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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Feb 10. 2024

歌痕 14. 짬뽕.

I’ve been away too long.(1975)

    짬뽕이 땡겼다.

    종일 속이 쓰리고 굴풋했다. 어제 오랜만에 빈속에 들이켠 소주 6홉이 맹렬히 “해장하라! 해장하라!” 외치는 과격한 시위대가 된 탓이었다. 아침을 챙겨 먹었음에도 속은 달래 지지 않았다. 짬뽕이 땡겼다. 해장도 해장이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에 맛있는 짬뽕 생각이 간절했다. 윤기 있는 붉은 국물에 홍합과 오징어와 저민 돼지고기가 푸짐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끈한 비주얼을 떠올리며 군침이 돌았다.

    영등포에서 미팅을 마친 늦은 오후에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없었다. 김안과 일대를 뱅뱅 돌았지만 짬뽕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몇 군데는 문을 닫았고, 한 군데는 브레이킹 타임, 다른 한 곳의 중국음식점은 마라탕 전문이었다. 궁하면 간절함이 더욱 증폭되는 법. 강렬하나 사납지 않은, 짜고 맵고 단 국물 한 숟갈이 입안에 가득 향을 채운 후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짜릿한 전율이 낱낱이 선명했다. 네ㅇ버 앱을 열고 검색했지만 별무소득. 아! 어찌 이런 일이. 서울의 주요 상권 중 하나인 영등포에서 중국음식점을 찾을 수 없다니.

    낙심한 채 둘러보는 내 눈앞에 ‘착한 김밥만이 갈 수 있다는’ 분식점이 보였다. 유리창에 ‘짬뽕라면’ 메뉴가 쓰여있었다. 냉큼 들어가서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허전했다. ‘사이비’,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다. 무알콜 맥주의 효모 냄새가 진짜 맥주의 그것을 대체하지 못하듯.

    아홉 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일을 마저 보고 지하철을 내리니 중국음식점 간판이 보였다. 오호! 하루의 엔딩을 마침내 짬뽕과 할 수 있도다. 홀에는 드문드문 손님이 앉아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직원이 반갑게 외쳤다. “홀 마감 끝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중국 음식은 꽤 고급의 별미였기에 자주 먹을 기회가 없었다. 드물게 기회가 오면 짜장면을 시켰다. 본디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 그렇지만 ‘피나는’ 수련을 거친 지금은 “맵질이”의 수준은 넘어섰다 – 달고 짭조름한 마성의 고소함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넓고 깊은 그릇의 바닥이 깨끗해질 정도로 싹싹 먹곤 했다.

    아버지는 늘 짬뽕이었다. 와이셔츠에 국물이 튀지 않게끔 식당에 앞치마를 부탁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얼큰하고 맛깔나게 드셨다. 고량주 반 도꾸리의 반주는 남자 어른의 멋스러움이었고, 남보다 넓은 이마에 맺힌 땀을 냅킨으로 닦아내는 모습에서 기름진 포만감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짬뽕 국물을 한 숟가락씩 맛볼 때가 있었는데 그 맵싸한 맛이 너무 강해서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내 친구가 처음으로 짬뽕을 ‘제대로’ 먹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봄의 고등학교 동문회에서였다고 한다. 아니다. 그것은 결코 ‘제대로’인 짬뽕이 아니었다.

   그의 학교 앞에 상당히 큰 규모의 중국음식점이 세 곳 있었다. 안동장, 영합식당, 홍보석. 매주 목요일 또는 금요일 저녁이면 이 식당은 고등학교 동문회나 향우회의  학생 손님으로 가득 찼다. 그의 첫 동문회는 홍보석의 기다란 방에서 열렸다. 방에 들어가니 식탁이 예닐곱 개가량 이어져 놓였고 선배, 동기들 십여 명이 앉아있었다. 맨 끝자리에 최고참급 선배들이 앉았다. 각 식탁에는 탕수육이 담긴 커다란 접시와 술병 그리고 샛노란색 단무지와 양파, 춘장 그릇 옆에 붉은색이 선연한 짬뽕 국물이 그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국물과 양파와 양배추뿐이었던.

    기수별로 교련 시간에 배운 군대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복학생 선배들은 그의 동기들이 군기와 패기가 빠졌다며 몇 차례나 거듭 시켰다. 자기소개를 마친 그의 동기들은 고참 선배들 앞으로 가서 두 손으로 소주를 ‘하사’ 받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어 감읍한 듯 원 샷을 하고 ‘공손히’ 그들의 잔을 ‘채워 드렸다’. 그다음에는 바로 한 기수 선배들이 그의 동기들 잔에 ‘동해백주’(지금은 단종된 지 오래인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기는’ 값싼 고량주이다)를 채워 ‘원샷’을 시켰다. 40도가 훨씬 넘는 독주에 속을 태우고 얼굴을 찡그린 그들에게 선배들은 안주를 허락했다, 군대식으로, 먹는다 실시! 단무지와 짬뽕 국물이었다.

    이어진 순서로 교가를 부르고, 기수별로 장기 자랑을 하고, 군기와 패기가 빠졌으므로 식탁 위에 ‘대가리 박아’를 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건배와 선배들의 ‘훈화’를 리필한 짬뽕 국물에 섞어 먹었다. 징글징글했다. 끔찍한 자리였다. 다음날 아침에 트림을 하던 그는 시큰하고 쓴 위액과 맵고 짠 짬뽕 국물이 식도를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교련 수업이 지긋지긋하지도 않았나? 군대 생활이 그리도 재미있었나? 단지 같은 고등학교를 다른 시기에 다녔다는 이유 하나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선후배로 엮여 어설픈 위계를 형성하는 모습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뒤 한 차례 더 참석했다가 질려버린 그는 고등학교 동문회와는 빠이빠이하고 개별적인 관계만 맺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리도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모이면 어찌 그렇게 돌변하는 것인지, 참. 동해백주 포스터만 봐도 속이 메슥거렸고, 짬뽕은 싫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술을 접하며 짬뽕을 자주 먹게 되었다. 안주로도 먹고, 선주후면(先酒後麵)을 ‘술 먹은 후에는 면으로 해장해야 한다’고 견강부회로 낄낄대며 먹었다. 배고프고 가난한 청춘에게 짬뽕은 훌륭한 안주이자 성찬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맛이 강했기에 결코 혼자서는 찾아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4학년 8월의 어느 한낮, 친구가 소주 한잔하자고 왔다. 연신 배어나는 땀이 곧바로 증발할 것만 같은, 그야말로 염천의 오후에 영합식당에 들어갔다. 에어컨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텅 빈 홀에는 선풍기가 좌우로 더운 바람만 토해냈다. 양장피 하나와 서비스 짬뽕 국물을 시키고 소주병을 땄다. 양장피가 나오기도 전에 짬뽕 국물과 단무지를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이 비워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을 추가로 부탁하고 다시 한 병을 비우니 양장피가 나왔다.

   친구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소주 한잔을 마시고 양파와 양배추만이 주인공인 뜨거운 짬뽕 국물을 떠먹었다. 한 잔, 또 한 잔을 마시고 양장피를 젓가락으로 뒤적뒤적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짬뽕 국물을 떠먹었다.

    다시 한 병을 주문할 때 나는 제지했다. 이미 우리의 주량은 가득 찼고, 거의 빈속에 소주와 짬뽕 국물만 부어 넣는 형국이었다. 말리는 내게 오늘은 마시고 싶다며 친구는 소주를 시켰다. 두어 잔을 더 마시고 친구는 벌게진 얼굴을 처박은 채 말했다.      

    오늘 나 헤어졌다.

    ...

    믿어지지가 않는다.

    ...

    보고 싶다. 그런데 K가 뿜어낸 쌩한 찬바람이 지금도 생생하다.

    ...

    ...

    그런데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이라니!)

    ...

    한 잔을 마시고 친구는 고개를 들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겠지만 친구의 얼굴은 물기와 취기로 붉게 번들거렸다.

    선배랑 잤대.     


    우리는 소주를 마시고 짬뽕 국물을 퍼먹었다. 이렇게 더운 날엔, 속에서 천불이 화르륵 화르륵하는 날엔 맵고 강한 짬뽕 국물이 제격이었다. 청춘의 아픔과 안타까움과 울분이 국물의 매운맛이 밀어내는 땀에 배어 마음 밖으로, 몸 밖으로 같이 밀려날 것이었다. 그것이 눈물이어도 좋았고 눈물과 땀이 ‘짬뽕된 것’이어도 상관없었다. 짬뽕 국물은 시원하고 후련하고 달았고 양장피는 그대로 남았다. 친구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좋아했다는 노래를 불렀다.  “I’ve been away too long.”  울었다.

  



    커피의 쓴맛이 정겨워질 때, 소주가 이른바 ‘천사가 흘린 악마의 눈물’이든 ‘악마가 흘린 천사의 눈물’이든 상관없이 그 양면성이 정겨워질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감히 하나를 더 보태 본다. 짬뽕 한 그릇의 오징어와 돼지고기와 갖은 채소와 홍합과 면을 한입 가득 후루룩 음미하고,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찰박찰박한 붉은 국물을 바닥이 보이도록 마셔보라.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을 때 '후아~' 하며 달고 시원함을 느낀다면 드디어 어른에 이르렀다 할 수 있으리라.

    

    중국음식점을 예전만큼 쉬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경기가 안 좋은 탓도 있고, 물가가 오르는 만큼 서민 음식의 대표 메뉴라고 여겨지는 짜장면, 짬뽕의 가격을 인상하기가 어려운 경영난도 한 원인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배달 위주로 운영형태를 변경한 곳이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음식점 입장에서 짬뽕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짬뽕의 주재료인 온갖 채소와 오징어 가격이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리거나 질과 양의 푸짐함을 줄일 수밖에 없으니 짬뽕 애호가들은 다소 서럽다. 짜장 or 짬뽕? 이 영원한 명제 앞에 짬뽕 메뉴를 없애는 것은 어불성설일 테니.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 먹는다는 이 간단하다면 간단한 행위 뒤에 거대한 경제와 경영과 수요와 공급의 이론이 작동한다는 사실에 새삼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 어느 일이 그에 못 미치는 것이 있겠는가만.


덧붙임: 늘 그렇듯이 이 글의 에피소드는 죽마고우의 것이다.

           나는 결코 "내 친구가~"의 뒤에 숨는 스타일이 아니다. 진짜다.


https://youtu.be/TfvAStsJBEM?si=rAqIp_W4BxvaMJ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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