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03. 2024

【소설】그랜드바자르 #11. 노래

 11. 

 바자르의 경계에는 빈틈이 있었다. 그 틈은 사람 하나가 앉을 정도로 아주 좁았다. 아는 사람들은 그곳을 피맛골이라 불렀고, 모르는 이들을 그곳을 낙오의 절벽이라 불렀다. 그곳에는 바자르에서 밀려난 이들, 부적응자들, 방랑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겨우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그 좁은 빈틈에 열을 지어 살아가고 있었다. 바자르와 바자르를 넘나들며 도둑질을 하는 짓은 그곳을 늘상 지나쳐야 했는데, 그곳에서 어떤 노인 한 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아시크였다. 


 "굴러 들어왔다네. 

 굴러 들어왔다네. 

 알 수 없는 이의 발길질에 

 굴러 들어왔다네.

 멈춰 섰다네. 

 멈춰 섰다네. 

 끝없는 절벽의 어둠 앞에서 

 겨우 멈춰 섰다네. 

 하지만 길 잃은 나는 

 다리 잃은 나는 

 고향 잃은 나는 

 그저 멈춰 있어야 한다네." 


 아시크는 노래했다고 했다. 매일 밤, 붉은 빛이 쏟아지는 그곳에서 끝없이 노래했다고 한다. 그 노래는 너무 서글프고, 또 구슬퍼서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피맛골의 사람들은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면 아시크는 미친 사람처럼 멜로디도, 맥락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피맛골 사람들의 반은 그를 미쳤다 말했고, 반은 낭만적이라 말했다. 

 짓은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들을 뿐이었다. 아시크의 말을. 그 말을 듣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어느 날은 그 어둔 밤에도 빛나는 옷을 입은 이가 길을 잘 못 들었는지 그곳을 지났다고 한다. 빛나는 옷은 가운데 바자르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기에 피맛골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빛나는 옷을 입은 사내는 아시크를 지나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건 마치 탈리아의 말투 같군.” 


 짓은 그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아시크에게 물었다.


 “당신, 탈리아를 알아?”


 아시크는 답하지 않았다. 귀가 먼 사람처럼 그는 말하지 않았다. 짓은 답답함에 귀에 대고 소리를 쳐보기도 했지만 아시크는 꼼짝도 않고 하던 말만 계속 이었다. 그 말은 멈춤이 없었다. 


 “대답 좀 하라고요! 대답 좀!” 


 짓이 성질을 부리자 아시크 곁에 있던 한 사내가 말했다.


 “아시크는 답을 하고 있는 거야. 다만 네가 원하는 답이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지. 시간이 있다면 자리라도 깔고 앉아 있어봐. 혹시 아니? 네가 원하는 답이 금방이라도 나올지. 물론 자리를 깔려면 저기 저 관리자에게 자릿세는 내야 해. 행색을 보아하니 그럴 돈도 없어 보이긴 하다만.” 


 짓은 운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짓의 신이었다. 그것이 짓을 지금껏 살게 했고 그것이 짓을 지금껏 움직이게 했다. 신의 존재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짓의 신은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었는지 그후로 오랫동안 짓은 답을 듣지 못했다. 아시크는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어다. 다만 짓은 한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아시크의 품에 숨어 놀던 소녀는 가느다란 막대로 하루종일 무언가를 그리고 또 지웠다. 짓은 소녀의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워 보였다고 했다. 


 '저게 베야가 말한 글자라는 건가?"' 


 소녀의 행동은 어떤 바자르에서도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마치 이국의 춤처럼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바자르에서는 무언가를 쓰거나 남길 수 없었다. 그 흔한 바위도 돌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모래가 전부였는데 그것은 누군가의 발길질 한 번에 흩어지고 마는 연약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 달에 두 번. 바자르 사람들이 정화의 바람이라 말하는 것이 불면 모래는 어지럽게 뒤섞이고 말았다. 


 그래서 바자르 사람들은 쓰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바자르 사람들은 무엇도 기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자르 사람들은 과거를 잃어버렸다. 


 "거기 꼬맹이, 지금 뭘 쓰고 있는 거니?"


 짓이 물었다. 하지만 소녀는 답이 없었다. 아이는 낯선 이의 목소리가 무서웠는지 아시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아시크의 외투를 커튼 치듯 닫아버렸다. 그러는 중에도 아시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역사가 쉬지 않는 것처럼. 짓은 한참동안 아시크의 말을 들었다. 


  "자유의 날개. 

  그것은 이곳에서만 펄럭일 수 있지.

  바람 없는 곳. 

  그곳의 깃발은 녹은 얼음같지. 

  녹음 얼음처럼 축 늘어져 있지."


 짓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끝을 이 노래로 마쳤다. 


-계속

이전 10화 【소설】그랜드바자르 #10. 공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