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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04. 2019

찢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리스본 여행 에세이 #4. 아우구스타 거리



잠시 호시우 광장의 카페에 들른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비카(bica)'라고 부르는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위해서다. 리스본 사람들은 카페 바에 서서 비카를 마시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아직 관광 지도를 손에 꼭 쥔 나에게는 무리다. 게다가 지금은 몰스킨 트레블 노트를 펼쳐 계획을 정리해야 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한탄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리스본에 오면 가야 할 곳, 그것을 위한 최적의 루트 설정. 놓쳐선 안 되는 맛집과 지나치면 안 될 특별한 가게. 그 모든 것을 노트에 적는다. 그다음 해야 할 일은 지도를 펼치는 것이다. 그리고 루트에 맞는 최적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유럽의 거리를 걸을 때는 거리의 이름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호시우 광장에서 테주강을 향해 뻗어있는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 같은 곳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우구스타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을 딴 거리다. 왜 리스본에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이 길의 끝에 닿을 때까지 답을 다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 거리가 로마 황제의 이름이 담긴 거리라는 것 정도만 알아두면 충분하다.


이 거리는 직선으로 쭉 뻗어 있고 너비도 일정하다. 그렇기에 이곳을 걷다 보면 내가 지금 '언덕과 골목'의 도시 리스본에 와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아무튼, 넓게 잘 닦인 거리를 따라 자동차는 있는 힘껏 속도를 올리고 사람들은 시선을 고정한 채 한곳을 향해 걷는다. 거리 양쪽으로 리스본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상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 이 거리를 걷는 단 하나의 목적. 그것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개선문을 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노트에 적어둔 첫 번째 장소.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 가장 완벽한 루트를 생각했다. 몇 가지 후보가 있었다. 금의 길이라 불리는 오루 거리(Rua Ouro), 은의 길이라 불리는 프라타 거리(Rua da Prata) 그리고 지금 걷고 있는 아우구스타 거리까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은 서울에서만 통용되어야 했기에 선택에 있어 신중을 가한다. 만약 호시우 광장에서 출발했다면 가장 좋은 길은 오루 거리다. 하지만 이 길은 내려갈 때 사용하기엔 아까운 거리다. 이유는 까먹었지만, 여행 노트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이제 남은 것은 프라타 거리와 아우구스타 거리다. 프라타 거리를 선택한 이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그들의 여행 노트를 보지 않아도 맞출 수 있다. 바로 상 도밍구스 성당이다. 호시우 광장 동쪽에 자리 잡은 이 유서 깊은 성당을 본 이방인들은 그 거리를 따라 그대로 내려와 피게이라 광장을 즐겼을 테고 별다른 고민 없이 프라타 거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은 리스본을 즐기는 아주 좋은 루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도밍구스 성당은 리스본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역사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고, 지금 가려는 목적지는 그런 아픔을 겪은 이들이 다시 두 발로 선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아우구스타 거리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거리를 걸어야만 황제처럼 단 한 번의 곁눈질도 없이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저 '승리의 아치'를 말이다.


아우구스타 거리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승리의 아치는 리스본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방인의 가슴마저 당당하게 펴준다. 아치의 꼭대기에는 조각가 카멜스의 작품이 세워져 있는데 중앙에 있는 이는 영광이다. 그는 양손에 승리의 관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관을 재능과 용기에 씌워주고 있다. 아치 아래로는 두꺼운 그늘이 이방인의 입성을 환영하는데 이 그늘에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유는 몇 걸음을 채 떼지 않은 지금, 알 수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

아치 너머로 펼쳐진 이 드넓은 광장에 들어서면 감탄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다. 아치의 그늘. 그것을 통과하면 리스본의 태양이 광장의 칼사다 포르투게자, 그리고 테주강을 내리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광장의 드넓은 바닥 장식은 몇 사람이 다듬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다듬어져 빛을 반사하고 있고, 지도 없이 마주한다면 백이면 백 모두 바다라고 오해할 만큼 드넓은 테주강의 강물 또한 빛을 반사한다. 그렇게 반사된 빛은 아치를 중심으로 'ㄷ'자로 펼쳐진 노란 외벽 건물들 사이에 모이고 코메르시우 광장은 매일 새롭게 완성된다.


광장의 햇빛 아래 몰스킨 트레블 노트를 다시 연다. 노트에는 '코메르시우 광장' 일곱 글자만 남겨져 있다. 노트가 자유시간을 준 것이었다. 이제 광장 안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노트에 적어둔 광장 관광 시간은 1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 우선 광장의 중앙으로 향한다. 그곳에 주제 1세 동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그는 이곳에 서 있을 자격이 있다. 그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나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이 어찌나 지독했는지 그는 지진이 끝난 후로도 리스본에 쉬이 돌아오지 못하고 근교의 궁궐에서 살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가 이토록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이 광장에 서 있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부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당시 리스본 재건을 맡은 폼발 후작. 주제 1세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고 그만큼의 권력을 위임했다. 그 믿음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서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폼발 후작은 다섯 가지 도시 재건 아이디어 중 무너진 건축물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 도시를 그려 만드는 제안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곳으로 오기까지 만났던 넓은 도로와 직선으로 뻗은 길, 그리고 계획적으로 통일된 건물들이다. 그 길을 따라 포르투갈과 유럽의 새로운 시대도 함께 아치를 넘었다.


리스본이 연 새로운 시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방인들은 동상 앞으로 펼쳐진 테주강 부두에 정박했다. 바다처럼 넓은 테주강도 테주강이지만, 배에서 내려 드넓은 광장을 마주하고 그 앞으로 웅장한 아치의 개선문을 지켜본 이방인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했을지는 몰라도 입은 똑같이 벌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부두 앞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부두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아선 안 되었다. 이곳을 찾은 당시 사람들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부두 가장 가까이에 서야 한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뒤돌아선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는 승리자가 된다.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승리자건 뭐건 간에 이제 이곳을 떠나 다른 목적지를 향해야 한다는 알람이었다. 여전히 유효한 개선문 앞 승리자의 감정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이 알람을 무시하면 이후의 여행 계획이 엉망이 될 것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여행 노트 귀퉁이에 적어 놓고 스케줄표대로 움직이는 것이 정답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다음 목적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행 노트를 편다.


"주문하신 사그레스 한 잔 나왔습니다."

"오브리가도(Obrigado),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한데 이것 좀 버려 주시겠어요?"


친절한 카페 점원의 눈을 마주한 채 미소 짓는다.

그리고 부욱.

정갈하게 여행 스케줄이 적힌 노트를 찢는다.

그러면 그만이다.

승리자들은 가끔 그 기분을 간직하기 위해 잘 정돈된 어떤 것을 무너뜨리곤 한다.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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