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몫의 피자'를 탐내는 사람은 누구?

by Quat


요즘 들어 아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나 또한 아내가 가진 고민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에 대해 돌아보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유지했던 관계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결과, 언제 어디서든 좋은 관계 속에서 반드시 존재했던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상대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불건강한 관계들은 일방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기만 한다. 한쪽은 요구하고, 다른 쪽은 그것을 들어주느라 바쁘다. 어쩌다 한 번씩 상대가 불만을 제기하면 요구하는 쪽의 태도는 늘 비슷하다. "그걸 왜 물어봐? 당연히 그렇게 돼야지!"



좋은 친구, 선후배, 부부 등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관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서로에 대한 질문이 존재한다. "밥 먹었어?"라는 질문에 "응, 너는?"이라고 되물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응. 먹었지."라며 대화를 끝내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만 보면 '저렇게 사회성 부족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단답형 유형'은 우리 주변에 꽤 많이 있다.





몇 시간 동안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유독 공허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쉴 새 없이 웃고 떠들었기 때문에 지쳤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똑같이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해도, 오히려 더 신이 나고 에너지가 넘칠 때도 있다. 분명 나갈 준비를 할 때만 해도 '오늘은 10시 전엔 집에 돌아와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정작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면 12시가 다되어가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건 바로 '내가 얼마나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가'에 달려 있다. 전자 같은 경우엔 대화를 할 때 주로 상대의 말에 호응하고 받아주기만 했다면, 후자는 자신이 대화를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에 가깝다.



즐거운 대화란 마치 피자 한 판을 나누어 먹는 것과 같다. 만약 세 명이서 여섯 조각의 피자를 나누어 먹는다면, 어떻게 먹어야 가장 좋을까? 누구나 알듯이 한 사람당 2조각의 피자를 먹으면 불만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4조각을 먹어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겨우 한 조각의 피자만을 자신의 몫으로 갖게 된다. 어쩌다 배가 부를 땐 1조각의 피자로도 만족할 수 있겠지만, '걔랑 만나면 항상 피자를 조금밖에 못 먹어'라는 인식이 생기면 점점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질문을 한다는 건 상대에게 그만큼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뒤집으면 질문이 없다는 건 상대에게 궁금한 게 없다는 말이 된다. 어떤 관계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면, 그 관계는 서서히 식어버린다.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을 오랫동안 곁에 두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여기서 또다른 중요한 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자신을 궁금해하길 바라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라는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길 만큼 일상을 부지런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주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 또한 궁금한 게 생길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단지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론 성립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없다는 건 결국 현재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는 말도 된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라. 당신은 상대와 피자를 먹을 때 정해진 몫만큼 먹는 사람인가, 상대의 피자까지 빼앗아 먹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