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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Mar 27. 2024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회

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27)

최근 마스크걸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극 중 ‘주오남’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안재홍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 깊었다.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인터넷에서만 활발히 활동하는 일명 ‘오타쿠’ 같은 역할로 나온다. 실제 사회에서는 대화를 한마디도 못하지만 머리속에서는 갖가지 망상을 한다. 그가 주인공인 ‘모미’에게 고백하는 망상의 장면이 압권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의 욕망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그의 사회성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고 사랑을 할 줄 모르는지 드러난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잘’ 할줄 모르면 상대방에게는 기분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캐릭터는 현실에서도 흔하다. 특히 사랑의 기술을 잘 모르는 어린 시절에 흔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어리숙하게 고백하거나 짝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해보거나 주변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성 친구가 아니더라도 친구한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 사소한 문제로 다툰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실수와 오해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안타깝게도 사춘기 때 이런 과정을 겪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든 어렸을 때 배움이 빠르기 때문에 성인이 되서 이런 기술을 배우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주오남’ 같은 사람들이 생긴다. 각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그런 스킬을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사랑도 기술이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의 기술을 얘기하기 전에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랑의 핵심은 사랑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 사랑은 자본주의적 관점처럼 받는 만큼 주는 혹은 주는만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얘기를 잘 정리해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라고 한다. 또 사랑은 보호, 관심, 책임, 존경, 지식이 내포되어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사랑은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선다. 사랑 자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호기심을 넘어선 지속적 관심과 존중이 필요하다. 그저 주기만 한다고 다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랑의 기술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아닌 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매우 부족하다. 부모님들도 사랑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마스크걸’의 ‘주오남’도 마찬가지다. 그의 어머니는 공부만 강요하고 부모 자식간의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사랑만 보여준다. 그러니 ‘주오남’도 성인이 되어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단골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가 사랑으로 가득하고 누구나 사랑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사랑 없이 결혼하는 시대에서 이제 갓 벗어났다. 자본주의가 들어오며 사랑을 물건처럼 사고 팔고, 값을 지불 받아야만 돌려주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랑이 부족하기에 어느 때보다 사랑의 기술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사랑의 기술을 연습할 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번째로는 객관성이 중요하다. 객관성이란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자기 도취에서 깨어나 3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객관성을 토대로 상대방과 맞춰나가야 한다. 두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즉 조건을 달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돌려 받지 않아도 사랑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아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한 믿음을 ‘합리적 신앙’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믿음, 이 두가지가 선행되어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지금은 배움의 시대이다. 어떤 분야든 가르치는 선생님을 구할 수 있고 유튜브는 때때로 최고의 스승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거나 가르치지는 않는다. 실제로 병원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마음을 강요하고 있다. 자기 객관화도 되지 않고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보지도 못한다. 사랑은 약한 사람들만 하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은 그들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란 점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다. 기술 없는 사랑은 어린아이의 떼쓰기와 같다.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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