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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18. 2024

【소설】
놀러 오세요, 담담 놀이터에 #2.

커튼 놀이


 4.

 섬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서 택시가 멈췄다.


 "다 왔습니다."


 유연은 두어 번 창문 밖을 돌아보다가 몸을 쑥 내밀어 다시 확인했다. 역시나 다리를 건너지 않은 상태였다. 기사는 그런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웃고만 있었다.


 "기사님, 아직 다리를 건너질 않았는데요...?" "맞아요."


 그게 끝이었다. 기사는 단순히 대답하고는 택시의 시동을 껐다. 유연은 팔을 뻗어 문손잡이 가까이 가져갔다. 하지만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다.


 "아가씨, 이제 보포리 명물을 탈 차례입니다."


 기사는 입이 귀에 걸릴 듯이 웃으며 말했다.


 "명물이라뇨…? 다리만 건너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모르셨어요? 사실 저희 보포리 사람들은 저 다리를 안 써요."


 유연은 택시에서 내려 짐을 챙기는 기사를 보며 물었다.


 "다리를 안 쓴다고요? 왜요?"


 기사는 눈 끝을 살짝 찡그렸다.


 "뭐 일이 좀 있기도 했고…. 그래서 웬만하면 우리는 보트를 타요, 보트. 옛날처럼 말이에요. 말하자면 전통을 지킨달까? 지킬 수밖에 없달까? 뭐 그런 거죠."


 유연의 고개가 갸우뚱 왼쪽으로 쏠렸다. 지금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래 봬도 보트 운전 경력만 십 년이 넘었어요. 무사고. 그러니 걱정 말고 타세요."

 유연은 문에서 손을 떼고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며 말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저는 저 다리를 건너서 마을에 들어갈래요."


 "응?" 기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저 다리가 멋진 건 우리도 알죠. 아는데. 그래도 뭐랄까…. 저건 좀 거시기한데…?" 기사는 조금 답답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전 괜찮아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요."


 덕기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가씨가 그 일을 안다고요?"


 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갑시다. 보포리인지 교월리인지! 어서요."


 유연이 서두르자, 기사는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고 시동을 켜며 말했다.


 "이걸 어쩐다... 노친네한테 또 혼나게 생겼네."


 "노친네요?"


 유연이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아무튼 후회하기 없기에요?"


 유연은 대답 대신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앉았다.


 "그리고 명심해요. 아가씨. 내가 아까 뭐랬지?"


 "네? 말을 워낙 많이 하셔가지고... 그중에서 어떤 거요?"


 기사는 크게 웃다가 정색하고는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안전벨트가 너무 단단히 묶였는지 몇 번이나 몸을 돌리다가 성공했다.


 "아가씨. 내가 아까 뭐랬지?"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는 아까와 달리 낮았다. 유연은 등을 좌석에 바짝 붙여 앉았다.


 "네...?" "보포리는 나무의 허락을 받아야 지날 수 있다고…. 그런데 그 나무란 게 사람 냄새를 그렇게 좋아해."


 "사람 냄새요?"


 "그래, 사람 냄새. 그것도 아주 싱상한. 예를 들면? 바로 당신 같은!"


 유연의 눈이 커졌다. 그런 유연을 보며 기사는 예전 같은 목소리로 크게 웃어댔다. "... 라고~ 보포리 애들은 장난치고 다녀요. 혹시나 이따가 마을에서 애들. 그러니까 특히 셋이 몰려다니는 애들이 있는데. 그 애들 만나면 속지 마세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하나 드린 거야."


 유연은 집을 떠난 지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아무튼, 조언해 줄 것도 다했고…. 이제 진짜 저 다리 건넙니다? 진짜예요?"


 유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잇, 까짓거 그럽시다. 뭐. 사실 아까 한 애들 장난도 마을 사람들이 다리를 이용하지 않아서 생긴 거지 뭐.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안 그래요?"


 유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택시 앞으로 보이는 다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리는 수수한 편이었다. 나무로 만든 다리이기에 더 화려한 장식도 가능했을 테지만 그러질 않았다. 마치 가장 단단한 암석으로 만든 다리처럼 필요한 것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나무로 만들었다는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필요했으리라. 처음 섬에 다리가 생겼을 때. 한 번도 건너지 못한 그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리슬쩍 피어나는 불안감. 그것을 지우기 위해서는 저렇게 단단하고 수수한 다리가 필요했으리라.

 유연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택시는 출발했다. 택시 기사도 오랜만에 다리를 건너서인지, 아니면 더 소개할 무언가가 있어서인지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마치 어린이 보호 구역에 들어온 자동차들처럼. 태깃는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또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유연은 집을 떠나올 때 했던 다짐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다짐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항상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옆에 있다가도 필요할 때가 되면 사라져 버린다.

 택시가 다리의 절반쯤 왔을 때, 유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양손은 언제 그랬는지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택시 기사의 수다 소리도 어쩐지 들리지 않는다. 다리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여기였다.

  누군가의 시작이 여기였고,

  누군가의 꿈도 여기였다.

  누군가의 희망은 저 앞에

  누군가의 절망은 저 끝에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각자의 마음을 남기고 이곳을 건넜다.

  그리고 나는.


 "자, 이제 나옵니다. 여기가 바로 보포리에요!"


 유연은 눈을 뜬다. 다만 바닷물에 반사된 햇볕 탓에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선글라스를 캐리어에 넣어둔 것이 생각났다. 후회할 시간은 없었다. 다리는 그리 길지 않았고 택시의 속도는 경쾌하다. 곧 보포리에 들어설 테고, 다리는 저만치 뒤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유연은 손을 펴 햇볕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볕은 견딜 만했다. 유연은 눈을 떴다. 어쩐지 엉덩이가 살짝 들리는 것 같았다. 기대되는 것이 있는 아이처럼. 그 언젠가, 엄마와 커튼 놀이를 했던 자신처럼.

.

.

.


 "눈부셔."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날, 빛이 너무 강했다는 것. 그래서 눈을 뜰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엄마가 유연의 앞에서 꼭 끌어안아 주었다는 것. 그래서 포근해졌고, 그래서 한없이 안겨있고 싶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장난기 가득했던 엄마는 재빨리 유연의 뒤로 돌아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유연은 한낮의 빛을 그대로 마주해야 했고, 눈을 뜨지 못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외쳤다.


 "엄마!"


 "엄마도 뜨거워서 그래. 유연이가 엄마 좀 지켜줘."


 지켜달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어린 유연은 어쩐지 진지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양팔을 최대한 펼쳤다.


 "내가 엄마 커튼이야!"


 엄마는 아예 뒤로 벌렁 누웠다. 그리고 이불이라도 덮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엄마 커튼은 유연이야. 고마워."


 그저 감이었다. 뭔가 잘했다는 기분. 그 기분이 강한 볕을 이기게 해주었다. 그래봐야 고작 30초 정도가 전부였지만.


 "엄마 더워…." 엄마는 유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유연의 앞에 섰다. 긴 그림자가 유연의 머리 위에 우산처럼 드리워졌다. 빨개진 두 뺨은 어느새 분홍으로 색을 바꾸고 있었다. 유연은 가방에 끼워둔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신다. 후아. 어쩐지 그런 감탄을 뱉어야 할 것 같았다.


 "엄마도 마실래?"


 "좋지."


 엄마도 물병에 든 물을 마신다. 그리고 '후아' 감탄을 말한다.


 "시원해?"


 "아까부터 시원했어."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유연의 옆으로 돌아선다. 그러자 유연의 앞으로 시원한 그늘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구름도 커튼 놀이 같이하자는데?"


 그림자는 해를 가린 구름 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커튼. 그 안에서 유연은 엄마와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덕분이었다.


 "그럼 이제 내려갈까?"


 "응."

.

.

.


 다리를 지나치자 숲은 어느새 그림자로 가득했다. 나무 덕분이었다. 유연은 그 언젠가, 엄마와 커튼 놀이를 했던 자기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태엽을 거꾸로 돌리려 이곳을 건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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