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비타 색빌웨스트와의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버지니아 울프_Virginia Woolf. 사우스 켄징턴, 하이드파크 근처의 집을 팔고 블룸즈버리로 이사한 버지니아 울프는 훗날 블룸즈버리 그룹_Bloomsbury Group으로 알려지게 된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하게 된다. 이 블룸즈버리에 대영박물관_British museum이 자리하고 있다.
블룸즈버리는 영국 도서관_British Library과 런던 대학교_University of London가 있는 지역으로 고즈넉하고 학구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머물러 있는 동네다. 영국 도서관이 없던 시절 대영박물관의 열람실이 책이나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버지니아 울프 역시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한다. 시싱허스트에 다녀온 뒤 블룸즈버리를 걸으면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났다.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가 나를 계속 따라다닌 것이다.
나는 그곳에 정원의 기원을 찾으러 갔다.
대영박물관_Great Russell Street, London WC1B 3DG England
https://www.britishmuseum.org/
대영박물관에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 봤음직한 전 세계의 유물들이 가득했다. 방대한 양의 희귀하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하루 만에 박물관을 다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며칠에 걸쳐서 대영박물관을 찾았다.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어디를 가나 공통적인 사실 하나는 앞 쪽 전시실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전시실 번호가 두 자리쯤 되면 관람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전시실을 혼자서 독차지할 수도 있다.
고대 문명 이집트의 무덤벽화에는 정원의 모습이 남아 있다. 기원전 1380년경 테베의 관리였던 네바문의 무덤에 그려져 있던 네바문의 정원_Nebamun's Garden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정원형태와 식재된 수목의 종류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무덤의 벽에 그려진 정원은 현실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길 바라는 염원도 있지만, 죽음 이후에 닿기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처럼 정원은 사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을 동경하지만 원시 자연은 두려움을 안겨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때문에 인간이 언제나 그리워하는 자연은 풍부한 물과 탐스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낙원이 모습이고, 그것은 철저하게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정원으로 재현되었다. 그것은 오히려 자연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인 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 낙원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국은 수백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난 뒤 얼음이 녹아 국토의 대부분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가 상승한 땅이다. 그래서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으로 양을 기르기 위한 초원이 필요하게 되면서 땅은 더욱 척박해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조건이 영국에서 정원 문화가 발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전 세계로 모험을 떠난 식물 수집가들에 의해 엄청난 식물자원이 큐가든에 보관되어 있고,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는 열병처럼 사람들에게서 여전히 번지고 있다. 정원 만들기는 낙원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는 그리스 시대의 부조_relief에 새겨진 넝쿨 식물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마치 담쟁이넝쿨이 벽을 타고 가는 것처럼 돌에 잎사귀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금지한 이슬람 문화에서 발전한 넝쿨 식물무늬는 그리스를 거쳐 중국까지 닿아 당초무늬가 되었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이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한 그들만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눈에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넝쿨식물의 모습이 식물의 시간을 뛰어넘어서 예술작품 안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 더 인상 깊었다. 자연에 대한 동경,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_Cromwell Road, London SW7 2RL England
https://www.vam.ac.uk
꽃과 식물, 나무가 작품 속에 담긴 모습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박물관이 있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_Victoria and Albert Museum은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알버트 공의 이름을 딴 장식, 디자인 박물관이다.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대부분 무료이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며칠에 걸쳐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나는 굳이 작정하고 찾지 않더라고 오다가다 박물관 앞을 지날 때면 산책 삼아 한 바퀴 돌고 나올 때도 있었다. 미술품과 유물들 사이를 ‘산책’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런던에서나 누려 볼 수 있는 호사인 것이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은 내가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감탄과 경이로움보다 재미가 가득한 곳이고, 무엇보다 ‘예쁜 것’이 너무 많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성공을 기념하고 그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Museum of Manufactures이라는 이름으로 1852년 문을 열었고, 지금은 사우스 켄싱턴_South Kensington에 위치해 있다. 가까이 있는 해롯백화점을 함께 구경하기라도 하면 박물관에 있는 것들이 모두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는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8세기 의상 중 몇 벌이 그녀의 책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는 회화, 조각 등 미술품은 물론 가구, 직물, 의복, 도자기, 유리공예, 보석 등 디자인 분야의 소장품들이 145개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박물관 안을 둘러보다 보면 그 엄청난 전시품에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그중에는 앞서 등장했던 장식 예술가인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대담하고 과감한 문양의 벽지와 텍스타일, 타일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그대로 담겨 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 의해 복원되어 잘 보존되고 있는 윌리엄 모리스의 고향집과 정원에 있던 버드나무 가지_Willow Bough, 격자 울타리_Trellis, 극찬해 마지않았던 코츠월드의 들꽃과 잎사귀들이 박물관의 벽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코츠월드의 허니서클은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꽃과 식물들은 삶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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