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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09. 2019

이것만큼은 치워버릴 수 없으니까

리스본 여행 에세이 #5 코메르시우 광장




코메르시우 광장… 코메르시우 광장…

계획표를 찢어버려 텅 빈 여행 노트에 하릴없이 광장의 이름을 끄적인다. 그사이 주문한 사그레스 맥주 한 잔은 이미 동이 나버렸다. 지체없이 한 잔을 더 주문한다. 내친김에 가벼운 디저트도 함께 주문해본다. 맥주와 어울릴까? 하는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맞지 않으면 빨리 먹어치우고 다른 것을 주문하면 그만이니까. 

갑자기 부자 여행객이라도 된 듯 호기를 부리는 이유 중 절반은 여행 노트에 끄적인 ‘코메르시우’ 다섯 글자에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의 이름을 옮겨보면 ‘상업 광장’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전에 불렸던 이름은 테헤이루 두 파수 광장이었는데 이는 ‘왕궁 뜰’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무너진 왕궁의 뜰 위로 상업의 광장이 세워진 것이다. 이곳을 비롯해 리스본이 대지진으로 산산이 무너졌을 때, 다시 리스본을 세운 이들은 상인이었다. 대지진 이전 리스본의 중심에 서 있던 귀족들은 리스본 재건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재건의 책임을 맡은 폼발 후작의 계획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다시 지어질 집은 엄격한 규제와 통일성 아래 지어져야 하며, 그것은 곧 상인의 집과 귀족인 자신의 집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 귀족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문제는 폐허만 가득한 리스본 땅의 대부분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귀족들은 이미 무너진 세상의 질서를 부여잡으며 고집을 부렸다. 그들 때문에 리스본 재건의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를 해결한 이들은 누구일까? 



“주문 하신 슈페르복 한 잔 나왔습니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성실히 맥주를 서빙해주는 상인들. 바로 그들이었다. 

귀족들은 그토록 무시했던 상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부동산 보상금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마음껏 화려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리스본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왕궁은 말 그대로 뜰만 남았고 그 위로 상인들의 광장이 세워졌다. 그 순간, 리스본은 왕과 귀족의 나라에서 상인의 나라로 바뀌었다. 

나는 지금 그렇게 세워진 상인의 나라 초입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영수증은 쌓이고 지갑은 얇아진다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코메르시우의 상인들은 맥주를 사면 영수증에 적히지 않은 근사한 메뉴, 테주강의 절경을 덤으로 선물해주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갑 사정을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사실 유럽에서 이곳보다 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도 흔치 않으니까)


‘ㄷ’자 건축물로 싸여있는 코메르시우 광장의 마지막 한 면은 테주강에 양보되어 있다. 일찍이 테주강을 막는 이는 없었다. 왕도, 귀족도, 상인도 그것만은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 양보의 선물을 이방인인 내가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그것도 매일 같이 이 선물을 받아 본 이가 있다. 바로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다. 그는 이곳에 위치한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그 덕에 매일 코메르시우 광장과 테주강을 즐길 수있었다. 그리고 허기가 지거나 시를 쓸 테이블이 필요할때면 한 식당을 찾았는데, 그 식당은 페소아가 떠난 지금도 여전히 음식과 맥주, 그리고 테주강을 팔고 있다. 


‘다 아르카다 식당(Martinho da Arcada)’ 이곳은 광장의 북동쪽에 있다. 혹시나 까먹을까 가게 이름을 되뇔 필요는 없다. 페소아가 코메르시우 광장과 테주강을 자랑스러워했듯, 이 식당 역시 페소아를 자랑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게는 입구에서부터 페소아의 사진과 그림이 남겨져있다. 본인들의 메뉴판보다 더 크게 말이다. 말하자면 리스본이 테주강에 한 면을 양보했듯 그들 역시 페소아에 가게의 한 면을 양보한 셈이다.



지갑 속 지폐가 양보한 자리에 영수증을 채워 넣는다. 광장과 테주강의 가격은 적혀 있지 않다. 어쩐지 이득을 본 기분이다. 이왕 공짜인 것 조금 더 광장을 둘러본다. 리스본의 노천카페는 이방인에게 그 정도의 여유는 넉넉히 허락해주었다. 드넓은 강의 물결은 여전했다. 다만 볕의 방향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정오에서 두 시만큼 서쪽으로 조금 기운 정도의. 그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그럼에도 테주강은 여전했다. 여전히 품이 넓었다. 있는 힘껏 높이 뛰어 그 품에 안긴다면 온몸을 폭신하게 받아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될 만큼 따뜻해 보였다. 

그 따뜻함은 광장에도 있었다. 적당히 데워져 반짝이는 바닥과 그 위에 서서 어쩔 줄 몰라 감탄사를 내뱉는 이방인들. 그리고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듯 가만히 내려다보는 주제 1세와 아치 위의 영광, 재능 그리고 용기. 그들도 여전했다. 


지금 내가 보는 이 여전한 장면을 100년 전 페소아도 보았다. 

그는 알았을 것이다. 

100년이 지나도 리스본의 오후 두 시는 이 풍경을 치워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남겼을 것이다. 


“이 광장은 제일 까다로운 종류의 이방인에게도상당히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곳이다.”

- <페소아의 리스본> 중에서


100년 후, 이곳에 도착할 나를 위한 한 문장을.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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