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베야가 물었다.
"그냥, 재밌으라고. 먼 길 가는데 유흥은 필수지."
짓은 예의 그 장난 스러운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래서 탈리아에 대해서는 들었어?"
짓은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진지한 표정이었다. 호롱불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몰랐다.
"이쯤이려나."
두 사람은 가게를 나서 한참을 걷고 나서야 그랜드 바자르의 벽을 마주했다. 벽은 낮에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높고 단단했다. 문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았다. 짓은 호롱을 들었다. 그리고 벽을 짚어가며 천천히 걸었다.
"여기에 정말 닫힌 문이 있을까?"
베야는 호흡마저 조금씩 가빠지는 것 같았다.
"나를 믿어봐. 이 냄새를 따라가면 백발백중이니까."
"냄새?"
그제야 베야는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닫힌 문이 열릴 때면 반드시 이 향이 나거든. 이 향만 따라가면 반드시 나와. '닫힌 문'이.
베야는 다시 한 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무 향도 안나는걸?"
짓은 의아한 표정으로 베야를 바라봤다.
"이 진한 향이 안난단 말이야? 너 어디서 코라도 부딪히고 다니냐?"
짓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베야는 향을 맡을 수 없었다. 키아네 향신료 가게를 지날때면 코를 찌르는 향을 맡을 수 있었던 걸 생각한다면, 베야의 코가 잘 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향은 어른에게만 허락된 향일지 몰랐다. 아이에게만 허락된 빛이 있는 것처럼.
"넌 정말 아무 쓸모가 없구나?"
짓은 승리했다는 표정으로 베야를 놀렸다. 그런 짓을 무시한 채, 베야가 말했다.
"그럼 호롱은 필요 없던 거 아닌가?"
짓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향은 너무 넓어서 정확한 곳을 알려주지 않아. 게다가 이 향을 맡다보면 왜인지 모르게 두통이 생긴단 말이야. 너무 오래 맡지는 말아야 해. 넌 맡을 수도 없다곤 하지만 코로는 분명 들어갈테니 호흡을 줄여. 조건이 참 골 아프지?"
길을 알려면 향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향을 오래 맡으면 정신을 잃을지 모른다.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짓은 천천히 숨을 쉬며 향을따라 벽을 더듬어 나갔다. 그러다보니 속도가 이전보다 더뎌졌다. 다행히 방향이 틀리지 않았는지 향은 점점 진해졌다.
"이쯤일까."
짓은 호롱을 들어 벽 이곳 저곳을 비추었다. 그 어디에도 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조금 더 걸었다. 짓은 볼썽사납게 점프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짓의 키가 크다한들 벽보다 높을 수는 없었다.
"할배 호롱이라 그런가? 영 신통찮네. 내걸로 돌아다닐 땐 한 번에 찾았는데."
큰 소리친 게 민망했는지 짓은 딴 소리를 했다. 그때였다. 호롱이 크게 흔들렸다.
"바람!"
짓은 한 손으로 호롱을 다른 한 손으로 베야를 감싼 채 주저 앉았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모래가 사정없이 날렸다.
"어떻게 된 거지? ...호롱이?"
한차례 바람이 쓸고 간 뒤, 베야는 호롱을 보며 소리쳤다. 호롱의 불빛이 꺼져버린 것이었다.
"젠장. 이걸로 확실해졌군."
짓은 호롱을 툭툭 털며 말했다.
"뭐가?"
"이 호롱. 가짜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