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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기 Aug 06. 2021

구로동 골목길 맛집의 추억

50년 전쯤 되었을 것 같아요.


서울 구로동 시장 가까운 좁은 골목길에는 간이주택과 구호주택이라고 불렸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어요. 


시대 상황이 그러했듯이 가난했지만 이웃들 간의 정은 넘쳐나던 동네가 구로동이었어요. 정말 이웃사촌이었죠.


아버지가 월급 타서 생선이라도 사 오신 날, 연탄불에 구워서 먹을라치면 풍기는 냄새 때문에 동네 사람들한테 괜히 조심스럽고 옆집, 앞집 눈치를 살필 정도였었어요.


나눠먹기엔 부족하고 우리 식구들만 먹으려니 미안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런 동네에  어느 날인가부터 명절 때나 맡아봄직한 고기 굽는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기 시작했어요.!


허기진 저녁 무렵에 살~ 살~ 풍기는 갈비 굽는 냄새는 거의 고문 수준이었어요.


어둠 내리기 전

희뿌연 저녁


집에 가는 길


아랫마을 굴뚝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면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밥상

눈앞에 아른거리고


봄바람 향기처럼

 감겨오는

고기 굽는 냄새


그 유혹 나도 몰래

발길 닿았던


그 냄새의 진원지인 돼지갈비구이 가게가 우리 집 바로 아래에 생긴 거였어요. 동네 단칸방을 개조해서 식당을 냈었나 봐요.


동네 아주머니들 수군수군....

이 동네에 웬 갈비구이 집이래요~!'


가난한 동네에서 격에 맞지 않는 갈빗집이 장사나 될까 싶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창업하신 일번옥 주인은 용기가 참 대단하신 분이셨을 것 같아요. 아마도 자신감이 있었겠지요.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집이 장사가 되든 말든 명절 때나 맡을 수 있는 갈비 굽는 냄새가 시도 때도 없이 풍겨오니 가뜩이나 골은 배 부여잡고 정말 환장했을 겁니다. 


그 당시는 갈비구이는 고사하고 쌀밥도 먹기 힘든 배고픈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요. 동네에 변화가 생겼어요.

언제부터인가 자동차들이 골목 입구에 들어차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자동차라고는 버스와 삼륜차만 다니는 행길가에 자가용들이 세워져 있던 건 바로 일번옥의 손님들이었던 거죠. 


당시 대한민국 경제발전과 지역 경제를 살린 구로공단의 회사에서 온 손님들이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일번옥의 돼지갈비가 맛있다고 입소문을 타서 구로공단에서 잘 나가는 회사들의 회식장소로도 유명했었다고 하네요.


일번옥에 얼마나 손님이 많았는지 저녁만 되면 동네 골목 입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었어요. 갑자기 웬 사람들인지....


좁은 식당 안에는 앉을 틈도 없이 손님들로 꽉~찼나 봐요. 문전성시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아요-   


단칸방으로 시작한 식당이 오래지 않아 붙어있는 옆집도 사게 되고  또 뒷집도 사고, 또 옆집도 사고, 또 뒷집도 샀는지... 골목 입구의 집들을 싹쓸이할 정도로 커져버렸어요.


유명세 또한 대단해져서 어느샌가 일번옥 옆에 이번옥, 이번옥 옆에 삼번옥이 생기더니 그 골목 전체가 갈비구이 명소로 바뀌게 된 거예요.


어려웠던 그 시절 구로동에 요즘 말로 착한 맛집 골목이 탄생했던 거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용산에 있는 학교 앞에서 초등학교 5학년 (당시엔 국민학생) 가정교사를 일 년 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요  


과외비를 받는 날이면 일번옥에 들러 돼지갈비를 포장해서 집에 싸 들고 가곤 했었어요.


인심 좋은 일번옥 주인아주머니가 학생이 왔다고 갈비 한 두대 더 얹어주시던 생각이 나네요. 


그날은 온 식구가 막내아들 덕에 풍기는 냄새만 맡았던 갈비구이를 배부르게 뜯는 날이었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추억과 그 맛을 잊지 못해 서울에 가게 되면 구로동 일번옥에 전화로 주문을 하곤 해요.


"30~40분쯤 후에 도착할 테니 구워서 포장해 주세요~!"


돼지갈비는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어야 제맛이 나니까요~ ^^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변한 입맛 따라 일번옥도 과거 전성기 때의 유명세는 꺾였지만 옛 맛을 간직한 채 아직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더군요.


1970년대 고등학생 막내아들이 사 가지고 온 일번옥 갈비가 40여 년이 지난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싸 들고 온 일번옥 갈비가 되었어요.


코로나 시국 이후에는 못 가봤네요. 코로나로 경제활동 발목이 꽁꽁 묶였지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느라 책 쓰느라고 두문불출했거든요.


지난달 서울에 강의 일정이 있어 사 갖고 올 기회가 있었는데 또~ 또 코로나로 인해 연속 취소되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어요-

슬프네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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