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도 몰라."
짓은 베야의 말에 헛웃음이 나는 걸 참지 못했다.
"꿈에서 본 여자가 엄마라고 했다. 그런데 넌 엄마가 뭔지 모른다?"
베야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그럼 알지도 못하는 걸 찾으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대체 왜? 모르는 건 모른 채 살면 그만이잖아?
베야는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무서웠을 뿐이다. '엄마'를 모른다는 것이. 엄마라 부르는 사람은 있는데 엄마가 무엇인지 모르는 게 무서웠다. 모르는 엄마가 꿈에 매일 나타나는 것도, 그런 엄마를 좇아 무의식 중에 거리를 헤매는 것도 무서웠다.
"짓. 내게는 남은 기억이 있어."
베야가 말했다.
"바자르에 들어오기 전에 기억이."
짓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말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짓의 말이 맞았다. 바자르는 모든 물건을 만들지만 어떤 사람도 만들지 못했다. 바자르의 사람들은 이방인이었다. 그들이 바깥 세상을 등진 채 바자르에 들어선 첫날 밤. 그들은 바자르 대여관에서 정화의 잠을 청한다. 그렇게 하룻밤 잠들고 일어나면 과거의 일은 깨끗이 사라진다. 단어도 그날을 기점으로 모두 잃어버린 채, 바자르 사람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베야도 언젠가 람바 할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은 스탄이 처음 가게에 오던 날. 람바 할아버지가 몹시도 취한 날이었다.
"그래서 남은 기억이란 게 뭔데?"
짓이 묻자 베야는 마른 침을 삼켰다.
"... 엄마."
짓은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더니 가슴을 세게 쳤다.
"모른다매. 엄마가 뭔지! 그런데 기억에 있다는 건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 그저 엄마라 말했던 기억이 있고, 꿈 속의 여자는 자신을 엄마라 말했으니까..."
"그 사람이 네 엄마다?"
"응."
"그런데 엄마가 뭔지는 모른다?"
"응."
짓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한 차례 바람이 더 불어왔다.
"오늘은 그날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바람이 들어오는 거야?'
짓은 옷과 머리에 묻은 모래를 털어냈다.
"짓."
"왜? 잠자코 있어봐. 모래 때문에 성가셔 죽겠으니까."
"바람이 분다는 건..."
짓은 모래를 털던 손을 멈추었다.
"문이... 열렸다는 거잖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람이 부는 곳으로 뛰었다. 두 사람 사이로 모래가 비껴 들어왔다. 목이 까끌했다.
"그래. 다시 향이 나기 시작했어. 가까이 있는 거야. 닫힌 문이."
"날 도와주기로 한 거야?"
짓은 얼굴을 찌푸렸다.
"네가 있어야 호롱을 다시 훔치거나 말거나 할 거 아니야. 여기서부터는 외상이야. 잊지 마."
베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 앞으로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 나타났다. 그곳은 벽이되 바람이 흐르는 곳이었다. '닫힌 문' 바로 여기였다.
"호롱이 없으니 진짜 힘드네."
짓이 벽 이곳저곳을 살피며 말했다.
"호롱이 있으면 어떻게 보이는데?"
베야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베야는 짓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호롱은 '닫힌 문'을 보여주는 램프가 아니었던가?
"아니 그게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닫힌 문'같은 건 애초에 없어."
베야는 처음으로 자신이 짓보다 멍청하다는 생각을 했다. 짓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닫힌 문'이 없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베야가 소리치자 짓이 벽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이 벽은 벽이라 생각할때만 벽이라고. 문이라 생각하면 문이 되는 거야. 호롱으로 비추면 전부 알게 돼. 뭐가 벽인지 또 뭐가 문인지."
짓은 말을 끝내자마자 쓰러졌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온 몸을 떨며 그곳에 쓰러졌다.
"짓!"
베야는 짓의 곁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뺨을 때려도 짓은 일어나지 못했다. 이번엔 베야의 차례였다. 베야 역시 짓처럼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베야는 마지막 걸음을 다해 벽으로 손을 뻗었다. 베야의 손이 벽을 지나쳤다.
"뭐야... 정말이잖아?" 베야는 정신을 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