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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痕28. “축복합니다.”(들국화. 1985)

(50년사 원고를 마치고, 거의)

by 이치혜


책을 썼다.

‘썼다’라는 표현이 적확한가? ‘엮었다’라고 할까. 이천 장이 넘는 자료를 보고, 건조한 활자에 드러나 있지 않은 행간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 내용을 엮어 썼으니 ‘썼다’가 무방하겠다.

교회 방송실의 좁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모니터에는 송 집사님께서 보내 주신, 오늘 갓 뽑은 5차 편집본의 한글 파일이 떠 있다. 내 손은 마우스 위에서 멈춰 있다. 스크롤을 내리며 천천히 읽는다. 몇 달 전부터 이 순간이 올 거라고 주문처럼 기도했다. 어느새 마침표가, 진짜 마침표가 앞에 있다.

허허로운 마음이다. 동시에 다급한 마음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좀 더 보강해야 한다, 저 문장은 너무 길지 않나, 이 페이지는 다시 의논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험쇄를 찍으며 보는 마지막 점검이다. 최종 편집회의에서 걸러내야 할 수많은 숨겨진 것이 어디에 그렇게들 숨어 있었는지. 한 글자, 한 문장이라도 더 낫게, 더 정확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강박이 목을 조른다.


내가 속한 교회 단체의 50년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는 큰 역사였다. 아홉 명의 편집위원이 힘을 합쳐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고 5년여를 이끌어왔다. 올해 9월의 종점을 바라보며 그중 세 명이 구체적인 실무를 진행다. 내가 단체의 전체적인 소사와 각 회기의 간추린 역사, 여러 사업과 행사의 역사와 내용을 설명하는 원고를 맡았다. 송 집사님은 방대한 사료를 취합하고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하였다. 권 집사님은 산하 단체의 역사와 자료를 집대성하고 책의 틀을 갖추도록 하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늦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서기 일쑤였다. 때로는 한 문단을 쓰기 위해 종일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써지지 않는 날에는 빈 문서 앞에서 한숨만 쉬었다.

두 분은 더욱 고통스러웠을 터였다. 자료는 스스로 이야기하거나 줄을 맞춰 정렬해 주지 않는다. 책상과 책꽂이를 가득 채운 서류와 자료 더미 앞에서 망연자실했을 시간이 그 얼마일까. 짧은 편집후기에 내 나름의 극진한 감사를 적었다.


"Special thanks to 宋 and 權. Without them, the harvest would still be lying forgotten in the fields."


그러나 문득문득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이 문장으로 정리되는 순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정확한 형태로 구현되는 순간들. 수십 년 전에 까마득한 선배님들이 했던 기도와 활동 그때의 자취가 오늘 분명한 문양으로 되살아날 때, 그럴 때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가 다시 생각나곤 했다.

원고를 쓰고 편집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글쓰기와 편집은 전혀 다른 종류의 작업이라는 것. 글을 쓸 때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쁨이 있다면, 편집할 때는 기존의 것을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다듬는 즐거움이 있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덜어내고, 문장의 리듬을 맞추고, 전체적인 흐름을 점검하는 일. 언젠가 유튜브에서 보았던 조각과 소조의 탄성을 이끌어 내는 과정, 그것과 닮았다. 부분을 깎아내어 완성에 가까워지는 경이.

모니터 속 원고를 다시 본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제는 천천히, 찬찬히 볼 수 있다. 이 책은 완성이 아닌, 아름다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 소중하므로.

후기를 적었다.


“누군가 제게 ‘편집과 집필 사례비로 100억 원을 드릴 테니 『100년사』를 편찬합시다.’라고 제안한다면 단호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사례는 이 사역의 귀중함에 비추어 합당한 액수이지만, 제가 앞으로 50년을 더 살 자신이 없습니다. ^^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영광입니다.“

모레 최종 편집회의를 거쳐 마지막 확인을 한다. 그 이후에 며칠간 각자 눈여겨보고 발견해낸 부분을 다듬고 고치고 깎아내고 나면, 마침내 천백 페이지의 책이 세상에 나온다. 오는 9월 20일에 발간 감사예배를 드리면 이 감사하고도, 감격스럽고도, 무겁고도, 날이 서 힘든 여정이 끝난다.


음악을 틀었다. “들국화” 1집이다. 1985년 작품이니 벌써 40년이 되었다. 주옥같은 명곡들이 가득한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반으로 꼽힌다. 나에게는 그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희로애락의 순간마다 한 번씩 기댈 수 있게 해준 앨범이다.

"축복합니다"가 흘러나온다.

손진태의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선율이 시작되고, 멤버들이 한 소절씩 번갈아 가며 부르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름답고 진실한 축복의 노래. 생일이나 기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즐겨 듣고, 부르곤 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눈이 촉촉해진담. 큰 숙제를 마친 나를 축복해 주는 것인가.


“오늘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당신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그동안 지나온 수많은 일들이 하나둘 눈앞을 스쳐가는데

때로는 기쁨에 때로는 슬픔에 울음과 웃음으로 지나온 날들

이제는 모두가 지나버린 일들 우리에겐 앞으로의 밝은 날들뿐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에는 웃으며 서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다짐하며 오늘의 영광을 당신께 이 노래로 드립니다.”

9월 20일이다. 50년사 발간 감사예배를 마치고 저녁 6시에 연세대학교 대강당으로 간다. "들국화, 전인권 - 마지막 울림 40주년 콘서트"를 본다. 40년을 함께 해온 셈이다. 그들의 음악과 함께 늙어온 내가, 그들의 마지막(?) 무대를 보러 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다. 물론 “들국화”의 오리지날 멤버는 아니지만 전인권이니 됐다. 예매해 준 이여, 고맙다.

25010002_p.gif 9월20일, 짠~

이 작업을 마치면 올 겨울 안에 나의 새로운 책을 쓰겠노라 결심했다. 이번 경험이 다음번에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그 결심이 잘 지켜지도록 나를 축복한다. 축복합니다, 라고 중얼거린다. 밤이 깊었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https://youtu.be/HSdZzmwsyJw?si=cPSAREoFFHxOs5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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