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홀로길에 May 28. 2023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오늘이 낯선 지구 여행자입니다만 ep11

  울면서 전화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빠의 승낙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이 한마디 결정이 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여태 견디며 잘 해왔는데 왜 이러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간의 시간이 아까웠다. 하지만 내 아들이 울고 있다. 너무 서럽게 울고 있다. 마음이 아팠다. 행복하길 바랐는데 이렇게 아파하니 내가 더 아팠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아빠라서 더 아팠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들이 현관문을 요란하게 뛰어 들어왔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인데 아이는 마치 여름의 한낮에 놀다 온 것만 같다. 빨래통에 쉰내 나는 옷을 집어 던지고 씻으러 들어가는 아이의 키가 훌쩍 커 보였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올해 들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수학영재에 선발됐다. 아빠를 닮은 게 확실하다. 뽀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하고 있을 때, 축구부 감독이 운동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아들은 수학영재다. 


  며칠이 흘렀다. 아내가 축구 감독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난 다짐한 것이 있는데, 아이가 원하는 것은 경험해 보게 한다는 것이다. 잠시 고민했다. 아들에게 물었다. 정말 해보고 싶은지. 너무 뻔한 대답이 돌아왔지만, 선뜻 허락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결국 아들과 함께 감독을 직접 만났다. 얼마간이라도 가르쳐 보고 싶다고 말하는 감독의 제안에, 옆에 앉아있던 아들이 아빠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잘 생각해야 했다. 침묵이 흘렀다.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듣고서 허락했다. 


  매주 토요일이면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초등 주말리그가 열린다. 선수가 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주전 공격수인 아들은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때부터 꼭두새벽에 일어나 EPL-영국프로축구 리그. 현재 손흥민 선수가 활동하는 축구 리그-을 보는 열정을 보였다. 선수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겨우 앉아 엄마의 박수 응원을 따라 하던 아이가 이렇게 컸다. 그 무렵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외국 축구 리그를 TV에서 보며 자란 세대다. 아들의 활약으로 팀은 그해 리그 준우승과 서울시 축구협회장배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개인적으론 서울시 축구상비군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열두 군데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고민 끝에 집과 거리는 멀지만 둔촌동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중학 리그에서 항상 1, 2위를 다투는 축구 명문 학교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자식 군대 보내는 심정이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아들은 두각을 나타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귀엽고 아기 같더니 2학년이 되고 나서는 나보다도 키가 커졌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견디고 뛰어야 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피부가 검붉은 구릿빛이다. 야생마들이 한창 끓어오르는 혈기를 잔디밭 위에 뿌려댄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처럼 거칠다. 


  힘이 들어서인 줄 알았다. 요즘 부쩍 아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뭘 사줘야 하는지 물어보기 바빴다. 정작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아들은 축구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말을 하지 않는다. 답답했지만 마음이 열리길 기다려 본다. 사춘기가 온 것일 뿐이라 생각했다. 타일러보고 응원하고 지켜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마음이 떠나있는데 붙잡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프로축구 리그 산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아깝고 안타까웠다.


  유학을 제안했다. 독일이든 영국이든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빠가 같이 간다면 생각해 보겠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뒷바라지해야 하는데. 손흥민 아빠처럼 해주지 못하는 내가 무기력하다고 느꼈다. 수화기 너머 울먹이는 아들은 운동장을 누비던 거친 사내가 아니었다. 어리고 여린 아이였다. 주목받을수록, 기대가 커질수록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이겨내라고 몰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보통의 아이들처럼 학교에 간다. 동네 친구들과 같이 있으니 다시 밝아졌다. 그래, 건강하니 그걸로 됐다. 내 속은 까맣게 탔지만 괜찮다. 


  사랑하는 아들. 다 잘될 거야. 

이전 20화 닥치고 캠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