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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Oct 20. 2021

이럴 '빠에야', 난 '리조또'를 먹겠어요.

홈메이드 리소토/파에야





문득 그런 날이 있다. 토마토소스가 너무 먹고 싶은데 파스타 면은 너무 먹기 싫은 그런 날. 대체 무슨 변덕인가 싶지만, 때론 그런 날이 있다. 왠지 쌀알이 더 끌리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토마토소스에 면은 빼고 밥을 곁들여 먹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메뉴를 이탈리아의 '리조또 [Risotto; 리소토]' 혹은 스페인의 '빠에야 [Paella; 파에야]'라고도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두 요리는 모두 각각의 매력으로 맛이 좋았다. 다만, 현지 맛을 따라잡기 위해 낯선 향신료를 구매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 그나마 접하기에도 쉽고 마침 집에도 있는 올리브유와 토마토 파스타 소스, 냉장고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식재료들, 그리고 쌀 대신 밥을 넣어 간편하게 흉내 내어 만들어 먹곤 한다. 리조또면 어떻고 빠에야면 어떠하며, 또 그 어떤 이름 모를 요리이면 어떠하리. 내가 기억하는 그 느낌을 품은 쌀요리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리조또와의 설레는 첫 만남이 있었다. 리조또가 뭔지도 모르고 파스타엔 빨간색과 하얀색 단 두 가지가 전부라고 알던 상당히 귀여운 십 대 시절이었다. 피자, 파스타와 함께 엉겁결에 주문하게 된 리조또는 소스에 적셔진 쌀알의 식감이 죽보다는 밥에 좀 더 가까우면서도, 또 그보다는 굉장히 크리미 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다). 아무튼 엉겁결에 맛본 리조또의 죽도 밥도 아닌 그 맛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면서도 소녀의 마음을 내심 설레게 했다. 그 이후 대학시절 한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본 빠에야는 리조또보다 표면적으로는 살짝 거친 느낌이 나면서도 조리 팬에 그대로 담겨 나오는 비주얼이, 소스가 진득하게 배어 조려진 냄비밥? 같은 느낌도 들었다. 또 하나의 차이로는 뜨거운 팬 바닥 군데군데 살짝 눌어붙은 밥 (일명, 소카랏 [socarrat]) 긁어먹는 재미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무엇이든, 또 얼마나 있든 간에 결국 두 요리 모두 맛있게 간이 배어든 쌀알이 씹히는 매력적인 요리임은 확실하다.


출처 Unsplash. 좌: 리조또 [리소토/Risotto], 우: 빠에야 [파에야/paella]


리조또와 빠에야 만들기는 (내 기준으로) 상당히 비슷한 편이다.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을 쌀과 함께 볶아, 따로 준비한 육수나 물을 넣고 노란 색감을 주는 향신료 사프란을 함께 넣어 뭉근하게 끓여먹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각각의 대표적인 쌀요리인 리조또와 빠에야. 무엇을 재료로 넣느냐, 육수를 계속 넣어주며 부드러운 식감이 되도록 저어주느냐 한 번에 넣고 밥을 짓듯 끓여주느냐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두 가지 모두 볶은 쌀에 맛이 배어 들도록 끓여낸 요리란 것은 공통된 점이다. 때문에 집에서 만든 그 요리에는 따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빠에야가 될 수도, 리조또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쌀을 볶아 끓여내야 진정한 리조또 or 빠에야라 할 수 있겠지만, 숙련된 요리실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쌀이 몹시 설익거나 (파스타의 익힘 정도 알덴테를 넘어서는 딱딱함을 맛볼 수도 있다) 아님 자칫 태워먹기 십상이다. 해서, 내가 선택한 건 다 된 밥이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게 아니라 맛있는 소스를 뿌려본다. 다만, 그날 준비한 밥의 되기 정도에 따라 조금은 거친 느낌의 빠에야가 되기도 하고, 촉촉한 리조또가 되기도 한다. 그날 밥물의 양에 따라 이탈리아로 가느냐, 스페인으로 가느냐가 결정 나는 셈이다. 오늘은 스페인이 끌린다 했는데 밥 상태를 보아하니 이탈리아행이 이미 예약된 듯싶다. 이럴 '빠에야', 난 오늘 '리조또'를 먹어야겠다.





[2인분 분량]

* 주 재료: 다짐육 (돼지고기: 120g), 새우 14마리, 양파 1/2개, 호박 1/3개, 표고버섯 3개, 다진 마늘 2T, 페퍼론치뇨 4알, 토마토 파스타 소스 6T, 굴소스 1T, 물 2 종이컵, 밥 2인분. (선택사항: 파마산 치즈 1T, 모차렐라 치즈 두 줌)


1. 올리브유를 한-두 바퀴 정도 두른 웍에 다진 마늘 & 페퍼론치뇨를 넣고 노릇하게 볶아준다.

2. 먹기 좋게 자른 양파와 버섯, 호박을 넣고 같이 볶아준다. 

3. 어느 정도 볶다가 다진 돼지고기와 후추를 톡톡톡 뿌려 같이 볶아준다.

4. 새우살 (7마리는 굵직하게 다져서 & 7마리는 통째로)을 넣고 살짝 볶아준다.

5. 토마토 파스타 소스와 물, 굴소스를 넣고 끓인다.

(*집에 치킨스톡이 있다면, 물과 섞어 육수로 넣어줘도 좋다.)

6. 밥 2인분을 넣고 같이 끓여 (어느 정도 점도가 생길 정도로) 마무리해준다.










냉장고에서 노닐고 있는 재료들을 헤쳐 모아 보글보글 끓여낸 홈메이드 리조또가 완성되었다. 이미 부드러운 리조또에 묻고 더블로 부드러움을 더해주려면, 치즈를 다양하게 활용해도 좋다. 모차렐라 치즈를 밥알 사이사이에 넣어주면 한 숟갈 떠 올릴 때마다 치즈가 주욱 늘어지는 맛을 즐길 수 있고, 네모난 슬라이스 체다 치즈를 위에 얹어 뚜껑을 닫고 한 김 녹여주면 고소함을 한층 높여 즐길 수도 있으며, 꼬롬하면서도 고소한 향의 파마산 치즈가루를 눈처럼 솔솔 뿌려주면 리조또의 풍미가 한층 Up 되어, 왠지 모를 고급진 맛으로도 즐길 수 있다. 


그날 집에 들여온 식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양한 리조또가 만들어진다. 새우는 모양만 내보려다 굵직하게 다져서도 넣었더니 밥알과 함께 씹히는 맛이 풍성해져서 훨씬 좋더라. 새우나 오징어, 조개류를 들여놓은 날에는 해산물 리조또가 되고, 얼씨구나 돼지나 소를 한 귀퉁이 썰어온 날에는 고기가 듬뿍 들어간 리조또가 된다. 이도 저도 없는 날엔 냉장고에 놀고 있는 채소들을 죄다 데려와 알록달록 채소 리조또를 만들어본다. 토마토소스가 있는 날은 붉은색 리조또가 되고, 크림소스가 있는 날엔 화이트 리조또가 되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리조또의 가짓수가 자꾸자꾸 늘어나는 행복한 조짐이 보인다.       


오늘은 리조또로 이탈리아행 티켓 예약 완료.







Bona가 준비한 오늘의 요리, Bon appétit [보나베띠]: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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