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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02. 2023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한다

 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13



‘전 과목 100점이었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1개가 틀린 것이었다. 이상했다. 분명 난 모두 정답인데. 채점된 시험지를 돌려받고 나서야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문 위에 있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눈물이 핑 돌았다. 실수한 것보다 엄마에게 혼이 날 것이 무서웠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시험 결과를 얘기했다. 내 예상이 적중했다. 1개 빼고 모두 정답은 소용없었다. 난 형편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 아빠는 처음이라 中



  이 무렵부터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저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 잘 아는 편입니다. 학창 시절 전 화가 많고 굉장히 못된 아이였습니다. 친구와 싸움박질은 다반사였죠. 특히 저에게 지적하는 걸 못 견뎌 했습니다. 언제나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짝꿍이 된 여자아이는 항상 저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책상에 그어놓은 선을 넘기라도 하면 그날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죠. 쓰다 보니 한심했네요. 


  반면 전 작은 칭찬에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대부분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부엌에서 과일 분말로 된 주스를 만들어 가져다드립니다. 잘했다는 단 한마디를 듣기 위해 좋아하는 만화도 보지 않고 공부합니다. 급한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슈퍼마켓을 뛰어갔다 옵니다. 동생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현관을 나설 때쯤 전 이미 돌아오죠. 동생의 굉장히 느릿한 행동이 절 더 빠릿빠릿하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생의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할게요. 


  엄마는 저의 잘못된 점을 정확히 집어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합니다. 맞아요. 잔소리죠. 들리지 않습니다.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할 뿐입니다. 만약 그 시간에 저의 장점을 칭찬하고 용기를 주었으면 어땠을까요? 저는 뛸 듯이 기뻐 그만하라고 해도 뭐든 더 잘하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엄마는 저보고 청개구리 같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당신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한다는 뜻이겠죠. 그래요. 엄마와 저는 성격도 성향도 반대였습니다. 가끔 동생에게 아빠를 똑 닮았다 하고 전 엄마를 닮았다며 이야기하셨죠. 착각하신 겁니다. 


  세월이 꽤 흐른 어느 날 동생은 형 때문에 학교 가기 싫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형은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도 빠른데 넌 아니네? 라는 말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들은 겁니다. 그럴 만했네요. 어린 친구가 상처가 컸어요. 학창 시절 내내 누구의 동생으로 지낸 시간을 생각해 보니 안타깝네요. 물론 제 탓은 아닙니다. 동생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형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전 일찍 결혼했습니다. 바로 첫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조카가 예뻐 안고 있기라도 하면 주위 어른들이 말합니다. 너도 형처럼 얼른 결혼해야지. 


  동생은 꽤 오랜 시간 연극배우였습니다. 첫 주연을 맡았던 공연에 꽃다발을 사 들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잘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았죠. 덧없고 긴 무명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동생은 당당히 유명 배우가 되어서 형의 콧대를 납작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우쭐대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길 저도 바랐습니다. 지금은 연극을 그만두고 만족하는 직업에 여유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잘됐죠. 하지만 생각해 봅니다. 저나 동생이 학창 시절 아낌없는 칭찬과 응원,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았다면 현재 우리 형제의 모습이 어땠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저도 혹시 칭찬에 인색한지 돌아봅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고 노력해 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되나 봅니다. 한번 단점을 보면 계속 단점만 보입니다.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장점을 보게 되면 더 나은 부분을 찾게 됩니다. 저절로 보입니다. 그 사람이 좋아집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봐요. 보이면 바로 칭찬해 봐요. 상대도 저에게 칭찬으로 분명히 화답할 겁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어색한 칭찬을 건네봅니다. 칭찬할 게 잘 생각나질 않네요.


  아들! 가끔이라도 생사를 알리러 집에 오는 널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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