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홀로길에 Jun 09. 2023

논산행 열차는 매진입니다

오늘이 낯선 지구 여행자입니다만 ep12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이다 옷을 입고는 어둡고 고요한 골목길을 걸었다. 여기저기 그냥 걸었다. 등산로와 연결되는 곳까지 올라가니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찬찬히 눈에 담았다. 반짝이는 가로등과 붉은 십자가들. 어두운 골목 계단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긴 호흡으로 뿜어낸 연기는 이내 나를 휘감아 돌고는 특유의 냄새를 남기고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멀리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날이 밝는다.   


  엄마와 서울역에 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매표소 직원은 논산행 열차표가 매진됐다고 얘기했다. 오늘이 논산훈련소 입소일인데 큰일이다. 당황하는 우리를 본 한 직원이 강경역으로 가서 논산까지 택시를 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알려줬다. 하는 수 없이 그의 말대로 강경역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미리 예매했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주위에 군대 다녀온 사람이 없었고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면제였다. 그 친구들은 소위 ‘신의 아들’이었고 난 ‘어둠의 자식’이었다. 


  기차는 한강 위 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서울을 언제쯤 다시 볼까?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들이 내 눈을 어지럽힌다. 가기 싫다. 정말 가기 싫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언제 잠이 든 건지 모르겠다. 처음 와보는 강경은 낯선 곳이었지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택시는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택시가 안 잡혀 못가길 바랬다. 훈련소 입구엔 잡상인과 우는 엄마들, 나 때는 이런 거 없었다며 뭔가 손해 본 듯한 표정의 아빠들과 잔뜩 상기된 빡빡머리 총각들이 뒤섞여 있었다. 


  간단한 입소식을 마치고 모두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 역시 엄마와 잠깐의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연병장을 향했다. 돌아보면 울 것 같아 끝내 보지 않았다. 이제 난 군인이다. 어리광이나 부리던 말썽 많은 자식이 아니다. 마음으로 계속 다짐했다. 난 고등학교 때 교련-학생 기초 군사훈련-과목이 있던 시절이라 겁이 나진 않았다. 사실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더 겁이 없었나 보다. 부모님들이 보이지 않는 건물 뒤로 돌아서자, 교관들은 표정과 말투가 바뀌었다. 다음 건물까지 오리걸음으로 갔다.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여기저기에서 자꾸 소리를 질러대니 더 그랬다. 입고 온 옷을 집으로 보낼 포장을 했다. 나눠준 누런 포장지에 옷을 잘 개어 넣고 있었다. 일 년 전 사촌 형이 훈련소에 입고 갔던 옷이 집으로 돌아왔다. 소포를 풀어보다 포장지 구석에 짧게 흘려 쓴 편지를 보며 밤새 울었다는 이모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편지를 쓰려고 하는 찰나 교관이 시범을 보이겠다며 내 옷과 포장지를 가져갔다. 멀뚱히 내 옷이 각 잡혀 포장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분명 포장지에서 내 편지를 찾아볼 텐데 큰일이다. 나중에 동생에게 듣기론 엄마가 밤새 울며 내 글씨를 찾고 또 찾았다고 한다. 


  입소일 저녁. 군대에서 먹는 첫 끼였다. 줄을 지어 식당으로 가 첫 배식을 받아 식탁에 앉았다. 고춧가루로 양념한 단무지 두 개와 김치 조금, 마늘장아찌 약간에 된장 색 국이 전부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눈에 잔뜩 힘을 줬다. 갑자기 엄마의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맛이 있어 생각난 것은 아니다. 맛이 없다. 우선 월요일 저녁 큰 냄비에 김치찌개라며 뭔가를 잔뜩 끓여 놓으신다. 맛은 영락없는 김칫국이다. 수요일쯤 되면 김치찌개가 된다. 대략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를 더 끓인 후다. 금요일쯤 되면 짜글이가 되며 곧 냄비 바닥이 드러난다. 그런 엄마의 김치찌개를 그 순간 너무 먹고 싶었다. 


  훈련소의 첫날 밤은 처량했다.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느껴졌다.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에 나도 그만 눈물이 났다. 취침나팔 소리를 들으며 울던 난 기상나팔 소리에 잠이 깼다. 갑자기 어수선했다. 눈을 떠보니 다들 군복을 입느라 정신없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군대란 곳, 젊은 날 즐겁지만은 않았기에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것 같다. 편했던 말년병장 시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힘들고 아픈 기억은 오래 남아 인생을 쓴맛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 같다. 


  분명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이 있다. 나도 여러분도. 






이전 22화 부끄럽지 않겠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