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무물 | 31번째 이야기
요즘은 출근 전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생각정리를 하고 있어요.
커피와 빵을 마시며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더라고요. (반대로 저녁이 되면 퓨즈가 픽- 나가버리는 타입이라 아침에 뭔가를 하는 게 훨씬 잘 맞는 듯해요)
아침 시간에 하는 건 노트에 이것저것 머리에 든 생각을 쏟아내는 일이에요. 날 것의 생각들을 나만의 비밀 노트에 적는 거죠. 아주 솔직하게.
대부분 스스로 답답하거나 앞으로 할 일에 대한 다짐 등이지만, 최근에는 다른 이야기를 적어보았어요.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뭐라고 정의할까?
영화 '에어'를 보고 생각나서 다시 찾아본 넷플릭스의 <앱스트랙트 : 팅거 햇필드> 편에서 빌 바우만 선생님이 팅거 햇필드를 위해 적은 메모를 읽어줘요.
(*빌 바우만의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이자 오리건 대학의 육상 코치였죠.)
'팅거 햇필드. 건축가, 신발 디자이너, 육상선수'
빌 바우만 선생님이 아꼈던 제자, 팅거 햇필드를 칭하는 수식어였어요.
이게 왜 이렇게 멋졌을까요?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나를 수식하는 단어, 또는 나 스스로를 정의하는 단어.
다만 스스로를 정의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나만 보는 노트임에도 오그라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해볼 만한 고민이었어요.
임혜인. 육상선수, 브랜더, 기록자.
사실 육상선수 말고는 잘하고 싶은, 되고 싶은 모습의 미래적인 단어들만 나열된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어떤 단어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달라지더라고요.
꽤나 오그라드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키티언니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습니다. 근래에는 A라는 자아가 두드러졌지만, 날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B라는 자아가 지배적일 수 있어서요. 하루하루 달라지기도 하죠. 그뿐 아닙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제가 나와요. 관계에 따라 저의 역할과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변하거든요. 시시때때로 변하는 저를 몇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렵네요. 쓰고 보니 약간 오그라드는 멘트지만 진짜 그래요.
저는 스스로를 직업으로만 정의 내리고 싶진 않습니다. 일은 삶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고 사람들은 다른 이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일의 속성이 말뚝이나 뿌리가 아닌 흐르는 물과 더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하는 일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일이 비슷한 분야로 옮겨가기도 하고요. 아니면 아예 전업을 하기도 하니까요.
서론이 길었지요? ㅎㅎ 답변하겠습니다. 앞으로 바라는 저의 모습을 한 스푼 넣고, 지금 저를 정의하는 단어가 무엇일지 생각해 봤습니다.
키티언니. 콘텐츠 마케터, 청자(聽者), 악마의 입
저는 IP 콘텐츠를 홍보합니다. SNS 채널을 위주의 콘텐츠 마케팅 방식으로요. 콘텐츠를 콘텐츠 마케팅 방식으로 홍보하는 마케터 인 셈이죠. 실제 콘텐츠 마케팅 업무보다 팀장으로 일을 조율하는 비중이 더 많습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팀의 이야기를 듣고, 상사분의 이야기를 들어요. 친구들이나 친한 동생들도 힘든 일이 생기면 연락이 와요. 그럼 듣고서 해결보다 그 친구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 리액션을 하지요. 요즘 아버지와 동생의 사이가 좋지 않아 둘 사이를 오가며 듣는 사람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제가 깐죽거리면 '악마의 입'이라고 파르르 떱니다. 이 별칭이 싫지 않아요.
순발력 있게, 웃기게, 타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깐죽대는 게 좋거든요. 그걸 잘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ㅎ
마지막으로 제가 본 미티님을 한 단어로 정의해보려 합니다. 빌 바우만 선생님이 팅거 햇필드를 정의했듯, 다른 이가 보는 내 모습의 일부분이 정의 내리기에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미티님은 참으로 건강한 루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달리기, 모닝 저널, 일찍 잠들기까지
그래서 꾸준히 본인의 리추얼을 지켜가는 '루티너'라는 키워드를 추가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