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강문해변 앞에 수제 햄버거집 'Cafe, Paul & Mary' 가 있다.
나는 지난 십 년 동안 이 집 햄버거를 세 차례나 먹어보려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정확히는 실패라기보다는 그냥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못 들어간 것이다.
steemit 사이트에서. 고맙습니다~ 왜냐고? 그런데 이 집이 참 묘한 게, 나 같은 사람이 혼자 들어가기엔 뭔가 부담스러운 거다. 글쎄, 일단 나는 생긴 게 완전 아저씨고. 그런데 이 집은 뭔가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 같고. 인테리어도 포크풍으로 깔끔하게 되어 있고, 창가에서 바다도 보이고. 그런 곳에 나 같은 아저씨가 혼자 들어가면 뭔가 어색하고 민폐일 것 같은 거다. 모든 이가 나만 쳐다볼 것만 같고. 그래서 매번 앞에서만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사실 겉으로는 ‘아, 나는 혼자 노는 게 좋아’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다. 남들이 나를 쳐다볼까 봐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놈이라니까.
아, 십 년이라고 하니까 뭔가 대단한 일처럼 들리지만 그런 건 아니고. 강릉에 세 번을 왔는데 강문해변에 가면 저 집이 보이는 거다. 'Cafe, Paul & Mary'라는 간판이 기억에 남았고 수제 버거 카페라는 점도 신선했다. 아마도 그 옛날 포크 그룹 Peter, Paul & Mary에서 따온 이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랑 포크 풍의 인테리어를 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주에 강릉에 출장을 갔는데, 일행 한 분과 같이 동행했다. 일 끝나고 안목해변에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해서 갔다가, 내가 ‘아, 저기 햄버거집이 하나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라고 했다. 물론 십 년 동안 못 들어갔다는 얘기는 안 했지. 창피하잖아.
안목해변에서 솔숲길을 한 시간 정도 걸어서 도착했는데, 일행분이 ‘와, 여기 분위기 좋네요’라고 하더라. 그래, 드디어 들어간다. 십 년 만에. 들어가니까 진짜 좋더라. 창 너머로 강문해변이 쫙 펼쳐져 있고, 자연광이 들어와서 분위기가 아늑하고. 테이블에 앉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다.
햄버거를 시켰다. 수제 햄버거라고 하는데, 패티가 두툼하고 재료도 신선하다. 일반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육즙이 입안에 가득 차는 게 정말 맛있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밥이랑 국물이랑 김치가 갖춰져야 한끼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아저씨라 햄버거는 아무래도 간식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청량음료를 곁들였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맛은 정말 환상이었다.
일행분께 고마웠다. 소원성취까지는 아니지만, 그래, 소원성취라 하지 뭐.
그분이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물어보길래, ‘아, 그냥 지나다니다가 봤지요’라고 대답했다. 십 년 동안 못 들어간 얘기는 끝내 하지 못했다. 좀 창피하잖아.
밖을 보니까 경포천 옆에 벤치가 줄지어 있고, 그곳에서 햄버거 들고 앉아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 때마침 작은 고깃배에서 갓 잡아온 문어를 그물망에 담아 연신 근처 식당으로 옮기는 어부의 바쁜 웃음도 보았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먹는 햄버거라니, 정말 운치 있지 않나.
햄버거를 먹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혼자 해낸 일이 뭐가 있나 싶어서. 생각해보니까 진짜 없다. 누군가와 함께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누군가로부터 자극받아서 한 일들뿐이다. 심지어 누군가와 갈등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에서도 결국은 상대방의 존재가 나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 되었다.
나는 늘 ‘혼자 노는 게 좋다’고 말해왔지만, 그게 사실은 용기 없음과 부끄러움과 소심함, 남의 눈치와 평가에 전전긍긍하는 못남을 멋있는 척 숨기려는 핑계였던 것 같다. 진짜 본성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적어도 그 근처에라도 있음으로서 보호받고 동료로 간주되고 싶어 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나를 마치 계란판처럼 잘 감싸주고 보호해준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항상 신세만 졌는데,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든든한 힘이 되어준 적이 있을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있을까?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은 재가 되었지만 한때는 누군가에게 절절히 뜨거웠던 존재. 나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십 년 만에 들어간 햄버거집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인생 참 묘하다. 햄버거 하나로 별 생각을 다 해본다. 물론 일행분께는 이런 얘기 안 했다. 괜히 철학자 행세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냥 ‘맛있네요’라고만 했다. 속으로는 '십 년 만에 드디어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고마웠지만, 고맙다는 말은 안 했다. 좀 창피하니까.
다음에 강릉에 다시 오면 혼자서도 들어갈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에 한 번 들어가 봤으니까, 뭔가 문턱이 낮아진 것 같긴 하다. 나이 들수록 이런 소소한 성취가 더 소중해진다.
강문해변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소박한 인생 이야기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탄재처럼 말이다. 작고 예쁜 햄버거집에서의 하루였다.
https://youtu.be/QlqvVzY7eiE?si=lR8haL9xxzv52X9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