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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자 Oct 29. 2023

말랑한 맛

딱딱한 문을 열면 말랑한 이름이 나왔어     


너의 문을 열려고 손가락으로 두드렸어

네 몸 중에 제일 단단한 머리는 돌로도 깨지지 않을 것 같았고

너는 세상에 나오기 싫어하는 아기처럼 발악했지만

문을 열고서는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냈어


너를 맛본 딸은 세상의 신맛이 아니라서 눈을 질끈 감았고

나는 세상의 신맛이 싫어서 한입에 넣었어     


꼭지는 이제 죽어가고 있어

나무에게 버림받은 그 날 이후가 아니라

오늘 꼭지를 잃어버린 지금에서야

과즙이 마르기 시작하기 전에 눈물로 떨어졌어

노란 과즙의 색깔은 껍질보다 명도가 낮아

시린 발가락처럼 오들거렸어 

    

언젠가 보았던 형상이 아니었지만

너는 매일 다르게 진화하고 있어

어떤 날은 멀리서

어제는 집 밖에서

오늘은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알고 있다는 듯 활기차게 찾아왔어    

 

둥글었던 몸이 허물어지고

반쪽의 상큼한 향이 손가락을 어루만지고

반쪽의 껍질은 나머지의 세계를 안내하고 

    

맛을 쏟아 낸 꼭지는 세상 밖으로 걸어가는 

아기의 첫걸음마처럼 불안정하게 

한 발 두 발 그러다 완전한 걸음걸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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