 특별 메뉴와 국이 나온다. 한 2주일쯤 가보면 메뉴 사이클의 완전 정복이 가능하리.
별 기대 없이 오랜만에 갔다. 그런데, 세상에, 봄동 겉절이가 떡하니 차려져 있었다. 다른 찬은 데면데면, 밥도 그저 그렇지만 봄동 덕분에 호사로웠다.
맛짱의 즐거운 요리시간 블로그 사진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
아삭아삭 씹히는 밑동과 싱싱한 잎이 갖은 양념에 버무러졌다. 푸짐하게 한 숟가락 뜬 밥 위에 겉절이를 얹어 입을 크게 벌린다. '우걱'거리며 열심히 씹으니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찬다. 마치 와인 스위싱을 한 듯 그 향이 비강을 타고 올라 감도는 느낌이다. 어느 틈에 한 공기를 비우고 살짝 부끄러운 척하며 밥 반공기를 더 담아왔다.
봄동은 겨울철 노지에 파종하여 이른 봄에 수확하는 배추의 한 종류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기기 위해 잎이 땅에 바짝 붙어 퍼져 자란다. 어쩌면 그 반대일까? 척박한 겨울땅에 바짝 붙어 숨을 가누었기에 삭풍도 스쳐만 갔으려나.
봄동의 발음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봄:동'이 아니라 '봄.똥'이다. 그 발음에서 알 수 있듯 '똥'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다. 건조한 땅에 납작 붙은 모습이 소똥을 연상시켜 '봄똥'으로 불렸다, 그래도 사람이 먹는 음식에 '똥'을 붙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하여 '봄동'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리 와닿지 않는다.
이보다는 겨울 '동(冬)'에서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겨울의 고난과 봄의 생기를 한몸에 품은 채소이기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그렇다고 '춘동(春冬)'은 어울리지 않고, 된발음을 내는 사람의 습성에 따라 봄똥이 되었으리라 맘대로 추측해 본다. 자장이 아니고 짜장이, 잠봉이 아니고 짬뽕이 말의 제 맛을 내듯.
엄마의 노하우에 의하면 봄동은 잎이 시들지 않고 밑동이 단단하며 속잎은 선명한 노란색을 띤 것일수록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성인 남자가 두 손으로 감쌀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나의 뇌피셜로는 약간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것이 더 달짝지근할 것 같은데, 이는 벌레가 찾아 먹을 정도의 달콤함이 보장되었을 것이라는 다분히 무지몽매한 믿음일 것이다.
잎을 한 장씩 떼어 흐르는 물에 잘 씻는다. 체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 후 알맞게 자른다. 다듬을 때 노랗고 여리고 작은 속잎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자칫하면 이 맛에 취해 겉절이는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빈속을 날것으로 채울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특별히 잎이 크고 강한 초록색 부분은 된장국에 끓이면 식감과 향과 고소함을 만끽할 수 있다. 넓은 그릇에 자른 봄동과 겉절이 양념을 넣고 살살 버무린 후 참기름과 깨소금을 살살 뿌려주면 그 자체로 고소함의 천국이다.
잊지 않았겠지. 봄동을 다듬기 전에 밥을 안쳐 놓았어야 했음을. 조리용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봄동 겉절이를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눈을 감은채 우물거리며 그 봄의 맛을 음미할라치면 옆에서 당신의 쿠쿠나 쿠첸이 슈익~소리를 내며 당신을 채근하는 것이다.
봄동은 넓게 퍼져 잎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겨울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바깥의 초록 큰 잎부터 안쪽의 여린 노랑 잎까지 화려하지 않은 그라데이션이 예쁘다. 한뿌리에서 났지만 잎마다 또렷하고, 잎마다 강인하고, 잎마다 쓰임새가 아름답다.
봄이면 마음이 어지럽고는 한다. 가을 혹은 겨울에 느끼는 공허함이나 상실, 또는 휴식감의 교차와는 다른, 막연하거나 또렷한 기대의 마음과 새로운 출발을 나에게 책임지워야 하는 루틴이 둔중한 무게를 갖는다. 게다가 그 무엇인가의 계획이 초장부터 어그러지기라도 한다면.
봄동을 먹으며 기운을 내본다. 밥심을 돋워주는 맛있는 음식으로서 몸의 양분을 챙기고, 엄동을 이겨낸 늠름한 이파리에서 용기 비슷한 마음의 힘도 챙겨본다. 올봄, 녹록지 않다. 봄동의 이파리들처럼 마주치는 모든 일들을, 헤쳐나가는 모든 순간을 하나하나 '살아있네~' 감탄하며 엮어내 보련다.
https://youtu.be/Vd6Kr_ZGQ0s?si=5y9ITZwMjXWTjE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