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슬픈 책 읽기 Ep.2
❝비틀스는 엘릭너 릭비를 비롯해 그 당시의 여러 인물들을 찬양한 것처럼 목욕탕에서의 사랑을 찬미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연인들⟫ 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 중에서)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소설 [그 시절의 연인들]은 중년의 남자 노먼 브릿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노먼은 여행사에서 일하고 아내 힐다에게 매일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죠. 그런 노먼의 눈에 아름답기만한 어떤 여성이 들어오는데요. 그녀는 약국에서 일하는 마리였습니다. 노먼과 나이차가 꽤 나는 마리는 나이든 남성을 좋아하는 취향이어서인지 노먼과 사랑에 빠집니다.
처음엔 여행에 대한 조언을 얻는 것으로 시작해 매일 점심의 만남, 그리고 급기야 호텔 목욕탕에서의 정사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깊어져만 가죠. 그 시간을 경허맣며 노먼은 현실의 안락함보다 날카롭지만 아름다운 마리와의 관계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르 마음은 결국 현재를 깨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요.
이혼을 알리는 노먼에게 아내 힐다는 비난을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그 분노는 흔히 생각하는 배신 같은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힐다는 그저 현재를 깨버리는 어리석음. 그런 어리석음을 선택한 것이 한심해 보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힐다 의 말에 따르면(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힐다 역시 외도를 밥먹듯이 했으니까 말이죠. 힐다는 아름다움의 허울보다는 그저 평온히 유지되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쪽을 선택하는 것이 덜 어리석다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마성에 넘어간 이들이 늘상 그렇듯, 노먼은 현재를 벗어나 어리석고 아름다운 길을 선택하죠. 문제는 그 선택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노먼과 마리는 금세 지쳐버렸고, 가난을 비롯한 가혹한 현실은 아름다운 옷감으로 둘러도 너무나 잘 비쳤습니다. 결국 노먼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선택인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려 봅니다)
윌리엄 트레버는 이런 노먼과 마리, 그리고 힐다를 '그 시절의 연인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노먼의 어리석음.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과거형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돌아보면, 아니. 돌아봐야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인생의 법칙 처럼 말입니다.
현재는 지루 합니다.
현재는 선물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뜯어 놓은 선물 상자의 널부러진 포장지 같습니다.
하지만 그 포장지를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그리하여 다시 깨끗해진 거실 바닥을 보는 것. 그 바닥에 내 곁의 누군가와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는 것. 그 시덥잖은 행동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라. 윌리엄 트레버는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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