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스페셜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퇴사를 주제로 한 SBS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다. 소위 MZ세대와 80년대 이전 세대를 단순하게 갈라버리는 다른 다큐멘터리와는 차별성 있게, 조금 더 다양한 각도로 입장을 비추려 한 흔적이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제목부터 "13개월 취준 했는데 18개월 만에 퇴사? 인생 FLEX"로, 겉으로 보면 MZ세대에 편향된 내용 같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졸업. 연봉 7,800만 원.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든 국내 자동차 대기업에 다닌다.
그런데 그는 오늘 사표를 냈다. 인생을, 시간을 그냥 허비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다른 출연자는 한국 최고 연봉 회사 중 하나인 기업에 재직하다가 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일을 배운 뒤 궁극적으로 자신의 젤라또 가게를 차린 장인이 되고 싶어서다.
첫 취업에 걸리는 기간 : 평균 13개월
첫 회사를 다니는 기간 : 평균 18개월
신입사원 100명 중 3년 이내 그만두는 비율 : 27명 (27%)
회사에서는 회사법을 따르는 것이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노동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회사이기에 사규가 있고 내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돈을 주니까, 업무 외적인 부분에까지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 팀 내 단합을 취지로 한 상무님 이하 등산 약속이라든지, 퇴근 이후 시간에도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까지. 이런 행사가 일 년에 몇 차례 없는 행사면 기꺼이 참석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한두 번 이루어진 행사가 어느새인가 고정적인 일정이 되어있고, 어느새 직원들의 의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불참을 이야기하면 죄인이 되어버리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정말 문제인 것은 이렇게 업무 외적인 부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을 하는 것이 어느새인가 아래 직원의 핵심 업무 역량이 되어있고, 복종하지 않는 직원은 은따를 당하기도 한다. 물론 똑같은 부하 직원이 있을 때 자신을 더 따르고 자신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직원이 더 예뻐 보이는 게 사람 관계에서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직원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고, 이른바 싸가지 없다고 낙인을 찍어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높은 인사고과는 복종을 잘했던 직원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비 복종 직원의 업무 능력이 훨씬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이쯤 되면 일을 하러 회사에 오는 것인지, 누가 더 상사 말씀 잘 듣고 순하게 복종하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심지어 이런 케이스도 목격했다. 8시부터 출근시간인데, 7시까지 출근하라는 직속 상사의 지시. 팀장도 아닌 대리, 과장급 직원의 지시다. 그런 지시를 한 이유는 '팀장님이 7시까지 오시는데, 부하직원 그리고 막내 직원들이 8시 가까이 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 이유였다. 팀장이 시킨 것도 아닌데, 제 발이 저려 중간관리자인 이 직원이 자체적인 규율을 만든 것이다. 본인도 이 규율을 지키는 것이 힘들었는지 오래 못 가 흐지부지 되었다.
신입사원들의 칼 같은 퇴근시간을 문제 삼는 상사도 보았다. 팀장님이 아직 자리에 계신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근 인사를 하고, 요즘 신입사원들은 주인의식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인들이 업무시간에 수시로 담배 피우러 드나드는 시간만 합쳐도 1~2시간은 나올 텐데... " 담배 피우러 가는 왔다 갔다 하는 시간, 엘리베이터 오르내리는 시간, 피는 동안 왁자지껄 수다 떠는 시간. 그 수다를 떠는 시간이 생산적인 업무 관련 이야기면 몰라도, 80% 이상은 누군가의 험담 혹은 쓸데없는 이야기들뿐이다. 여기서 웃긴 점은 팀 내 흡연자들이 퇴근시간 임박해서는 어느 누구도 담배를 피우러 나가지 않고 모두 자리에 잘 앉아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정작 중요한 업무 시간에는 담배로 시간을 때우고 때우다가 퇴근할 때 돼서야 밀린 일들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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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로 연재하는 글에서 MZ세대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거나, 모든 상사가 이른바 '꼰대'라며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SBS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직접 경험한 회사 관련 에피소드들을 단상처럼 기록하려는 취지다. 신입사원들의 조기 퇴사 문제는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기 퇴사하지 않는 사원들도 많으며, 직장 생활에 무사히 적응하며 자아실현하고 있는 비율도 높다. 여러 다큐멘터리 혹은 TV 예능에서 방영하듯, 이런 트렌드가 한국 사회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어떤 TV 프로에서는 한국 사회의 통념과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는 '사춘기'로도 표현을 하던데, 그 점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이런 변화 트렌드를 기점으로 생산적인 논의로까지 이어져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유튜브 달리 채널 - "13개월 취준 했는데 18개월 만에 퇴사" SBS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