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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Oct 05. 2022

결혼하지 않는 것은 초라한 걸까


여자의 눈은 반짝이는 머리핀에 고정되어 있었다.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가르마를 시작으로 어깨위로 흘러내리는 윤기 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만나는 곳에 무심한 듯 올려 진 진주핀. 저 다음 달에 결혼해요. 그래서... 역시 그랬구나. 여자는 언젠가부터 같은 스타일을 하고 찾아오는 그들을 만나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긴 치마는 언제나 허리가 강조되어 있다. 마치 동화 속에서 막 튀어 나온 공주를 보는 것처럼 여자는 그들을 감탄의 눈으로 보았다. 차분한 목소리와 우아한 몸짓. 빛은 마치 그들을 따라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결혼은 여자들에게 마법을 부리는 것일까? 재투성이 아가씨를 단숨에 공주로 만드는 그 마법 말이다.

*

친구가 새로 이사했다는 집은 넓었다. 부모님과 함께 오래된 빌라에 십년 넘게 살고 있는 여자는 그런 새 아파트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처럼 여자를 마중 나온 친구는 서너 개의 문을 통과하면서 몇 번이나 카드를 터치하고서야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복도가 늘어서 있었다. 현관이 들어선 여자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복도 벽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결혼사진이 액자에 고이 넣어져 걸려 있었다. 복도를 지나며 열려진 방문을 여자가 힐끔 쳐다보자 친구가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애들 방이야... 한 쪽 벽이 다 유리네. 응, 애들 실컷 낙서하라고 애들 아빠가 이렇게 만들어 줬어. 우와, 멋지다. 애들방 뿐만 아니라 자전거가 들어가 있는 방도 있었고, 화장실과 파우더룸, 드레스 룸이 붙어 있는 부부의 방도 보였다. 부부방까지 안 봐도 돼. 이건 사생활이잖아. 괜찮아. 구경해. 우리사이에 뭐. 친구가 열어준 문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선 여자는 엉거주춤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 뿐 발을 떼기가 영 어색하기만 했다.

부부방만 해도 네 식구는 거뜬하게 살겠는데... 큭큭. 나 너무 옛날 스타일인가? 요즘 이런 말 하면 욕먹는 다는데...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아직도 이러 소리 하는 사람이 있냐고 말이야.  뭘...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어릴 때는 다 그렇게 살았잖아. 너 맨날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알지? 방 두 개에 붙어 있는 작은 부엌이 다였는데 다섯 식구가 살았잖아. 그래 맞다. 작아도 너희 집은 항상 깔끔하고, 가족이 행복해 보여서... 나 사실 그때 너희 집에 가서 자고 오는 거 진짜 좋아했어. 나는 그렇게 얼굴이 두껍지가 못했는데, 네가 자고 가라고 하면, 집에 가다 말고 도로 넙죽 주저앉았잖아. 너희 부모님이랑 동생들 다 불편 했을 텐데 말이야. 그걸 다 알면서도 너희 집에 가면 나오기가 싫었어. 그때 많이 재워줘서 고맙다.

복도 끝 거실은 책으로 가득했다. 쪼끄만 애들이 벌써 이렇게 책을 많이 읽어? 얘는... 우리집은 없는 편이야. 다들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는데. 아이쿠, 여기는 정말 딴 세상이구나. 얼른 차 마셔. 여자에게 차를 건네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싱크대 앞에 선 친구를 여자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너는 정말 잘 어울린다. 뭐가? 이 집이랑 말이야. 뭔 소리야... 큭큭. 주부 역할도 엄마 역할도 다 잘 어울려. 뭔가 있어 보여. 됐어. 이 동네 엄마들이랑 수준이 안 맞아서 나는 친구도 없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무슨 수준이 안 맞아? 다들 얼마나 잘나셨는지 나는 끼어들 틈이 없네. 그럼 심심하지 않아? 그냥, 애들 키우고 집안 살림 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어서 괜찮아. 집이 커서 청소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야. 그 뭐냐, 애들 아빠 벌어서 관리비내면 딱 맞다. 뭐? 그럼 너희 네 식구는 뭐 먹고 살아? 내가 허리띠를 꽉 졸라매가지고... 큭큭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쥐는 시늉을 하던 친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시부모님이 이사 가라 하시면 이사 가고 그러고 사는 거지 뭐. 너무 벅차면 생활비도 좀 보태주신다고 하니까... 그럼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에휴.... 그런가?

근데 너는 결혼 안 해?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아이 하나가 눈을 비비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나오셨어요? 이모한테 인사 할까? 우와, 벌써 이렇게 큰 거야?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데……. 너는 언제 요렇게 꼬물거리는 거 데리고 올 거야? 어물거릴 시간 없어. 아들을 대하는 친구의 말투는 어느새 우아한 엄마로 변해 있었다. 그때 여자의 눈에 친구는 진짜 어른처럼 보였다.

*

여자는 그것을 또 다른 형태의 ‘엘리트 코스’라고 부르고 싶었다. 남동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사 년제 대학은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저 얌전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과로 정해 후다닥 공부를 마치고 겨울 방학에 바로 취직해서 몇 년 다니면 그만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구상한 친구의 인생에 친구의 의견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직장 다니면서 오년 동안 돈만 열심히 모았지. 우리 엄마 감시가 워낙 심해서 십 원 한 장 내 맘대로 써 본적 없잖아. 생각해보면 ‘혼수’ 하려고 돈을 그렇게 열심히 모은 거야. 우리 시어머니는 하나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신 그 혼수 말이야... 우리 아버지는 여자가 결혼 안하고 스물여덟 살이 넘어가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분이었으니깐. 어쩔 수 없었지 뭐. 여자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철저하게 결혼에 맞춰진 인생이었다. 결혼을 향한 ‘엘리트 코스’ 말이다. 그들의 인생은 ‘선택받기 위한 삶’ 이였는지도 모른다. 선택받기 위해 줄서는 삶. 그들 형편에는 그것이 안정된 인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몰랐다.

*

너는 혼자니까 얼마나 자유롭고 좋아? 나? 너 좀 전에 나한테 결혼해서 빨리 애기 데려오라고 안 그랬어? 큭큭... 그러네. 그래도 나는 결혼하고 집밖에도 자유롭게 못 돌아다녔어. 애 빨리 낳으래서 낳았더니 둘째는 또 언제 낳냐고 해서 또 낳았잖아. 그러니깐 진짜 내 생활이 없다... 그래도 우리가 언제 벌어서 이렇게 살아보겠어? 에이, 꿈도 못 꾸지. 나는 자유로운 대신에 엄청 가난하단 말이야. 아니, 자유롭기는... 일에 메어있어서 자유롭게 못 돌아다니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부모님이 말씀이 맞는지도 몰라.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도 없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결혼이라도 하는 것이 자리 잡고 사는 방법일지도... 지금 힘들어도 애들 크고 나면 재산도 많겠다, 자식도 둘이 나 있고... 네가 위너다 위너. 나는 진짜 아무것도 없잖아. 어른들은 그 걸 다 알고 계신거지. 뭐... 에휴, 위너는 무슨... 다 살아봐야 아는 거지. 그냥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내일하고 먹고 살고 싶은 건 왜 일까? 응?

*

친구를 보며 여자는 ‘결혼’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고 있었다. 결혼이 여자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편과 자식에 기대어 사는 삶이 얼마나 불안한지 여자는 엄마를 보면서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내가 내 인생을 결정 한 적이 있었던가? 여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인생이라는 배가 조금씩 키를 돌리기 시작 한 것이 언제였을까.

어쩌면 남편과 자식에 기대어 사는 삶이 여자들의 슬픈 숙명이라 해도 그것조차 기대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함이 얼마나 큰 특별함인지 인생의 모퉁이마다 절절히 느끼는 사람. 바로 여자, 자신처럼 말이다. 여자는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결정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도 몰랐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열등한 조건이 여자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게 했다. 그래서 여자는 친구가 부러웠다... 사실 알고보면 자신은 단 한 번도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부모님의 삶이 결혼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인생이 누구도 믿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의지 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향을 만든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친구가 가진 아름다운 외모가 여자에게는 없었다. 선택받기 위해 줄조차 서지 못한 것이다.

결혼의 부당함과 여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사실 여자에게는 사치인 것이다. 그런 평범한 삶에서 조차 자신이 소외됐다고 느꼈을 때 여자가 선택 할 수 있었던 것이 이름 만이라도 거창한 독립된 삶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고단하고 외로운 삶이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의 떠밀림 같은 것이었다.

친구가 커다란 집에서 자식들을 품에 끼고 잘난 척이라도 해준다면, 네가 온전히 네 힘으로 이룬 것이 뭐가 있냐고 빈정거리기라도 했을 텐데... 친구는 그 옛날 깔끔하고 따뜻한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여자를 붙잡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여자가 진짜 소외감을 느낀 것은 친구의 그 마음 일지도 몰랐다. 내가 무슨 결혼이야... 혼자 살 각오를 해야지. 여러 가지 면에서 나한테 결혼은 쉬운 게 아닌 것 같아. 희한한 게 우리 엄마는 내가 결혼을 안 해서 애를 태우는데... 사실 우리 엄마한테 결혼이 뭐 좋은 거였다고. 인생 한방에 꼬인 건데. 그런데 결혼해서 세상 제일 팔자 좋으신 우리 아버지는 나더러 결혼하지 말라고 그런다. 웃기지? 이제 여자도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죽도록 일하래. 꼭 결혼을 안 해도 좋으니 좋은 사람을 찾아보라거나 네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해보라는 거면 참 감동 적일 텐데... 그냥 무조건 일만 하래... 그 말은 옛날에 우리 엄마한테 자주 하던 말인데... 우리 아버지는 부인이고 자식이고 다 일꾼 취급이야. 그게 내 팔자인가봐. 큭큭

*

여자는 생각했다. 친구처럼 자식을 얼른 안정된 생활로 밀어 넣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민하는 부모가 여자에게는 없기에 여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했다... 다르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응? 내가 스물여덟살에 결혼도 안하고 그리고 애도 안 낳았다면 말이야... 그랬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냐고? 인생을 개척한다는 말을 믿어? 응? 그럼 내 인생은 이미 이렇게 정해진 거야? 인생은 정교한 기계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여러 가지 필연적 배경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결정되는게 아닐까? 내가 결정하고 내가 개척했다고 믿었던 것들도 사실은 어쩌면 다 예정되어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러니깐 결국 나는 나한테 맞는 내 인생을 살면 되는 거지. 괜히 남들처럼 살아 보겠다고 욕심 부렸다가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면 어떡해...

결혼이 누구에게나 마법을 부리지 않는 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노력해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인생에서 자신의 몫을 받아드리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반짝이는 빛이 자신을 비춰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들이 자신에게는 돌아오지 않아도 여자는 괜찮다고 믿고 싶었다. 니가 잘 살고 행복해서 보기 좋아. 부럽기도 하지만 이건 네 인생이고 네 몫이니깐... 나는 이제 내 몫을 찾아 봐야지. 그것이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꼭 자식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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