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1편 : 하나뿐인 딸아이 영상을 보며 오늘도 참고 또 참아낸다.
우리 팀에 나보다 10살 많은 남자 과장님이 계셨다. 원래 피우지 않던 담배도 피기 시작했고, 매일 술을 먹는 양도 늘어났다. 원인은 우리 팀 73년생 남자 팀장 A 때문이었다. A 팀장은 사내에서도 유명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악명이 높았다. 본인의 학력 컴플렉스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성격, 분노 조절 장애 등 종합 선물세트 같은 사람이었다. 소위 직장 내 라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타서, 부회장의 총애를 받으며 나름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는 과장님이 A 팀장에게 보고를 마친 후였다. 자리로 돌아와 바로 라이터와 담배를 챙기더니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에게 같이 나가자길래 따라나섰다. 1층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마실 음료를 사고 과장님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몇 모금 피우시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 앨범을 열어 나에게 딸아이 영상을 보여주셨다.
"우리 딸, 너무 예쁘지?" 과장님이 배시시 웃으며 내게 말했다.
과장님은 평소에 무뚝뚝하고 츤데레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서 이렇게 다정한 사람인 줄 몰랐다.
"너무 귀엽네요." 내가 답했다.
"내가 우리 딸 때문에 회사를 못 그만둬. 어떡하겠냐.. 참고 회사 다녀야지."
이 말을 듣는데 순간 얼어버렸다. 이 한 마디 안에 너무나도 많은 감정과 슬픈 사연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 팀장 보고 때 있었던 일을 들어보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장에게 인격 모독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을뿐더러, 누가 봐도 억울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A 팀장은 팀원들에게 마이크로 매니징을 잘하는 것이 본인의 강점이자, 자신이 팀장으로 승진한 이유라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오늘 역시 A 팀장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과장의 보고 자료를 반려시켰고, 과장님은 오늘도 야근을 하게 생겼다.
'회사 생활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
'내 미래는 저런 모습일까 ?'
그날 집으로 귀가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팀장한테 깨지고 본인의 하나뿐인 딸아이 영상을 보며 오늘 하루도 버텨내는 과장님의 슬픈 눈, 담담한 어조, 체념한 듯한 표정. 내 미래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능력 있고 일머리 좋은 과장님이 팀장 하나 잘못 만나서 이런 불행한 삶을 사는 게 이해가 안 됐다.
(필자가 한쪽에 치우쳐 설명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과장님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A 팀장은 학력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다. 학력이 전부가 아니지만 과장님은 사내에서도 일머리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세상에 쉬운 직장 생활이 어디 있겠냐마는, 다들 이렇게 억울한 일 당하고 참아가며 월급 받는 삶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0대 후반 나이를 먹고, 이직을 받아줄 다른 회사가 없어서 오늘 하루도 참고 사는 삶이 너무나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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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2편에서 이어집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유튜브 달리 채널 - "13개월 취준 했는데 18개월 만에 퇴사" SBS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