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 예술기행 시리즈
왜? 스페인의 합스부르크에 반하게 되는가!
합스부르크는 2024년도 국립중앙박물관 덕분에 오스트리아 빈 600년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레 만나는 문화의 대부분이 이 합스부르크 시절의 문화가 융성했기에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합스부르크를 느끼고 있지만, 막상 루돌프 1세나 마리아 테제나 마리 앙뚜아네뜨나 다양함을 하나로 묶어나가기가 조금은 난해하다.
일본 나카노 쿄코가 쓴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이유라 역 | 한경arte | 2022년) 책을 통해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합스부르크는 전성기의 카를 5세를 떠 올리게 된다. 빛의 예술을 다루었던 티치아노가 활동을 카를 5세 아들 펠리페 2세 때까지 하며 그 색체의 화려함을 마음 껏 드러냈다.
물론, 십자군 전쟁 시기와 맛물려 베네치아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라피스라줄리 같은 귀한 물감재료가 자연스레 유입되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활동 속에 사람들은 점차로 색의 변화와 다양성의 문화를 음악과 미술 속에서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카를 5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스페인의 통치권은 모두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신성로마제국의 통치권은 남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주었던 이 일이 합스부르크를 나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구분없이 이 합스부르크를 받아 들인다. 사실 합스부르크는 듣는 부분과 보는 부분으로 나뉜다. 그래서 솔직히 참관했던 입장에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합스부르크는 2% 부족함을 느꼈다.
동생에게 물려 준 유산은 이미 포화 상태가 된 건축 조각 미술이었다. 그래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개척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모짜르트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문화유산 속에서 영감을 얻어 소리를 통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 주었다. 그러다보니 만연했던 보이는 예술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아무 것도 없던 마드리드 벌판에 왕궁을 세우고 왕가 무덤인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도 세우는 등 건축 조각 미술 분야의 투자 및 활성화가 극에 달한 시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날고 기는 예술가들이 스페인으로 몰려 들었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못 그린 그림이라 큰 소리 친 도메티코스 테오토코폴로스(일명, 엘 그레코)까지 스페인에 정착할 정도였다.
틴토레토의 미술이 엘 그레코로 이어지며 스페인 미술을 빛냈고, 엘 그레코의 미술을 카라바조가 그리고 카라바조의 미술을 루벤스와 벨라스케스가 나누어 가지며 스페인 예술계에 불을 지폈다.
루벤스는 빛을 인간의 역동미로, 벨라스케스는 빛을 공간을 드러내는 데 사용해서 화려한 예술계를 뽐냈다. 이 두사람의 빛을 다루는 예술의 정점은 아랍의 석양의 빛을 다루듯, 세비야 성당의 황금천장처럼 추리게라와 나르시스 토메를 거쳐 가우디에게 까지 빛의 건축이 이어지는 것도 한 몫한다.
그래서 북유럽의 화려함은 음악과 함께 함으로 그 진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 스페인은 이제 모두가 바라보며 현시의 세상을 느끼기를 원했던 예술가들의 혼이 쏟아져 있었기에 유독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 예술의 정점을 찍게 된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