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과 로3 때에도 울면서 지킨 주일
아들들아,
엄마도 힘들게 울면서 지켰던 주일에 관한 이야기를 남겨두려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과 교회를 가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럽고 쉬워.
초등학교에 가니,
주일에 '걸스카웃' 활동을 하더구나.
친한 친구들이 다 하니 엄마도 하고 싶었지.
그래서 엄마의 엄마에게 물어보았어.
해도 되느냐고.
주일에 하는 것이어서 안 된다고 하셨고, 순종했다.
중학교에 가 3학년이 되어 입시를 준비할 때,
(엄마는 비평준화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고등학교도 시험을 봐서 들어갔어.)
외국어고등학교는 주일에 시험을 보더구나.
이번에는 엄마의 엄마에게 묻지도 않았지.
당연히 안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고등학교에 가 3학년이 되어 수능을 앞두고 한참 모의고사를 칠 때,
갑자기 교육부의 무슨 정책으로
사설 모의고사를 학교로 갖고 와서 칠 수 없게 된 거야.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원에 가서 주일에 시험을 보면 된다.'고 안내하셨어.
엄마는 '아, 나는 여름에 본 모의고사가 마지막 모의고사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엄마 기억이 맞다면 8월에 전국 모의고사를 보고,
11월의 어느 수요일에 수능시험을 봤다.
다른 친구들은 9월과 10월의 어느 주일에 모의고사를 추가로 보며 시험대비를 했지.
엄마만 빼고.
주일에 공부를 못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주중에 더 집중해서 할 수 있었고,
주일에 교회 다녀와서 푹 쉴 수 있다는 게
장기적으로 하는 공부에는 유리한 면이 있었거든.
그런데 모의고사 못 보는 건 좀 마음에 걸렸었어.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지.
더 중요한 게 뭔지 그 때도 알긴 알았으니까.
대학교에 가 졸업할 때가 되니,
토익시험도 입사시험도 그렇게 다 주일에 보더라.
타협을 했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20대에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될 법한 일들도 다 안 되는 시기였어.
꽤 길었고, 꽤 힘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에 들어간 기분이었지.
그러다 토요일에 시험을 보는 리트시험을 보고
로스쿨에 가게 되었는데,
어떤 교수님이 100명 넘게 듣는 강의에서
'쟤는 매일 밤새 공부해도 부족한 이 때에,
일요일이라고 공부 안하고 교회 다녀와 쉰다고 하더라.
하나님도 이런 건 봐주실 텐데 말이야.'라고 공개적으로 엄마를 모욕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줄 수 있구나.
그 교수님은 어느 교회의 집사님인가 장로님이셨지.
그래도 타협하지 않고,
주일에는 공부하지 않고,
마음으로 당시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을 드린다고 생각했다.
변호사시험은 5일 동안 치렀는데,
금요일, 토요일, 주일, 월요일, 화요일 이렇게 5일 동안 치렀다.
주일은 '중간 휴식일' 개념이었어.
다른 해의 변호사시험은 월요일부터 금요일인 경우가 많았는데
유독 2013년의 시험 일정은 엄마에게 가혹했다.
그렇기에 바로 납작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본 적도 없이 로스쿨에 들어가
아등바등 공부해서 치르는 시험인데
가운데 주일이 껴 있다니.
동기들까지 걱정했다.
'언니, 정말 3일차에 공부 안 할 거에요?'
... '응.'
쉽지 않았다.
고3 때도 조금 더 공부하고 싶어서
토요일 자정까지 공부하고 월요일 자정부터 공부하기도 했다.
믹스커피를 진하게 마시면서 울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로3 때는 전국에서 모인 공부귀신들과 하는 경쟁이었기에
더 울었고, 더 처절했다.
그래도 타협하기 싫었다.
공개적인 모욕까지 당했는데
이 마지막 관문에서 타협하면 엄마의 진심이 날아갈 것 같았다.
결국 변호사시험 중에
교회에 가 예배도 드리고,
긴장감에 잠은 오지 않지만 누워서 편하게 쉬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시험 볼 과목을 한 번 훑고 들어가
무사히 시험을 완주했다.
아들들아, 돌아보니
주일을 지킨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일인 것 같다.
너의 삶의 참 주인을 알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는 상황에서의 마음 훈련을
기꺼이 견뎌내길 응원하고 기다린다.
엄마가 지나온 길이
너희들에게 작은 촛불이 되길 바라며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