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숙소는 복스홀_vauxhall에 위치해 있었다. 자동차 이름과도 똑같은 복스홀은 발음이 쉽지 않았는데, 블랙캡이라 불리는 런던의 택시를 탈 때면 복스홀 스테이션_vauxhall station이라는 나의 말을 기사는 언제나 알아듣지 못했다. 런던은 중심가를 기준으로 과녁처럼 동심원을 그리며 지역이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중심지 1존_Zone 1을 기준으로 외곽으로 멀어질수록 숫자를 더해 가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런던의 상징적인 관광지 대부분이 바로 이 1 존에 모여 있다. 템즈 강변을 처음 걷던 날, 국회의사당과 빅벤 그리고 템즈강 위에 걸려있는 다리 위 빨간 이층 버스가 한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마치 장난감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복스홀은 런던의 1 존 거의 끝에 걸려있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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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참으로 다양한 박물관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나의 여행은 ‘가든 뮤지엄_ Garden Museum '에서 시작되었다. 런던 남쪽 템즈 강변을 끼고 자리한 이곳은 숙소에서 나와 템즈 강변을 향해 걷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 런던에 갔을 때는 건물이 모두 고풍스럽고, 간판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건물을 지나칠 때 마다 '여기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잘 가꾸어진, 예사롭지 않은 정원까지 앞에 있다면 보다나마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첫날 가든 뮤지엄을 찾기까지 나는 몇 번이나 ’남의 집‘에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다행히도 그곳에는 방문자가 알아차릴 만한 위치에 ’사적 공간‘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관광지가 아니라는 표시를 해야 하는 도시, 나는 그 표지판이야 말로 런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Garden Museum _ 5 lambeth palace road london se1 7lb England
램버스 궁전_Lambeth Palace 바로 옆에 조촐한 정원이 딸린 정원사 박물관은 외관부터가 소박하다. 하지만 런던의 다른 박물관과는 다르게 입장료 6파운드를 내야 한다. 그때 환율이 1파운드당 2천 원에 육박할 때여서 6파운드는 나에게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다. 소박한 박물관의 외관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뒤에 방문한 다른 박물관들과 다르게 런던에서 유일하게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기는 했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옛 교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뜻하지 않게 혼자서 소박한 전시물에 둘러 싸여 있을 수 있었다.
영국은 정원에 대한 사랑이 깊은 나라다. 그리고 그 정원을 가꾸는 가드닝_Gardening은 범 국민적 취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네 어머니들이 마당에 텃밭을 가꾸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를 키워 주신 외할머니는 손바닥만 한 흙이라도 보이면 상추씨를 뿌리는 분이셨다. 화분에 호박씨를 심어 나지막한 지붕에 넝쿨을 올리고, 까만색 줄기와 이파리 끝에서 자라는 까만색 가지를 나는 신기한 듯 매일 쳐다보곤 했었다. 외할머니의 작은 텃밭의 푸성귀들도 꽃을 피워내고 나도 그 꽃을 보고 자랐던 것이다. 동글동글 말려있는 넝쿨손은 나의 훌륭한 장난감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의 정원은 잎과 열매를 수확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보다 그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영국정원 역시 다양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저 그것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 머물고 싶었다. 거기에 복잡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정원을 소유할 수 없어서 꽃일을 업으로 삼았는지도 몰랐다. 나는 꽃을 꽂으며 매일매일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정원을. 나는 그저 아름다움 속에 싸여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차원적 이유도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한 위로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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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원 역사에 18세기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이전까지 유럽의 정원은 연극 무대 같은 곳이었다. 상징이 넘쳐나고 귀족이나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공간이 었던 것이다. 정원은 ‘보는 곳’에 가까웠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신흥세력은 그 이전 절대 왕권의 경직된 정원 대신 한 층 더 자연스러운 정원을 원하게 되었다. 이것을 ‘풍경식 정원’이라고 부른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풍경 같은 정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변화와 경제의 성장이 정원 양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정원은 마치 자연의 일부인 듯 그곳을 걸으며 자연을 느끼는 공간이 되었다. 런던 중심가를 초록으로 물들이는 큰 공원들은 모두 바라보기 보다 걷기 좋은 곳이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끝없이 펼쳐진 풀밭을 걷다보면 저 멀리 호수 위를 떠 다니는 새들도 만날 수 있다. 정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자리를 내어주는 공원이 되었고 그곳에서는 누구나 나무와 풀, 호수의 일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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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국 정원의 매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가든 뮤지엄에서 발견한 [plant hunters]라는 책은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우리나라에는 [식물 추적자]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는 책으로 나도 학부시절 읽은 적이 있다. 18세기부터 20 세기까지 전 세계를 돌며 활동해 온 식물 채집가들과 이국적인 식물에 관한 이야기다. 유명한 쿡 선장의 인데버 호를 타고 식물 채집에 나섰던 대부호 조지프 뱅크스를 비롯해 새로운 식물을 찾아 한반도까지 찾아왔던 23세의 청년 어니스트 윌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탐욕스러울 만치 새로운 식물에 집착하는 그들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그 덕분에 영국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식물로 그들의 정원을 채울 수 있었다. 그야말로 꽃, 식물 중심의 정원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사람을 새로운 열망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그 동기가 지적 탐구에 대한 열망이든 자본에 대한 열망이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하는 것이아닐까.
정원의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정원에도 역사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단독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니 다양한 사건들이 얽히고설켜 그 시대만의 유행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든 뮤지엄을 구경하다 커트루트 재킬_Gertrude Jekyll의 책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영국 정원에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 바로 커트루트 재킬이다. 그녀는 화가라는 전직답게 정원을 화폭 삼아 색감이 풍부한 꽃들로 정원을 채워 나갔다. 거기에는 19세기에 다시 등장한 ‘코티지 가든’의 영향도 한몫을 차지한다. 코티지_cattage는 시골집을 뜻하는 단어로 코티지 가든 역시 시골집 정원을 의미한다. 해바라기도 처음에는 기름을 짜기 위해 키웠고, 장미도 로즈힙이 비타민C의 공급원 역할을 할 때가 있었다.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이전에도 꽃은 존재했었고, 그것은 좀 더 실용적인 목적이었을 것이다. 우리 외할머니의 텃밭처럼.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의 코티지 가든 역시 채소와 허브, 야생화가 한데 얽혀있는 실용적인 정원이었다. 하지만 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매력이 풍경식 정원과도 잘 어울린 모양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코티지 가든은 아름다운 꽃의 정원으로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수집해온 다양한 꽃이 있었고, 그 꽃으로 정원에 그림을 그리는 정원 디자이너가 있었다. 가든 뮤지엄에서는 나는 내가 꿈꾸던 정원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왔다. 그창은 눈이 부실만큼 찬란하기보다 세월에 빛이 바래진 것이었다. 하지만 아담한 옛 교회는 사랑스러웠고, 박물관은 원래 좀 낡고 바랜 것을 만나는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정원에 관련된 책과, 아기자기 한 정원 용품들, 그것은 백 년 이백 년이 지난 지금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고스란히 이고 있는 박물관과 달리 정원의 식물들은 싱그럽기만 했다. 잘 가꾸어진 식물은 생기가 넘쳐흘렀고, 꽃은 아름다웠다. 역시 정원은 식물로 이야기하는 곳이다. 지나온 역사만큼이나 지금 이 순간 땅에 발을 붙이고 해를 향해 뻗어 있는 초록의 잎사귀도 소중한 것이다.
정원을 나오면서 바닥에 새겨진 글귀를 발견했다. The wise Gardener 'Right Plant, Right Place'. 어디 식물뿐이겠는가. 현명한 사람 역시 제가 있을 자리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꽃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내 발 밑을 보고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