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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26. 2023

닥치고 캠핑

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10


‘짐을 챙겨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린 이유 없이 즐거웠다. 이상한 철판 때문에 삼겹살도 먹지 못하고 라면마저도 양껏 먹지 못했다. 밤새 추위로 인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박사의 잦은방귀로 공기마저 탁했다.’

  - 텐트 밖은 환장 中



  어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스무 살 우리의 하룻밤 여행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습니다. 놀러 많이 간다는 양평을 선택했지만, 특별한 이유도 그곳을 가본 친구도 없었습니다. 삼겹살 구워 먹고 자고 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목적이었습니다. 농장은 친구들에게 더 맛있는 고기를 맛보여 주겠다는 신념 하나로 기차에 올랐습니다. 저는 텐트와 코펠을 준비했고, 박사와 감독은 굶주린 청년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철망의 플라스틱 코팅이 녹아 고기를 구울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허망함과 실망감은 오히려 우리의 웃음 소재가 되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농장을 씹어댑니다. 앞으로 30년은 더 그럴 겁니다. 농장은 아직도 그 철망을 다 녹여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조금 더 불에 녹였더라면 됐을 거라 우깁니다. 저와 박사, 감독은 애정을 듬뿍 담아 얘기합니다. “닥쳐”


  당시에 우리가 지나갔던 기찻길은 현재 팔당 자전거길로 바뀌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다시 가보고 싶은 그 길을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그때는 어두웠던 터널이 지금은 여러 가지 색의 조명으로 인해 환하게 웃으며 저를 반겨줍니다. 문득 기차 맨 뒤 칸에 매달려 얼굴이 까매지는 것도 모른 채 사진을 찍던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살다 보면 유난히 오래 기억되고 선명히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것 없던 우리의 여행이 그랬습니다. 희미해져 가던 기억이 우연히 찾은 사진 한 장에 어제 있었던 일처럼 또렷합니다. 친구와 함께한 하룻밤을 다시 한번 추억해 봅니다. 저를 지치게 했던 것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했던 그때 그 시간으로 저를 데려갑니다. 천진난만한 스무 살의 그날로 말이죠.


  어딘가에 먼지가 쌓인 채 잊힌 앨범을 열어보세요. 한장 한장 찬찬히 보다 보면 신기한 듯 그날 그 순간이 생각날 거예요. 돌아가 보세요. 깊게 숨을 들이켜고 잠시 다녀오세요. 때로는 웃음이 나고 때로는 눈물도 납니다. 돌아보면 아쉽기도 하고 분명 후회도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잘 버텨온 그때의 나에게 얘기해 주세요.


  ‘넌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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