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콤하다고 누가 그래

책은 읽기 쉽지만, 너도 그럴까.

by 공운

나는, 사람들을 잘 미워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싫어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적당한 선을 두고 살았다.

동 떨어진 친구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맞지 않은 친구들과는 겉으로는 친한 척 지내도, 결국 남는 마음이 없도록 서서히 멀어졌다.


오히려 미움받는 게 미워하는 것보다 더 싫었다.

그래서 방어 기제로, 모두를 좋아한다고 믿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계를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그걸로 상처받기 싫어 다 놓아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사랑은, 상처를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가 사랑의 증거였다면, 그건 꼭 흉터가 남을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이상형도 딱히 없던 나는, 친구들이 ‘누구를 좋아하냐 ‘ 물을 때마다 얼버무리곤 했다.

그 나이대 애들이 열광하던 아이돌이나 배우에도 관심 없던 나는, 유행에 둔감하고 시대에 뒤처진 편이었으니.

누가 예쁘다느니, 잘생겼다느니 하는 말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렇게 재미없는 내 인생에는 책이 있었다.

좋아한 건 오직 소설, 그 속의 이야기뿐.

사랑이든 뭐든, 나는 책으로 배웠다.


고전 소설 특유의 어릿한 문장들을 매만지고,

신작 소설의 야심 찬 사랑을 익히면

언젠가 나에게도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올까 싶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그려나가는 미래 이야기는,

아직 어렸던 나에겐 퍽이나 아름다운 환상 동화였으니까.


사랑이 달콤하다고 믿었던 것은, 분명 책의 폐해가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사랑은, 작가의 문장 아래 설계된 마음이었다.

책 속의 그들은 쉽게 마음을 고백하고, 한 번의 미소로 서로를 확인했다.

현실에서도 가능한 이야기일까 생각하다가도, 진짜였으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글 속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았던 감정이 나를 덮쳤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맞혔을 때,

그때 나는,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창문 아래로 번진 짙은 그림자 속에서, 웃고 있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내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 순간.

어라, 이게 아닌데.. 싶었다.

로맨스 주인공들이 말하던, 그 간질간질한 느낌이 손끝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네가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던가.

너는 어떤 사람일까.

책은 읽기 쉬운데, 너도 그럴까.

어쩌면, 나는 이제 막 소설 첫 페이지를 펼치며,

이 정도면 다 읽을 수 있겠지 하고 자만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1장의 끝조차 넘기지 못한 채, 덮어버린 이야기처럼.

월, 금 연재
이전 01화[플로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